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넘치는 타살 정황, 열혈 형사를 누가 죽였을까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25 17:00
  • 호수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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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락인의 사건추적] 2010년 7월 강남경찰서 이용준 형사 사망 사건
그는 왜 경찰서로 출근 않고 부산으로 향했을까

서울 강남경찰서 강력팀에 근무하던 이용준 형사(27)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이 형사는 경찰 공채시험에 합격한 후 2007년 8월31일 강남서 관할 지구대에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7월24일에는 형사과 강력1팀으로 배치받았다. 

이날 저녁, 이 형사는 부산 출신 정보원인 서아무개씨의 전화를 받았다. 밤 10시쯤 이 형사는 서씨가 있는 강남구 논현동의 한 식당을 찾았다. 이곳에는 한 명이 더 있었는데 부산에 거주하는 김아무개씨였다. 서씨는 이 형사에게 김씨를 소개해 줬다. 이 형사가 서씨를 안 것은 열흘이 채 되지 않는다.

경찰수사연수원에서 수사요원 교육을 받던 중 다른 경찰서에 있는 입직 동기가 서씨를 소개해 준 것이다. 이틀 후인 7월26일 이 형사는 서씨와 둘이서 술자리를 함께했다. 두 사람은 다음 날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셨고, 이 형사는 서씨의 집에 가서 잠들었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이 형사는 서씨 집을 나왔다. 그리고 경찰서로 출근하지 않고 같은 팀원이 부탁한 강남구 소재 도난 사건 발생 현장으로 가서 사진을 촬영했다. 이 형사는 자신의 집으로 가서 샤워를 한 후 승용차를 타고 나왔다. 차량 내비게이션에 최종 목적지로 ‘GM대우 부산직영 정비사업소’를 입력했다.

이곳은 정보원 서씨가 소개해 준 김씨의 거주지 근처였다. 이 형사는 오전 10시43분쯤 서울요금소를 빠져나와 영동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자차 사고가 발생한다. 낮 12시35분쯤 영동IC~황간IC 부근에서 1차선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119구급대를 통해 충북 영동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이 형사는 갑자기 “화장실을 가겠다”며 응급실에서 나온 뒤 팔에 꽂혀 있던 링거 주사기를 빼고 병원을 나갔다. 이 모습은 병원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이것이 생전 이 형사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후 이 형사는 행방불명됐다. 

이용준 형사의 시신이 발견된 충북 영동의 한 저수지. 왼쪽은 이 형사의 생전 모습 ⓒ 시사저널 최준필·이용준 형사 유족 제공
이용준 형사의 시신이 발견된 충북 영동의 한 저수지. 왼쪽은 이 형사의 생전 모습 ⓒ 시사저널 최준필·이용준 형사 유족 제공

수상한 교통사고 후 행방불명

이 형사와 연락이 두절되자 강남서는 이 형사의 부모에게 전화해 실종신고를 하라고 권유했다. 얼마 후 이 형사의 아버지와 누나가 강남서를 찾아가 정식으로 실종신고를 접수했다. 그리고 7월29일 낮 12시50분쯤 충북 영동의 한 저수지(유료 낚시터)에서 이 형사의 시신이 떠올랐다. 

마을 주민 민아무개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물 위에 떠오른 시신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119구급대와 경찰은 신원 파악을 위해 시신에서 신분증을 찾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경찰공무원증이 나왔다. 

이로써 이용준 형사는 실종 이틀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서둘러 자살로 결론 내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경찰 수사는 처음부터 자살로 짜 맞추듯 했다는 게 유족의 설명이다. 유족들에 따르면 이 형사가 재직하던 강남서는 변사 현장에 가기도 전에 미리 자살로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고속도로에서 음주사고가 나서 자살한 것 같으니 그냥 여자 문제로 고민하다가 스스로 죽은 걸로 공식 브리핑을 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이 형사 사망 사건 수사를 맡은 충북영동경찰서도 “변사 현장에 스스로 빠져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내사 종결했다. 

그러나 이 형사의 죽음은 의문투성이였다. 그가 왜 경찰서로 출근하지 않고 부산으로 향했는지부터가 의문의 시작이다. 이에 대해 강남서는 ‘무단결근’이라고 하면서 업무와 관련 없는 독자적인 행동, 즉 일탈행동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내비게이션 기록을 보면 이 형사는 목적지가 확실했다. 부산으로 가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위계질서가 확실한 강력팀에서 신참이 평일 출근도 하지 않고 독자행동을 했다는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이 형사의 소지품 중에는 수갑과 수사서류, 결재서류, 경찰봉 등이 있었다는 것도 업무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그는 3년 연속 모범 경찰로 표창장을 받은 우수한 경찰관이었다.

