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준영…’ 무엇이 그를 괴물로 만들었나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23 15:00
  • 호수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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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과시의 도구이자 성적 오락 대상으로 여겨

이른바 ‘정준영 휴대폰’이 살생부가 됐다. 처음 알려진 8인 대화방에서 승리, 정준영, 최종훈 등 세 명의 뮤지션이 모두 은퇴했다. 그 후 용준형과의 1대1 대화방이 알려지며 용준형도 은퇴했고, 이종훈과의 1대1 대화방도 알려져 이종훈은 사과했다. 이종훈도 은퇴해야 한다는 압박이 거세다. 내기 골프를 한 ‘1박2일’ 대화방도 알려지면서 차태현과 김준호가 자숙에 들어가고 《1박2일》 프로그램 역시 존폐의 기로에 섰다. 앞으로 또 어떤 이름이 대화 상대자로 등장할지 모른다. 

특히 불법 촬영물과 관련된 대화가 심각한 문제다. 단순 시청은 처벌받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관련자들이 은퇴해야 할 만큼 질타가 거세다. 처벌받는 잘못에도 은퇴하지 않던 연예인들이 단순 시청과 동조 발언으로 퇴출된다는 건 그만큼 이 사안의 죄질이 안 좋다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중심인물인 정준영은 직접 촬영하고 유포까지 했으니 죄질이 가히 연예계 역대급 수준으로 안 좋다. 

놀라운 건 정준영의 태도다. 여성들을 인격체가 아닌 성적 대상물 정도로 여기고, 불법촬영과 유포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유희 정도로 여기는 듯한 태도 말이다. 정준영이 나눈 대화를 보면 죄의식이 전혀 없어 보인다. 불법촬영 피해를 알게 된 여성이 정준영에게 더 이상 유포하지 말라고 사정해도 일말의 동정심이나 반성 없이, ‘아 영상만 안 걸렸으면 사귀는 척하고 (성관계를) 하는 건데’라며 아쉬워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지코가 ‘황금폰’ 얘기를 했을 때도 그렇다. 지코는 그 휴대폰에서 단지 연락처만 봤을 뿐이고 그 안의 내용은 몰랐다고 하는데, 정준영 본인은 휴대폰의 내용을 다 알 것 아닌가. 그런데도 녹화 중에 지코가 황금폰 얘기를 꺼냈을 때 전혀 긴장하거나 놀라는 기색 없이, 그저 태연하게 웃음 짓는가 하면 심지어 본인이 나서서 말을 보태기까지 했다. 죄의식과 경각심이 전혀 없는 태도다. 문제의 ‘황금폰’을 지코가 보도록 넘겼다는 것부터가 황당하다. 숨겨야 할 범죄 증거물이란 의식이 없고 아무런 조심성도 없는 것이다.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도 놀랍도록 당당한 모습. 무엇이 정준영을 이런 ‘괴물’로 만든 것일까?

3월14일 불법 몰카 촬영 및 유포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정준영이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3월14일 불법 몰카 촬영 및 유포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정준영이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모두가 괴물이 된 시대

유명 연예인으로 걸린 사람이 정준영일 뿐, 사실 우리 사회에 괴물은 많다. 인터넷 시대가 된 후 소개팅 앱 등을 통한 즉석만남이 많아졌는데, 2010~11년경부터 이런 만남에서 성관계를 한다는 의미의 ‘홈런’이란 용어가 퍼졌다. 홈런은 이내 과시 수단이 됐고, 오로지 성관계를 위해 여성을 속이는 기술들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홈런 강좌’ ‘2시간 전 홈런 인증샷’ 등의 이름이 붙은 게시물들이 인터넷에 게시됐다.

