서울시 독촉 ‘제로페이’에 새우 등 터지는 공무원들
  • 이준엽 인턴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2 15:00
  • 호수 15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르포]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제로페이’인가
가게 20곳 중 17곳, 공무원 권유로 설치

서울시 제로페이 가맹점 상당수가 제로페이의 원래 취지인 카드수수료를 없애려고 자발적으로 가입한 게 아니라 공무원 권유로 가입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는 서울시가 산하 구청에 특별교부금 300억원을 제로페이 유치 실적에 따라 차등 지급하겠다고 밝히면서 구청끼리 가맹점 유치 경쟁을 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과 만난 서울시 공무원들은 “시에서 급하게 일을 진행시키기 위해 교부금으로 구청을 협박하고, 구청들은 공무원에게 강제 영업 할당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제로페이는 소상공인의 카드수수료 부담 완화를 위해 0%대의 수수료율이 가능하도록 정부와 지자체, 은행과 민간 간편결제사업자가 함께 협력해 만든 계좌 기반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20일부터 제로페이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올해 3월부터는 정식 서비스가 시작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2월22일 기준으로 서울시 제로페이 가맹점은 약 8만 점포. 서울시 66만 소상공인의 12% 수준으로 아직 많지 않다.

서울 영등포역 지하상가 곳곳에 제로페이 홍보물이 붙어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서울 영등포역 지하상가 곳곳에 제로페이 홍보물이 붙어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제로페이 가맹점 20곳 중 12곳 결제 ‘0건’

시사저널은 서울의 주요 거점인 시청역·영등포역·신촌역·고속터미널역 근처에 위치한 제로페이 가맹점을 무작위로 선정해 46곳을 현장 방문했다. 하지만 46곳 중 26곳은 제로페이에 대해 잘 모른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취재에 응한 제로페이 가맹점은 20곳이다. 취재에 응한 이들 가맹점은 제로페이를 설치한 지 약 한 달 정도 된 곳들이다. 그럼에도 결제 건수가 0건인 곳이 12곳이나 됐다. 5건 이상 되는 곳은 3곳에 불과했다. 20곳 중 가장 많이 결제가 된 곳은 서울시청 근처에 있는 김밥가게로 하루에 3건 정도 결제된다. 김밥가게 가맹점주 A씨는 “제로페이를 설치한 지 3주 정도 됐다. 결제 건수가 하루 3건 정도지만 대부분 공무원들이 쓴다”고 했다. 

기자도 20곳 중 5곳에서 제로페이를 사용해 봤다. 제로페이를 사용한다고 하자 공무원이나 기자가 아닌지 물어보는 곳도 있었다. 또, 기자가 매장에서 처음으로 제로페이를 사용한 손님이라고 하는 가맹점도 있었다. 서대문구 신촌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제로페이 가맹점주 B씨는 “우리 가게에서 처음으로 제로페이로 결제하셨다”며 “공무원이 와서 좋은 취지라고 해서 제로페이를 설치했다.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쓰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답변했다.

서울시 산하 구청들 실적 올리기 급급

제로페이는 현재 소비자도 소상공인들도 크게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제로페이 가맹점 수 늘리기에만 급급하다. 공무원들에게 가맹점 유치를 할당해 강제 동원하고 있다. 현장 취재 결과 제로페이 가맹점 20곳 중 17곳이 공무원 권유로 제로페이를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 커피숍 점장은 “공무원들이 몇 번씩이나 찾아와서 제로페이 설치 권유를 했다. 여태껏 설치를 안 하다가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지인의 부탁으로 설치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특별교부금 300억원을 마련해 구청마다 소속 공무원이 제로페이 가맹점을 유치하면 건당 1만5000원의 수당을 지급해 왔다. 처음에 2만5000원으로 정했으나 세금 낭비라는 지적이 일자 1만원을 줄였다. 또 서울시는 산하 구청에 목표치를 설정해 보냈다. 설치할 만한 가맹점들 즉, 비영리법인이나 온라인, 도매업이라서 제로페이 결제가 어려운 곳들을 제외한 나머지를 목표치로 선정해 구청에 보낸 것이다. 서울시에서 보내온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서울시 산하 구청이 구청공무원 ‘1인당 2건’ 혹은 ‘1인당 1건’의 할당량을 부과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의 정호민 강동구 지부장은 “제로페이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서울시에서 너무 성급하게 일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에게 엄청난 업무 가중이 오고 있다”며 “그냥 홍보를 하라는 정도가 아니다. 가맹점주의 핸드폰에 제로페이 앱(App)을 직접 깔고 아이디(ID)와 비밀번호까지 받아오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래야 실적으로 인정받는다”고 했다. 이어 “심지어 어떤 공무원은 실적을 채우기 위해 제로페이와는 상관없는 업종인 카드등록 영업을 하시는 분에게 카드를 만들고 그분에게 제로페이를 설치하는 이들도 있다.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으면 제로페이 가맹점 실적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지부장은 “공무원 중에서는 낮에는 제로페이 가맹점 영업을 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밤에는 늦게 문을 여는 노래방 같은 곳에서 영업을 한다”며 “업무에 공백이 생길뿐더러 업무가 가중돼 일하기 힘든 환경이 되었다. (서울시가) 공무원을 파트너로 대하지 않고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이창현 서울시 제로페이 총괄팀장은 “서울시가 목표치를 내부에서 결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구별로 이 정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일 뿐이다. 교부금으로 인한 부작용도 행정부에서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구청 내부사정은 잘 모르지만 교부금 때문에 과열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공무원들에게 제로페이 가맹점 유치를 강제 할당하려 한 것은 아니다”고 답변했다.

전문가들은 지금 서울시가 제로페이 가맹점을 늘릴 때가 아니라고 조언했다. 정부에서 기존에 있는 페이먼트 사업에 끼어들게 아니라 제로페이를 쓸 수 있는 새로운 공공 서비스 사업을 만들어 제로페이를 쓰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경전 경희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가맹점만 늘리는 것으로는 결제사업이 클 수가 없다”며 “아무리 좋은 서비스라고 해도 안 쓰면 그만이다. 새로운 환경을 구축해 사람들이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나서 기존 환경에 자연스럽게 진입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