이 형사는 정보원인 서씨를 만나기 전날 늦게까지 야근했다. 그리고 근처 지구대에 들러 자료를 복사했다. 승용차에는 기름을 꽉 채워놓았다. 강력반에서 잔뼈가 굵은 한 경찰 간부는 “내 경험상 이 형사는 어떤 사건과 관련해 정보원을 소개받았고, 부산으로 간 것도 이와 연관해서 볼 수 있다. 이럴 경우 업무와 관련한 출장이었거나 아니면 구두 보고해서 허락을 받아 취한 행동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형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을 수사 중이었고, 또 강남서가 아닌 지구대까지 가서 복사했던 자료가 어떤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형사의 교통사고도 심상치 않다. 경찰은 “졸음운전으로 인해 핸들을 과하게 꺾으면서 생긴 단독 교통사고”라고 결론 내렸다. ‘졸음’의 이유는 당일 새벽까지 마신 술이 덜 깬 것에 원인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국과수 부검 결과 이 형사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1%에 불과했다. 몸속에 알코올이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주취운전의 기준이 0.05%인 것을 감안하면 음주운전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 형사를 사고 현장에서 목격한 견인차 운전기사, 119구급대원, 고속도로 순찰대원, 영동병원 원무과 관계자 등은 한결같이 “술 냄새가 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교통사고 현장도 특이했다. 교통사고 전문가들도 “단순 사고로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보통 졸음운전 사고는 한쪽 대각선 부분만 부딪혀 사고가 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반해 이 형사의 차량은 세 면이 직각으로 부딪혀 파손된 경우다. 차량 우측면에는 검은색으로 된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가드레일에 부딪혀 생긴 것으로 보기 힘들다고 한다. 뒤에서 오던 차량이 옆면을 고의적으로 부딪치고 빠르게 사라졌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시신에서 발견된 의문의 약물

이 형사의 시신에서는 ‘디펜히드라민’ 약물이 검출됐다. 이것은 졸음과 진정작용이 강해 수면유도제로 사용된다. 종합감기약에도 들어 있는 성분이다. 이 약을 먹은 후 운전은 절대 금물이다. 그런데 이 형사가 부산으로 출발하기 전 먹은 것은 바나나 한 개다. 식탁 위에 놓인 껍질을 보고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위 내용물에 바나나는 없었는데, 이미 소화된 상태였다. 이것은 디펜히드라민 약물이 몸속에 들어간 것은 바나나를 먹은 이후라는 얘기가 된다. 

영동병원에서는 링거만 맞았을 뿐 다른 약물은 처방하지 않았다. 영동병원에서 변사 현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약국이 하나도 없었다. 유족들이 영동에 있는 약국을 모두 탐문해 봤으나 이 형사에게 이 약을 판매한 곳은 나오지 않았다. 유족이 이 형사의 의료기록을 조사해 보니 감기약을 처방받은 적도 없었다. 도대체 이 형사는 언제 이 약을 처방받았고 또 언제 먹었던 것일까. 

이 형사가 영동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왜 급하게 나왔는지도 의문이다. 경찰은 음주운전을 한 것이 들통날까봐 서둘러 빠져나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만약 음주운전이 이유였다면 혈액채취를 하기 전에 빠져나와야 한다. 그런데 이 형사가 병원을 나올 때는 혈액채취, CT촬영 등을 한 후였다. 그리고 이 형사의 체내에서 검출된 알코올 수치는 음주와는 무관했다. 뭔가 급한 용무나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형사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더욱 의아하다. 영동병원에서 영동읍 설계리에 있는 유료 낚시터까지의 거리는 2.2km 정도다. 보통 성인 걸음으로 가도 30분이 넘게 소요된다. 그곳은 차도로 연결돼 있어 사고 위험이 높아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영동 지역 택시기사 중 이 형사를 태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형사를 목격했다는 사람도 없다. 해당 장소는 외진 곳에 있는 데다 길이 여러 갈래로 나눠진다. 이 형사가 확실하게 알고 있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다. 더욱이 당시 이 형사는 병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이곳까지 혼자 걸어가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발견 당시 이 형사의 시신은 상당히 부패된 상태였다. 당시 30도를 웃도는 날씨였던 것을 감안하면 영동병원에서 나온 6월27일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시신에는 여러 군데 상처도 있었다. 최초 목격자는 “얼굴 왼쪽이 부어서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시신 사진을 보면 왼쪽 눈이 시퍼렇게 멍든 모습이 선명하다.

