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심기운동’ 했던 백기완
  • 김지영 기자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3.26 07:55
  • 호수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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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다. 혹자는 난세(亂世)라 부른다. 갈피를 못 잡고, 갈 길을 못 정한 채 방황하는, 우왕좌왕하는 시대다. 시사저널은 2019년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특별기획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인터뷰 기사를 연재한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한 시점에 맞춰 정해졌다. ⓛ조정래 작가 ②송월주 스님 ③조순 전 부총리 ④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⑤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⑥김원기 전 국회의장 ⑦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⑧박찬종 변호사 ⑨윤후정 초대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⑩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⑪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⑫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노랫말을 만든 《자진학생녹화대》 악보 ⓒ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노랫말을 만든 《자진학생녹화대》 악보 ⓒ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영원한 재야인’이다. 평생을 반독재 해방통일 운동에 바쳤다. 백 소장 표현대로라면 “참된 민주화란 니나(민중)가 주도하는 민중해방통일”이다. 이 믿음으로 오늘에 이른 백 소장이다. 

통일문제연구소는 1967년 재야 사무실로는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백 소장은 “통일의 알짜(실체)란 썩어 문드러진 독점자본주의를 청산하는 것이며 통일의 알기(주체)는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이라고 밝혔다. “너도나도 일하고 너도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노나메기 세상을 만들자”고 힘줘 말한다. ‘노나메기 문화원’ 건립에도 힘쓰고 있다.

백 소장은 1933년 황해도 은율 구월산 밑에서 태어났다. 어려선 혼자 공부했다. 1950년대엔 농민운동, 도시빈민운동, 나무심기운동을 했다. 백 소장은 “6·25전쟁이라는 참화에 시달리다가 느낀 바가 있어. 폐허가 된 이 메마른 땅에 목숨, 즉 생명을 심었다. 사람도 푸르게 가꾸자며 한편으론 나무심기운동 또 한편으론 농민운동, 빈민운동을 했다”고 회고했다. 백 소장은 당시 자진녹화대, 농촌계몽대 대장으로 활동했다. 그때 직접 《자진학생녹화대》 노랫말을 만들기도 했다. 1960년대엔 한일협정반대투쟁에 나섰다. 그는 “박정희가 강요하던 한일협정은 분단체제를 영구화하려는 국제 독점자본의 음모”라고 했다. 1970년대엔 장준하 선생과 함께 박정희 정권에 맞서 반유신 투쟁을 주도했다. 이로 인해 긴급조치 1호로 구속됐다. 백 소장은 “박정희야말로 첫째, 용서 못할 악질 친일파 민족반역자다. 둘째, 이 땅의 민주주의를 압살한 유신독재 민주 반역자다. 셋째, 민중의 해방통일, 정의와 인도를 가로막는 인간 반역을 저지른 3대 반역자”라고 규정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때 모진 고문을 당하며 감옥살이를 했다. 1987년 민중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다. 민주세력을 통합해 군사독재를 끝장내고 분단 부패 세력을 없애고자 했다. 이명박 정권 타도 투쟁 현장에도 함께했다. 박근혜 탄핵 촛불혁명 때는 몸이 불편함에도 한 번도 빠짐없이 집회 현장 맨 앞을 지켰다. 

우리 겨레의 이야기 속에 숨 쉬는 민족문화와 민중문화를 끄집어내 새롭게 창작하는 일과 우리말 살려 쓰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민중해방사상의 뿌리를 다듬고 ‘통일의 알짜는 노나메기’라는 철학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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