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환자에 보약 지어준 ‘미세먼지 정책’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1 07:55
  • 호수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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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 ‘환경’보다 ‘경제’ 중시…‘전기료 인상’ 논의 계속 외면

식단 조절과 운동. 다이어트의 성공 방정식이다. 다른 뾰족한 방법은 없다. 모두 알지만 사실 지키기 쉽지 않다. 매일 밤 야식을 참고 운동을 하는 일은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이 방법이 제일 빠르고 효과적이다. 다이어트에 지름길은 없다. 

그런데 식단 조절을 하면서 음식 고르는 기준을 칼로리 대신 가격으로 하면 어떻게 될까. 가격이 싸다고 샐러드 대신 햄버거를 더 자주 먹는다면 말이다. 또 운동을 하면서 유산소 운동은 뒷전으로 둔 채 근력 운동만 하면 어떻게 될까. 멋진 근육을 키우겠다며 단백질 보조제와 보약 등만 먹는다면 과연 다이어트는 어떻게 될까. 다이어트는커녕 몸만 상하기 십상일 것이다. 

지금까지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정부가 실시한 정책이, 투입한 예산이 이렇게 사용됐다면 과장일까.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최근 몇 년간 정부는 미세먼지 감축 조치를 담은 ‘특단의’ ‘특별한’ ‘종합대책’ 등을 내놨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모든 대책이 미봉책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기료 인상처럼 시민들에게 ‘불편함’과 ‘비용’을 요구하는 ‘진짜’ 근본 대책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오히려 미세먼지 관련 예산은 ‘환경성’보다는 ‘경제성’에 방점이 찍힌 정책 아래 사용됐xx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017년 4월13일 서울 영등포구 중앙당사에서 내 삶을 바꾸는 정권교체 시리즈, 미세먼지 대책 관련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017년 4월13일 서울 영등포구 중앙당사에서 내 삶을 바꾸는 정권교체 시리즈, 미세먼지 대책 관련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전기료 인상’ 무서워 ‘환경 급전’ 방식 계속 미뤄 

“미세먼지는 사회재난에 해당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월2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기존 예산으로는 최근 미세먼지 문제에 근본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며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공식화하며 한 발언이다. 올해 정부가 편성한 미세먼지 관련 예산이 대략 1조7000억원인데, 사회재난 같은 지금의 미세먼지 사태를 멈추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조 단위’ 예산이 더 필요하다고 ‘고백’한 셈이다. 추경 규모는 1조원 이상, 시기는 4월이 유력하다는 전망이다. 

과연 추경은 대한민국 전체를 뿌옇게 뒤덮은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정부가 미세먼지 대책 예산을 어떻게 사용해 왔는지를 살펴보면 대략의 결과를 전망할 수 있다. 시사저널은 미세먼지 대책이 지금까지 어떤 방향으로 짜여 추진됐는지, 그리고 그 예산들은 어떻게 쓰여 왔는지를 추적했다. 특히 그동안의 정책, 예산 편성과 집행에서 발견된 오류들에 집중했다. 

그동안 전력 생산은 이른바 ‘경제 급전(給電)’이라는 잣대로 이뤄졌다. 급전이란 전기를 공급한다는 뜻이다. 즉 전기를 공급하는 기준에 ‘경제성’을 최우선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는 발전기 효율과 연료비를 고려해 전기 생산단가가 낮은 발전기부터 가동했다. 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원자력과 석탄을 먼저 가동하고 그래도 전력이 부족하면 더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등을 돌렸다. 경제성을 가장 중요시하는 방식이라 석탄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경제 급전’ 방식은 오랫동안 ‘석탄발전 전성시대’를 유지시킨 힘이었다. 석탄화력은 여전히 한국의 주전원으로 2017년 기준 전체 발전량의 43%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모두 61기(총 설비용량 36.8GW)의 석탄발전을 하고 있으며 5.4GW 규모의 신규 발전소를 건설 중이고, 2.1GW가 추가로 건설에 들어갈 예정이다. 

문제는 석탄화력발전소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무려 40%를 차지하는 미세먼지 유발물질의 주요 배출원이라는 점이다. 단일 배출원으로 수도권 미세먼지의 주범은 석탄화력발전소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는 ‘고농도 미세먼지가 심각한 날’에 한해 몇몇 석탄발전소의 출력을 약간 줄이게 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값싼 에너지를 쓰는 대신 미세먼지를 ‘생산’해 왔던 셈이다. 

‘경제 급전’ 방식을 환경을 최우선 기준으로 하는 ‘환경 급전’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국회 예산정책처가 이미 2016년 하반기에 분석한 시나리오가 있다. 미세먼지가 심한 봄철에는 가격이 싼 연료부터 ‘유류발전→석탄발전→가스발전’ 순으로 이뤄지는 기존 전기 구매 방식(경제급전) 대신 미세먼지를 적게 배출하는 ‘가스발전→석탄발전→유류발전’ 순으로 발전소를 운영하는 방안이다. 예정처가 2016년 2~5월 데이터를 기반으로 석탄 대신 가스발전을 우선해 돌릴 경우를 가정해 분석한 결과 추가 비용은 약 8312억원 소요되지만 미세먼지를 포함한 2만6743톤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나타났다. 발전비용은 약 10% 증가하고 배출량은 약 37% 감소하는 셈이다.

‘환경 급전’의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다. 정부는 앞으로 ‘경제 급전’ 방식을 ‘환경 급전’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런데 ‘전기요금 인상’ 논의가 빠졌다. 원전과 석탄화력발전보다 상대적으로 원료 가격이 비싼 LNG발전 비용이 늘어나게 되면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생길 수 있다. 기관마다 계산 방식이 다르지만 정부가 환경 급전 방식을 유지하면 2030년 전기요금은 가구당 3000원에서 1만5000원 정도 오를 것이라고 전망된다. 전기요금 인상은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정부는 “당장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며 논의를 계속 미루는 모습이다. 당장 내년에 총선이 있어 당분간 사회적 논의는 더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미세먼지 주범 노후 경유 화물차 퇴출은 뒷전

미세먼지의 또 다른 주범은 노후 경유차다. 정부는 전기·수소차 구매 시 보조금을 지급해 노후 경유차를 퇴출하겠다는 전략이다. 전기차 보급과 충전 인프라 구축 예산은 작년 3523억원에서 올해 4573억원으로 확대됐다. 내년에는 더 늘린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역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다. 정부의 보조금 지원 대책이 배송차량이나 화물차처럼 운행시간이 길고 오염물질을 많이 뿜어내는 노후 경유차량이 아닌 일반 승용차 보조금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전기승용차 3만2833대, 전기화물차 1000대, 전기버스 300대). 

경유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먼지는 화물·특수차량의 기여율이 70% 이상이다. 대형화물차 1대가 배출하는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은 각각 경유승용차의 145.25배, 260.64배에 이르는 것(예산정책처 분석)으로 나타났다. 결국 정부가 제시한 친환경 자동차로의 전환이 다 이뤄져도 미세먼지 개선에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김상우 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장기적으로 대기환경의 개선을 위해 친환경 자동차 보급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이 계획이 미세먼지 저감에 기여하는 효과는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환경부는 미세먼지 저감 관련 사업에 이런 식으로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총 2조원 상당의 예산을 투입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며 “정부가 미세먼지 저감 사업의 핵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친환경차 보급 및 인프라 구축 사업의 효과를 분석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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