2013년경에는 여성을 상대로 홈런 치는 법을 전문적으로 알려준다는 ‘픽업 아티스트’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누리꾼들은 픽업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홈런 치는 기술을 공유했고, 클럽으로 가 배운 것을 실전에 적용했다. 성공하면 ‘홈런 인증’이라며 ‘홈런녀’의 사진을 올리고 다른 홈런녀를 찾아 밤거리를 배회했다. 나이트클럽 일부 웨이터들은 홈런을 잘 치게 해 준다며 손님들을 유혹했다. 이번 버닝썬 사태에서도 “VIP들이 홈런을 치게 해 줘야 한다”는 일부 MD(영업직원)들의 대화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준영 사태가 터진 후 한 게시판엔 ‘근데 일반에서도 홈런 인증 저런 거 많이 하잖아 정준영처럼’이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최근엔 대학생들이 단톡방에서 여학우들의 사진을 올리며 성적인 대화를 나눠 충격을 줬다. 일베에선 여친 인증이라며 불법촬영 이미지를 올리는 것이 유행했다. 웹하드 업체들은 누리꾼들이 올린 불법영상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지만 이렇다 할 제재는 받지 않았다. 불법촬영 피해자가 자살까지 해도 많은 누리꾼들은 그런 영상을 오락 정도로 여겼다. 불법촬영 범죄 기소율이 2011년 71.5%였던 것이 2016년엔 31.5%로 낮아졌다. 

이렇게 여성을 성적 오락의 대상이자, 정복했다는 과시의 도구로 여기는 문화가 인터넷상에 광범위하게 퍼졌을 때 정준영이 나타난 것이다. 그가 불법촬영을 시작했다는 2015년은 불법촬영물 ‘오락’ 문화가 들불처럼 번져가던 시기였다. 이러니 젊은 남성 연예인들이 정준영의 불법촬영물을 보고 ‘ㅋㅋㅋㅋ’라며 태연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모두가 괴물이 된 시대였다.


정준영의 당당함을 키워준 잘못들

정준영의 자신감을 키워준 사건도 있다. 정준영 등은 최종훈의 음주운전 사건이 조용히 덮이는 것을 목격했다. 연예인의 음주운전은 대서특필될 일이지만 ‘빽’을 쓰니 조용히 넘어갔다고 그들은 믿었다. 앞으로도 문제가 생겼을 때 ‘빽’을 쓰면 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승리는 다른 연예인이 음주운전으로 질타받는 것을 보고 ‘왜 기획사가 막아주지 않은 거지? 그 연예인을 버렸나?’라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연예인이 잘못을 저질러도 소속사가 막아준다는 믿음을 가졌던 것 같고, 정준영 등 대화방 멤버들도 당연히 그 믿음을 공유했을 것이다. 이들은 클럽 형태 주점을 유흥주점이 아닌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하며 ‘**같은 한국법 사랑해’ ‘단속 나오면 돈 좀 찔러주면 돼’라는 식으로 공적인 시스템을 조롱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정준영 본인이 2016년 불법촬영 혐의로 경찰 조사와 검찰 조사까지 받았지만 무혐의를 받았다. 자신이 불법촬영 범죄자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 텐데 무혐의 판정이 나오니 얼마나 세상이 우습게 느껴졌을까? 당시 휴대폰이 범행 도구이자 증거였는데 경찰은 그것을 압수조차 안 했고, 변호사는 거짓말로 경찰을 호도했고, 검찰은 휴대폰을 확보해 포렌식(디지털 저장 매체 복구 및 분석)까지 하고도 문제 영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정준영은 당연히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다. ‘나는 처벌받지 않는다’라는 자신감.

동시에 피해자들을 쉽게 봤다. 2016년 조사 때 피해 여성이 정준영을 위해 탄원서를 써줬다. 2차 피해에 대한 공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피해를 당하고도 오히려 정준영에게 유포하지 말아 달라고 저자세로 부탁한 여성도 있다. 이러니 피해자들이 자신을 신고하지 못할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 이런 요인들이 쌓여 그를 놀랍도록 당당하고 경각심도 없는 ‘괴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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