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코스닥 무자본 인수 게이트 드러날까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9.03.27 08:00
  • 호수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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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악명 높은 기업사냥꾼 이모씨 등 압수수색…과거에도 동일 수법으로 기업 농락하다 덜미

검찰이 기업사냥꾼 이모씨에게 총부리를 정조준했다. 코스닥 상장사들을 무자본 인수한 뒤 사내 자금을 횡령한 혐의와 관련해서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액만 10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증권가에서도 악명 높은 인물로 꼽힌다. 과거 우량 기업들을 무자본 인수해 상장폐지에 이르게 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씨는 2011년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고, 현재 국세청 고액체납자 명단에도 올라 있다. 검찰은 이미 피해 기업과 이씨 개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과 함께 피의자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금융범죄에 대한 수사는 통상 서울남부지검이 담당하지만 이번 사건은 이례적으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가 맡았다.

서울 광진구 테크노마트 프라임동 35층에 위치한 지와이커머스 본사 ⓒ 시사저널 이종현·시사저널 임준선
서울 광진구 테크노마트 프라임동 35층에 위치한 지와이커머스 본사 ⓒ 시사저널 이종현·시사저널 임준선

‘레이젠→KJ프리텍→지와이커머스’ 순 인수

검찰과 피해 기업 등에 따르면 이씨는 2016년 코스닥시장에 돌아왔다. 첫 타깃은 IT부품업체 레이젠이었다. 이씨가 실소유주로 알려진 에스디엑스는 픽솔투자조합1호를 설립해 2016년 6월 코스닥 상장사였던 레이젠을 인수했다. 초기 인수 자금 170억원은 사채 등으로 조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레이젠은 2017년 4월 에스티투자조합을 내세워 또 다른 상장사 KJ프리텍의 경영권을 확보했고, KJ프리텍이 설립한 지파이브투자조합(옛 아이원투자조합)은 다시 지와이커머스 최대주주에 올랐다. 

‘에스디엑스→투자조합→레이젠→투자조합→KJ프리텍→투자조합→지와이커머스’ 형태로 인수·합병(M&A)을 진행해 온 것이다. 기업들 사이에 매번 투자조합을 끼워 넣은 것은 인수 자금 출처를 숨기기 위한 결정으로 분석된다. 투자조합은 금융감독원이나 한국거래소에서 현황 확인이 불가능하고, 중소기업청 등 국가기관 공시 의무도 없어 투자자와 자금출처를 숨기기에 용이하다. 그동안 투자조합이 기업사냥꾼들에게 악용돼 온 이유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씨는 불과 1년7개월여 만에 상장사 3곳을 거머쥐었지만, M&A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경영권을 잡은 지와이커머스의 100% 자회사 큰빛을 통해 또 다른 상장사인 해덕파워웨이 인수에 나섰다. 그 결과 지난해 8월 큰빛은 지와이커머스 최대주주와 주식 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 큰빛은 전체 주식 매각 대금 360억원 중 선급금 137억원을 최대주주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잔금 지급이 계속 지연되며 양측은 갈등을 빚었다. 그러던 지난해 10월 해덕파워웨이 최대주주가 큰빛과의 주식 양수도 계약을 해지하면서 결국 인수는 불발에 그쳤다.


친인척과 지인 내세우고 철저히 배후에

상장사 3곳의 경영권을 쥐었지만 이씨는 돈 한 푼 들이지 않았다. 전환사채(CB)를 발행해 마련한 자금으로 기업을 인수한 뒤, 해당 기업의 주식을 담보로 금융권 대출을 일으켜 CB 발행 자금을 돌려막는 식이었다. 인수할 기업의 주식으로 그 기업을 사들인 셈이다. 실제, 이씨가 KJ프리텍을 인수할 당시에도 이런 방식이 동원됐다. 에스티투자조합은 에스디엑스를 상대로 CB를 발행해 마련한 자금으로 KJ프리텍 경영권을 확보했고, 다시 KJ프리텍 주식을 담보로 제2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CB 발행 자금을 충당했다.

또 이씨는 철저히 배후에서 움직였다. 어느 기업에도 이사로 등기되지 않았다. 대신 친인척과 지인을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등에 앉혀 경영권을 행사해 왔다. 실제 이씨의 친조카는 에스디엑스 대표이사와 지와이커머스 경영지배인, KJ프리텍 사내이사 등을 겸임했고, 아내는 레이젠 감사위원과 지와이커머스 사외이사를 지냈다. 이씨의 과거 범행에서 공범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최아무개씨도 에스디엑스 대표이사와 레이젠 사내이사를 맡았다. 이 밖에 대부분 요직들도 모두 이씨의 측근들로 채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이렇게 확보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인수한 기업들의 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여금 형태로 자금을 유출하는가 하면, 사채업자로부터 채무를 진 뒤 회사에 연대보증을 떠넘기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기업들이 입은 피해는 천문학적이다. 당장 지와이커머스에서 유출된 자산만 500억원을 웃돈다. 여기에 레이젠과 KJ프리텍의 유출 자금을 더하면 피해금은 1000억원대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 피해는 제3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개미투자자들은 막대한 투자 손실에 직면했고, 피해 기업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씨가 과거에도 코스닥 상장사 두 곳을 무자본 인수해 상장폐지에 이르게 한 전력이 있다는 점이다. 그의 과거 범행수법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무자본 인수→사내 자금 횡령→상장폐지’라는 공식에 따라 기업사냥이 이뤄졌다.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친인척 등을 대리인으로 내세우는 것이나, 단기대여금 형식으로 자금을 유출하는 방식도 동일했다.

그의 첫 피해 기업은 인네트다. 이씨는 2007년 그가 실소유주인 이베이홀딩스를 통해 인네트를 인수했다. 인네트는 그해 말 돌연 인도네시아 자원개발 프로젝트 진출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씨가 해외 자원개발을 명목으로 회사 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네트는 상장이 폐지됐다.

이씨는 2009년에도 오리엔탈리소스라는 법인을 내세워 1세대 토종 소프트웨어(SW) 업체인 핸디소프트를 인수하기도 했다. 그 직후 이씨는 핸디소프트 사옥을 매각해 마련한 415억원 가운데 290억원으로 몽골 구리 광산개발회사인 MKMN 지분 51%를 취득했다. 그러나 MKMN은 탐사권은 있지만 채굴권은 없어 수익을 낼 수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검찰 수사 결과 이씨는 사전에 동생 명의로 MKMN을 100만원에 인수해 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핸디소프트도 2010년에 결국 상장이 폐지된 전례가 있어 이번 검찰 수사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시사저널은 이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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