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이 달라졌다고? 글쎄…”
  • 송종호 서울경제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8 15:00
  • 호수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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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정부 시절 야당·언론과 전면전 불사하던 ‘양비’, 그의 정계복귀에 쏠리는 시선

“조선·동아는 저주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2004년 7월9일)

“톱거리가 없으면 차라리 백지를 내라.”(2006년 5월18일)

“효자동 강아지가 청와대를 보고 짖기만 해도 정권 흔들기에 악용하는 심보가 작용한 것.”(2006년 8월17일)

“솔직히 어이가 없다. 선거를 앞두고 내놓은 대단원의 ‘욕 사전’처럼 보인다.”(2007년 2월21일)

“나는 (언론말살의) 간신이 아니라 (언론개혁의) 사육신.”(2007년 5월31일)

현 여권에서 ‘문(文)의 남자’ 또는 ‘강성 친노(親盧)’로 불리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노무현 정부 시절 쏟아낸 발언들이다. 당시 언론과 야당을 향한 가시 돋친 발언들로 여권 내부에서조차 비판을 받았던 그가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온다. 그의 복귀에 정치권이 비상한 관심을 쏟는 이유는 ‘실세 중의 실세’라는 별칭과 함께 과거 그의 ‘센’ 이미지에 있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2018년 1월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북콘서트에 참가했다. ⓒ 연합뉴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2018년 1월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북콘서트에 참가했다. ⓒ 연합뉴스

“내년 총선을 親文으로 치르겠다는 의지”

노무현 정부 시절 강성발언으로 언론·야당과 연일 ‘혈투’를 벌였던 양 전 비서관이 다시 ‘싸움꾼’으로 정치권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한편으로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충신’의 복귀에 기대감을 갖는 눈치도 보인다. 그가 문재인 정부 후반기의 국정 동력을 좌우하게 될 내년 총선에서 ‘중재자’로 거듭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결국 ‘싸움꾼’ ‘충신’ ‘중재자’, 그 어떤 형태로든 내년 총선에서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의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최근 “양 전 비서관이 고사를 거듭한 끝에 민주연구원장직 제안을 수락했다”며 “이해찬 대표를 비롯해 여권의 많은 분들이 이제 당으로 돌아올 때라고 설득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정권교체 이후 백의종군을 선언한 지 2년 만이다. 게이오대 방문교수로 일본에 체류하다 최근 일시 귀국한 그는 이 대표를 만나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게이오대 일정이 끝나고 김민석 현 원장이 임기를 마치는 5월부터 직무를 시작한다. 

양 전 비서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가장 대표적인 친문 인사다. 2002년 대선에 도전했던 노무현 후보 선거캠프에서 언론보좌역을 맡았고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문 대통령에게 정치 활동을 권유한 인물로도 알려졌다. 아울러 2016년부터 대선 준비를 위한 실무조직인 이른바 ‘광흥창팀’을 이끌고 문재인 캠프 부실장을 맡아 문재인 대통령 탄생의 일등공신이 됐지만, 대선 직후 “문 대통령에게 부담 주기 싫다”며 돌연 출국했다. 당 안팎에서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전해철 민주당 의원과 함께 ‘3철’로 불린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당과 청와대가 내년 총선을 친문 중심으로 치러내겠다는 의지가 확실한 듯하다”며 “선거에 능숙한 86그룹 정치인과 함께 대통령에 대한 충심이 깊은 양 전 비서관도 상당한 역할을 하지 않겠나”라고 그의 복귀를 설명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이후 3철을 비롯해 소위 친노라 지칭되는 인사들이 전면에 나서서 선거를 이겨본 것은 지난 대선 딱 한 번”이라며 “괜한 분란만 일으키지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그동안 친노의 지나친 편가르기가 적진을 향하기보다 내부 분열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해당 관계자는 “가만히만 있어도 시기와 질투가 생길 수밖에 없는 대통령과의 특수관계에 있는데, 강한 어조의 발언들로 분열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양 전 비서관의 복귀를 반기지만은 않았다. 

당 안팎에선 그가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노무현 정부 시절 양 전 비서관과 청와대에서 호흡을 맞춘 한 여권 관계자는 “외부에 노출된 강성발언이나 행동뿐만 아니라 업무 스타일조차 독불장군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달라졌다”고 말했다. 여권에서는 그의 변화 시점을 대부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꼽았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한 여권 관계자는 “노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가장 강한 사람은 양정철 비서관”이라고 말했다. 충성심 강했던 양 전 비서관으로서는 노무현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던 언론을 참기 어려웠다는 말이다. 이른바 ‘주군’을 잃은 ‘충신’이 절치부심하는 세월까지 입혀져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그가 지난해 내놓은 《세상을 바꾸는 언어-민주주의로 가는 말과 글의 힘》이라는 책을 통해 그 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백의종군 의지를 말씀드리고 가장 먼저 봉하를 찾았다. 묘역에서 한참을 울었다. 돌아가신 분께 그나마 면이 서서 울었고, 지난 세월이 서러워 울었다. 그분이 서거 며칠 전 내게 건넨 마지막 말은 ‘양비(양 전 비서관)는 먹고살 방도는 있는가’였다. 죽음을 결심한 분이 일절 내색하지 않으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참모들 걱정을 한 것이다. 이 책은 ‘깨어 있는 시민으로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려 발버둥치고 있다’는 그분을 향한 나의 안부인사이기도 하다.”


강성이었는데 2012년 대선 이후 달라져

아울러 2012년 대선 당시 친노 세력 퇴장 주장에 용퇴를 선언해야 했던 경험도 양 전 비서관을 변모케 한 요인으로 꼽혔다. 당시 그는 문 대통령을 정치로 이끈 장본인이면서도 선거운동 중에 일선에서 물러났고, 결국 대선은 패배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대선 패배가 그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을 터다. 이후 강성발언도 잦아들었다.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민주주의는 디테일에 있다. 우리 생활 속 작은 일, 작은 생각, 작은 언어부터 바꿔야 한다. 배려·존중·공존·평등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는 배려의 언어, 존중의 언어, 공존의 언어, 평등의 언어를 쓰는 일에서 시작한다. 배려·존중·공존·평등의 언어로 생활 속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민주주의 완성 단계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를 향해 “제갈공명병(病), 정도전병에 걸렸다”는 지적도 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잊혀질 권리를 말하고서는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책을 출판하고, 토크콘서트를 열다가 결국은 정치에 복귀한다”며 “두 분 대통령을 모신 참모다 보니 자기 역할에 대한 자부심이 있을 수 있지만,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정서가 여전히 있는 게 아닌가”라는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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