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 “내게 영향을 준 배우는 최민식과 김혜수”
  •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6 09:00
  • 호수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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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상》으로 컴백한 연기 장인 한석규

시나리오를 깐깐하게 고르기로 유명한 그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화 《프리즌》 이후 2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그는 영화 《우상》의 출연 이유를 오로지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우상》은 아들의 뺑소니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은 도의원 구명회(한석규)와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지체장애 아들을 사고로 잃고 절망에 빠진 아버지 유중식(설경구), 중식의 아들이 사고를 당한 날 사고 현장에 함께 있다가 사라진 여인 최련화(천우희)의 이야기다. 극 중 한석규는 점잖아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자신의 명예를 위해 사람을 죽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욕망의 화신’을 연기한다. 《우상》은 2014년 장편 데뷔작 《한공주》로 평단의 주목을 받은 이수진 감독이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개봉 전 제69회 베를린영화제에 공식 초청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한석규의 필모그래피를 잠시 보자. 1990년 KBS 성우로 입사했다가 이듬해 MBC 공채 탤런트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MBC 드라마 《아들과 딸》(1993), 《서울의 달》(1994) 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199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중심에 서 있는 국민배우가 된다. 영화 《초록물고기》 《접속》 《넘버3》(1997),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쉬리》(1999) 등 한국영화사에서 빠질 수 없는 작품들이 그의 명연기로 완성됐다. 최근에는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2011)와 《낭만닥터 김사부》(2016) 같은 드라마로 대중과 더 친숙해졌다.  

ⓒ CGV아트하우스 제공
ⓒ CGV아트하우스 제공

2년 만의 컴백이다. 출연 계기는. 

“이수진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뭐랄까,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어요. 시간만 되면 관객분들이 영화 보기 전 시나리오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탄탄하고 대단했어요.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처럼 오랜만에 시나리오만으로도 완성도가 있는 작품이더군요. 김대우 감독의 《음란서생》도 마찬가지였어요. 영화판에서 회자되는 명작 시나리오들이 있는데, 《우상》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문장이 아주 치밀했고. 특히 마지막 장면은 글만 봐도 확 각인될 정도로 강렬했어요. 내 몸을 통해서 이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론시사회에서 “비겁한 역할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미지 변신 때문인가. 

“이미지 변신이 우선은 아니었어요. 구명회의 비겁한 모습을 통해 관객들이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으면 했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나는 과연 용감하게 살고 있는가, 안주하며 살고 있는가 등 별별 생각이 다 들 겁니다. 구명회는 욕망이 확실하고 그것을 위해 전력질주하는 인물이에요. 사건이 터진 후 반응을 하고, 최대 위기를 맞은 정치 인생을 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선택을 합니다. 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병든 반응만을 해요. 구명회는 진폭이 꽤 있는 인물인데, 그래서 좋았어요.” 

이수진 감독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저는 신인 감독과의 작업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신인 때는 치열하게 전부를 걸지 않습니까. 저도 그랬고요. 이 감독 역시 촬영 중에 몸무게가 5kg 정도 빠질 정도로 치열한 작업을 했어요. 전작 《한공주》로 엄청난 극찬을 받았지만 안주하지 않고 이토록 어려운 이야기에 도전했다는 것이 좋았어요. 진심이 건강하고 의도가 겸손한 사람입니다. 이수진이라는 창작자, 정말 괜찮아요. 영화관이 뚜렷하게 정립된 인재죠.” 

《은행나무 침대》의 강제규, 《8월의 크리스마스》의 허진호, 《넘버3》의 송능한, 《접속》의 장윤현, 《프리즌》의 나현 등이 모두 신인 감독이었다. 

영화가 조금 어렵다는 평도 있다. 

“동의해요. 저도 시나리오를 봤을 때 어려웠거든요. 이수진 감독이 과한 것을 굉장히 싫어해요. 저도 제 연기를 볼 때 그렇거든요. 그런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요. 자세히 보면 그 안에 다 퍼즐이 있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열심히 보는 사람이란 건 아마 알고들 계실 겁니다. 한데 《우상》을 보고 이 감독에게 전화해 빨리 세 번째 영화를 만들라고 격려했어요. 시나리오도 안 보고 출연하겠다고도 얘기했습니다. 영화를 찍으면서 감독들에게 ‘나중에 다시 작업하자’는 말을 해 본 적이 처음이에요. 《한공주》 이후 《우상》으로 돌아오는 데 5년이나 걸렸잖아요. 더 자주 작품을 내줬으면 좋겠어요.” 

천우희라는 여배우는 어땠나. 

“늘 어려운 역할을 맡아온 만큼 연기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한국영화에서 정말 괜찮은 여배우가 완성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몰입을 요하는 캐릭터는 당분간 그만하고, 조금 더 밝은 걸 해 보라고 권했어요.” 

함께 호흡을 맞춘 설경구와는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다. 

“맞아요,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나이를 떠나 친구예요. 조선시대 선비들은 나이가 어려도 자신보다 학문이 월등하면 친구로 지내지 않았나요. 설경구도 나이는 어리지만 친구죠. 저도 작품에 몰입할 때 발광을 꽤 하는데, 그도 그렇더군요.” 

되돌아보니 연기란 무엇이던가.  

“젊은 시절엔 자신만만해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게 있더군요. 그제야 알게 됐죠. 연기도, 인생도 결국 액션이 아닌 리액션이라는 것을요. 평생 무언가에 ‘반응’하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어요. 하다못해 연기자가 되기를 꿈꾼 것도 열여섯 살 때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보고 느낀 감흥에 ‘반응’한 것이었더군요. 온몸에 전율이 일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연기도 액션보다 리액션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전에는 듣는 척하며 했는데 요즘엔 연기하기 전에 ‘상대방의 액션을 보고, 듣고, 리액션하자’는 주문을 혼자서 합니다.” 

배우가 되기까지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군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절 극장에 많이 데리고 다녔어요. 《별들의 고향》 《혹성탈출》 등도 어머니와 함께 극장에서 봤어요. 아마 그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겁니다.”   

그에게 영향을 준 배우는 최민식과 김혜수라고 한다. 그는 올해 개봉 예정인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최민식과 다시 호흡을 맞춘다. 두 사람은 존중을 넘어 존경하는 사이라고 한다. 김혜수 역시 그가 일을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라는 걸 느끼게 해 준 사람이다. 

그가 말했다. “영화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연극이나 TV드라마가 아닌 영화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시도가 더욱 필요하다.” 여전히 영화에 대한 애정이 뜨겁고, 연기 앞에 겸손한 배우 한석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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