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폐보다 심장·뇌에 치명적이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3 11:00
  • 호수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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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관 통해 심장병·치매까지 유발

호흡기 문제를 일으키는 미세먼지가 폐보다 심장과 뇌에 더 치명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최근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심근경색과 치매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다. 이런 면에서 미세먼지는 단순히 기침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질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로 떠올랐다.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 68% 증가

의사들은 미세먼지를 심혈관질환의 새로운 위험요인으로 지목했다. 대한심장학회는 지난해 서울에서 ‘미세먼지, 심혈관의 새로운 적’이라는 주제로 추계학술대회를 열고,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이 유발하는 가장 중요한 질환으로 심혈관질환을 꼽았다. 크기가 큰 먼지는 폐에서 걸러져 가래로 배출되지만, 입자가 작은 미세먼지는 폐를 통과해 혈관으로 스며들어 심장과 중추신경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혈관으로 침투한 미세먼지는 콜레스테롤과 뭉쳐 혈관에 쌓인다. 동맥경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실제로 미세먼지가 많은 지역에 혈관질환자가 많다는 역학연구 결과가 있다. 

미세먼지 때문에 혈액이 끈적거리면서 피떡(혈전)이 생기기도 한다. 혈전이 심장으로 이동해 혈관을 막으면 심근경색이 온다. 또 뇌혈관을 막으면 뇌경색을 일으킨다. 응급으로 치료받지 않으면 사망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4년 세계적으로 흡연 사망자(600만 명)보다 많은 700만 명이 나쁜 공기 때문에 사망했는데, 이 가운데 370만 명은 미세먼지가 원인이다. 

이들의 사망원인을 분석한 결과, 심혈관질환(40%), 뇌졸중(40%), 만성폐쇄성 폐질환(COPD·11%), 폐암(4%) 등으로 나타났다. 미국심장학회는 미세먼지로 인한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이 커지고, 몇 년씩 장기간 노출된 경우에는 평균수명까지 줄어든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미국심장협회·뇌졸중협회가 공동으로 발표한 자료에서도 미세먼지에 노출되면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 위험이 68%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세먼지 노출에 따른 호흡기질환에 의한 사망 위험이 12% 높아진다는 결과와 비교할 때 상당히 높은 수치다. 질병관리본부도 미세먼지에 노출되면 심근경색과 같은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30~80% 증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심근경색증, 고혈압, 당뇨병, 심부전 등 혈관과 관련된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특히 미세먼지에 유념해야 한다. 또 현재 건강하더라도 가족력이 있는 사람, 고령자와 5세 이하 영유아, 신생아 등도 미세먼지로 인한 각종 질환의 고위험군이다.

ⓒ 시사저널 고성준
ⓒ 시사저널 고성준

 

치매·인지능력 저하 유발하는 미세먼지 

미세먼지가 직접적으로 치매를 유발한다는 증거는 부족하다. 그러나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게 학계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미세먼지가 혈관성 치매와 무관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중국과 멕시코의 대기 오염이 심한 지역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서는 대기 질이 좋은 곳에 거주하는 노인에 비해 치매선별검사 도구인 간이정신상태검사(MMSE) 점수가 확연히 낮았다. 공기가 나쁜 곳에 사는 사람의 치매 발병이 많다는 얘기다. 

심혈관질환 위험 15% 낮추는 도심 공원

내용을 입력하세요.그렇다면 공기의 질이 좋은 곳에서는 심혈관질환 발병이 적을까. 공원이 많은 도시에 살수록 심·뇌혈관질환 위험도가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국제학술지인 국제환경저널 1월호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도시 면적 대비 공원 면적 비율이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의 심·뇌혈관질환 위험도는 그렇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보다 15% 낮았다. 관상동맥질환과 뇌졸중 발생 위험도 각각 17%와 13% 낮았다. 박상민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팀(제1저자 서수민 연구원)이 도심 공원 면적과 심·뇌혈관질환 발생의 연관성을 조사한 결과다. 공원이 가까이 있으면 신체 활동을 더 하거나, 여름철 기온을 떨어뜨리거나, 미세먼지를 중화하는 효과를 보기 때문으로 보인다. 

간선도로에서 멀수록 뇌 질환 감소

미세먼지가 비교적 적은 곳에 살면 치매 발생 위험이 줄어들까. 주거지가 주요 간선도로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가 대기 오염도의 정도와 관련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가는 일이다. 이를 확인한 캐나다의 연구가 2017년 의학저널 ≪란셋≫에 발표됐다. 연구팀은 온타리오주에서 주거지가 간선도로에서 50m 이내, 50~100m, 100~200m, 200~300m, 300m 이상 떨어진 곳에 각각 5년 이상 거주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퇴행성 뇌질환의 발병 빈도를 조사했다. 결론적으로 간선도로에서 먼 곳에 거주할수록 퇴행성 뇌질환 발병 위험이 적었다. 다시 한번 대기오염이 치매를 유발하는 위험 인자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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