부검 결과 “두피를 절개하니 전두부 및 두정부에서 광범위한 ‘두피하출혈’이 있다”는 소견이 나왔다. 이것은 두개골을 감싼 피부에 상처가 나거나 충격이 가해져 출혈이 생긴 것을 말한다. 이 형사가 교통사고를 당해 영동병원에서 CT촬영을 했을 때는 없던 상처다. 또 시신의 목에는 압박성 표피 박탈 흔적이 있었다. 끈으로 목을 조인 것 같은 삭흔이다. 이것은 이 형사가 누군가로부터 폭행 등 상해를 입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형사의 죽음과 관련해 자살 증거는 없지만 타살 정황은 넘쳐난다. 이 형사의 부모는 “내 아들은 자살이 아니다”면서 추모 사이트를 개설하고 서명운동을 벌이며 진상규명을 촉구해 왔다. 2012년 12월 청주지검 영동지청은 유족 측에 “조사 결과 명백히 자살로 볼 증거가 없으며 살인 또는 타인의 관여로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정할 근거도 없다. 현재까지 조사된 내용만으로 사망경위를 밝히는 것에 한계가 있다. 더 이상 수사할 내용도 없어 내사 종결한다”는 진정 사건 처분결과통지를 보냈다. 이 형사는 ‘자살’ 오명은 벗었지만 자살도 타살도 아닌 이상한 죽음이 되고 말았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 이 형사는 자살하지 않았다.

경찰은 처음부터 이 형사를 ‘자살’로 몰아갔다. 유족들은 “용준이는 자살할 이유가 없고, 절대 자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보통 자살자에게는 ‘사전 징후’가 있지만 이 형사는 이런 것이 전혀 없었다. 가정 문제, 돈 문제, 여자 문제, 직장 내 갈등 등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오히려 일에 열정이 넘쳤던 강력반 형사였다. 그런데도 경찰은 없는 이유를 만들어 자살로 단정해 사건화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2. 시신은 타살된 후 옮겨졌다.

이 형사는 2010년 7월27일 오후 1시47분에 영동병원을 나왔고, 시신으로 발견된 것은 29일 목요일 낮 12시50분이다. 약 2일 정도 공백이 있다. 만약 걸어서 유료 낚시터까지 갔다면 아무리 늦어도 27일 해 질 녘까지는 도착했어야 한다. 

이날 낚시터에는 7~8명 정도의 낚시꾼이 왔었고, 밤 11시까지 낚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28일에는 18명 정도가 낚시를 하러 왔다고 한다. 이 형사가 이곳까지 걸어왔다면 목격자가 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27일 저수지에 빠져 자살했다면 28일에는 발견됐어야 한다. 

왜냐면 낚시터의 수심은 어른이 들어가면 겨우 허리까지 찰 정도로 얕은 곳이었다. 참고로 이 형사의 키는 173cm, 체중은 약 66kg이다. 억지로 고개를 숙여서 물속에 넣지 않는 이상 자살하기 어려운 깊이다. 

이 형사의 시신이 발견된 지점도 낚시 좌대에서 불과 2~3m 정도였다. 유속도 거의 없어 이 형사가 다른 곳에서 자살한 후 이곳으로 떠밀려 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형사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형사가 변사체로 발견된 지점에서 소지품이 나오지 않은 것도 의문이다. 주요 소지품 중 지갑, 휴대전화, 형사수첩이 발견되지 않았다. 영동병원을 나갈 때 신었던 슬리퍼도 한 짝만 발견됐다. 여러 정황상 이 형사는 낚시터에서 자살했다기보다는 다른 곳에서 타살된 후 이곳에 유기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3. 병원에 전화한 남성이 열쇠 쥐고 있다.

이 형사가 영동병원을 나온 다음 날 오전 한 남성이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온다. 그는 “나는 가족인데, 용준이는 괜찮다. 용준이가 무서워서 도망간 것이다”는 이상한 말을 남겼다. 이 남성은 누구인데, 왜 병원에 전화를 걸어 이런 말을 한 것일까. 

통화 내용으로 보면 그는 최소한 이 형사의 행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이용준 형사’가 아니라 ‘용준이’라고 호칭한 것도 평소 친분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용준 형사가 타살된 것이라면 범인이거나 공범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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