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시작돼 버린 ‘용규 놀이’…이용규는 어디로?
  • 기영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22 14:00
  • 호수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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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트레이드 요청으로 파문 일으킨 한화 이용규
‘9번 타순’에 불만 폭발한 듯

프로야구에 때아닌 ‘용규 놀이’가 한창이다. 원래 ‘용규 놀이’는 한화 이글스 톱타자 이용규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서 자신이 타격감이 좋지 않다고 느끼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공이 들어올 때 끊임없이 파울로 걷어내다가, 투수의 실투가 나오면 노려서 안타를 만들곤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이용규가 이제는 프로야구판 전체를 상대로 ‘용규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용규는 프로야구 개막을 코앞에 둔 지난 3월11일(한용덕 감독)과 15일(운영팀장), 구단에 두 차례나 공개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트레이드가 안 되면 2군에 머물겠다며 언론 플레이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당사자인 한화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한화 이글스 이용규 선수 ⓒ 연합뉴스
한화 이글스 이용규 선수 ⓒ 연합뉴스

‘배보다 큰 배꼽’ 옵션에 부담 느껴

1982년 프로야구가 시작된 이후, 스프링캠프도 마치고 시즌에 대한 준비를 다 끝내 놓은 상태에서, 이용규 같은 국가대표 출신의 거물급 선수(만 34세)가 트레이드를 해 달라고 스스로 요청한 적은 없었다. 이 때문에 한용덕 감독이나 한화 이글스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고, 프로야구계도 전례 없는 일이어서 ‘이용규 사태’를 예의주시하게 됐다.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한화는 이용규를 일단 3군에 해당하는 육성군으로 내려보낸 후 그의 처리방안을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었다. 구단의 결론은 이용규의 요구를 절대로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구단과 선수가 서로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하면, 한화는 이용규에게 한 푼도 주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는 계약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라며 KBO가 적극 반대하고 있다. 향후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용규는 왜 시즌 오픈을 코앞에 두고 트레이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일까? 이유는 3가지다.

첫 번째는 포지션, 두 번째는 타순, 셋째는 연봉계약 조건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한 감독은 팀의 공격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외야를 중견수 정근우, 우익수 자레드 호잉, 그리고 좌익수 이용규로 각각 배치했다. 2루수 전문인 정근우의 중견수 수비 범위가 좁기 때문에 전문 외야수인 이용규와 호잉이 좌우에서 도와주라는 의미다.

그리고 최근 메이저리그 LA 에인젤스가 마이크 트라웃, 뉴욕 양키스가 애런 저지 등을 2번 타순에 배치했듯이 ‘강한 2번’ 추세에 맞춰 2번 타순에 강타자 송광민을 두려고 했다. 국내 프로야구도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가 거포 한동민을 2번에 배치해 재미를 봤고, 올해 시범경기에선 키움 히어로즈가 ‘4번 타자’ 박병호를 2번에 기용하는 등의 테스트를 하기도 했다. 

LG 트윈스 류중일 감독도 지난 시즌 타격왕 김현수를 2번에 놓으려다 코치들의 만류로 포기하기도 했다. 2번에 장타력이 있는 선수를 기용하면, 9번에 출루율이 높은 선수를 배치해야 1번과 연계가 돼서 타점을 올릴 확률이 높기 때문에 원래 테이블 세터였던 이용규를 9번에 놓은 것이다.

이용규는 자신이 9번을 맡는 것에 큰 불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용규는 구단과 오랜 실랑이 끝에 스프링캠프로 떠나기 직전인 1월30일, ‘2+1년 26억원’에 계약을 했다. 계약 내용을 보면 계약금 2억원과 연봉 4억원씩 2년 동안 10억원만 확정된 금액이다.

그리고 2년 동안 매년 4억원씩 옵션 8억원과 2년 계약기간이 지난 후 남은 1년은 구단이 우선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2년 후에 구단이 계약을 해 주어야 남은 8억원(연봉 4억원과 옵션 4억원)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용규 입장에서 보면 ‘배(보장 10억원)보다 배꼽(옵션 16억원)이 더 큰’ 불리한 계약이 아닐 수 없다.

‘디테일에 악마’가 있듯이 옵션 조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히 나이가 많은 노장(좋은 뜻으로 베테랑)에게는 구단이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게 타자는 타석 수, 투수는 투구이닝 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용규로 볼 때 타순이 1·2번, 즉 테이블 세터에 배치되면 옵션을 채울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9번에 놓이게 되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한두 경기로 보면 1~2타석 정도 차이가 나지만, 시즌 전체(144게임)로 따지자면 최소한 50타석 이상 차이가 나서 옵션을 채우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용규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하더라도 팀을 위해 참아야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트레이드 요구의 시기, 방법, 절차, 모양새 모두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감독의 복안대로 좌익수(9번)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다 보면, 처음으로 중견수를 맡게 될 정근우가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이 타율 3할대 이상을 때리다 보면 원래 위치인 중견수와 1번 또는 2번 타순을 되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 ⓒ 연합뉴스
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 ⓒ 연합뉴스

이용규 야구인생의 오점으로 남을 듯

프로야구계에서는 이번 ‘용규 놀이’ 파문을 지켜보면서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용규는 트레이드 요구를 하기 전에 다른 팀과 미리 물밑 교섭을 한 것은 아닐까? 트레이드 카드를 맞출 수 있을까? 매우 영리한 선수로 알려진 그가 왜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한 것일까? 공개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등등. 또한 다른 팀으로 간다면 어느 팀이 가능할까? 대부분의 팀들은 이미 외야 라인업이 짜인 상태다. 그나마 kt 위츠와 NC 다이노스 두 팀이 이용규가 들어갈 틈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용규의 적지 않은 몸값이 걸림돌이 될 것 같다.

이용규가 20일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트레이드 요청 이유는 타순변화와 옵션 등의 이유 때문이 아니다”고 말했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별로 없는 듯하다. 오히려 사태가 확산되자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난만 가중되고 있다. 때아닌 ‘용규 놀이’가 어떻게 결말이 나든지, 이번 사태는 이용규의 야구인생에 커다란 오점(汚點)을 남기게 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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