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의 무모한 도전과 실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27 09:00
  • 호수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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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균형발전 전략’ 근본적 재검토 없인 ‘악순환 반복’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게 들리지 않는 시대. 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수도권 집중 현상이 지속되면서 지방 쇠퇴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지난 1월 총사업비 24조1000억원 규모의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한다는 파격적인 조치를 통한 대형 SOC 사업으로 지방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조치였다. 하지만 이를 통해 근본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예상보다는 ‘지방 사정이 오죽 어려우면’이라는 인식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지난 50여 년 동안 균형발전을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해 왔다. 특히 참여정부의 경우 중앙행정기관 지방 이전(행정중심복합도시, 현 세종특별자치시)과 더불어 공공기관 지방 이전(혁신도시) 사업을 과감히 시행했다. 전국 광역지자체에 골고루 배치된 혁신도시가 지역발전의 거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고, 지자체 역시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과 경쟁을 펼쳤다. 15년이 지난 지금,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 2차 공공기관 이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지역 내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기존 혁신도시의 경우 더 많은 공공기관이 내려와 혁신도시가 활성화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의 경우 공공기관 이전의 효과를 특정 지역이 독식하는 데 대해 비판하며 분산배치를 주장하고 있다. 과연 혁신도시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제대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해 왔을까?

헬기에서 내려다본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 ⓒ 연합뉴스
헬기에서 내려다본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 ⓒ 연합뉴스

실속 없는 혁신도시의 현실

2003년 6월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지방 이전 추진방침 발표를 시작으로 2005년 6월 ‘공공기관 지방이전계획’ 발표로 본격화된 ‘혁신도시’ 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거의 마무리됐다. 2019년 3월 현재 10개 혁신도시에 1개 기관을 제외한 114개 공기업 및 관련 기관이 이전을 마무리했다. 2018년 말 기준으로 총사업비 약 9조8000억원이 투입된 혁신도시는 기관 이전과 더불어 7만4000호의 주택과 인구 19만2000명이 거주하는 도시로 성장했다. 가족이 함께 이주한 비율은 2018년 6월을 기준으로 35.9%, 미혼 및 독신을 포함할 경우 62% 수준에 이르렀다. 규모 면에서는 이제 정착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정부는 이전 공공기관에서 인재 채용 시 지역에서 일정 비율 이상을 선발하도록 의무화했다. 그 비율은 2018년 18%를 시작으로 2020년 24%, 2022년 이후 30%로 높아질 예정이다. 

그러나 각종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이 중심이 돼 고용과 혁신을 이끌 것으로 기대됐던 산·학·연 클러스터의 경우 입주율은 28%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신규 고용 규모 역시 1만1000명으로 당초 예상했던 13만 명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실속이 없는 것이 혁신도시의 현실인 셈이다.

예상과 달리 혁신도시가 지역균형발전과 지역 내 고용창출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공기관의 역할과 역량을 과대평가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공공기관은 대부분의 영역에서 갑의 위치에 있으며, 많은 관련 기업들은 공공기관과의 안정적 관계 형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기업 매출 상당수는 민간 부문에서 발생하는 만큼, 공공기관과 함께 이전해 고용을 창출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파악할 수 있다. 아울러 공공기관은 기본적으로 정부 정책과 시책을 집행하고 관리하는 기관으로서 자체적인 매출증대와 혁신을 추진할 동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 또 공공기관과 관련된 업무 대부분은 전국 단위에 있기 때문에 본사 주변에 산·학·연 클러스터가 형성될 유인도 약하다는 점도 간과됐다. 

물리적으로는 서울과 수도권을 떠났지만 실제 업무 대부분이 여전히 서울 및 세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것도 혁신도시의 한계다. 이와 같은 한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고속철도 이용객 급증이다. 10년 전인 2009년 3700만 명 수준이던 이용객이 2014년 약 5600만 명을 기록했고, 2018년에는 무려 8400만 명으로 급증했다. 급증 요인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공기업 지방 이전에 따른 출장 수요가 급증한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물론 이전 기관과의 협의 등을 위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동하는 수요도 증가했겠지만 이 또한 이전 공공기관이 수도권 지역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보이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혁신도시는 대부분 외곽에 별도의 신도시를 형성하는 형태로 조성됨으로써 기존 시가지와의 공동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기존 시가지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 달리 홀로 떨어진 섬 같은 존재로 혁신도시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해당 지자체가 재정 여건 등을 이유로 추가적인 투자를 꺼림에 따라 만족도는 52점 수준에 머무르면서 공공기관 직원들과 지자체의 갈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혁신도시가 위치한 지역에만 변화가 일부 나타날 뿐 인접지역 및 광역지자체 차원의 변화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까지의 혁신도시는 목표한 균형발전 달성에는 실패했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더 많은 공공기관을 다시 이전시키는 것은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만 할까?


지역발전 도모할 역량·전략 부재가 실패 원인

혁신도시 이전에 따른 균형발전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이전 공공기관의 수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 아니라 이전 공공기관을 활용해 지역발전을 도모할 지역의 역량과 전략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도로공사와 교통안전공단이 위치한 김천시가 자율주행차 실증운행을 주도해야 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주택관리공단이 자리 잡은 진주시가 도시재생의 선두주자가 돼야 하지만 그런 움직임은 매우 미약한 것이 현실이다.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역량과 의지가 부족한 것이 우리나라 지자체의 현실이다. 지자체가 변화하지 않은 이상 어떠한 혁신도시 정책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 이전은 단순히 기관의 물리적 이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임직원과 가정은 큰 희생과 변화를 겪어야 할 뿐만 아니라 조직 역량의 약화, 업무효율의 저하 등을 감내하는 극단적 처방이다. 이러한 희생과 비용을 치러서 과연 무엇을 얻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평가 없이 이전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공기관의 효율성과 능력 저하는 단순히 기관 한 곳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손실을 가져온다. 

2차 세계대전 막판에 독일 베를린에 진입한 소련군 병사들은 전구와 수도꼭지를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그것만 들고 있으면 어디에서라도 밝은 불빛과 맑은 물이 나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수도권에 위치한 기관을 이전하면 어디나 수도권과 같은 수준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2차 공공기관 이전 논의를 통해 우리의 균형발전 전략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지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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