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 “중앙정보부 끌려가 죽을 고초 겪어”
  • 안성모 기자 (asm@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2 07:55
  • 호수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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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인터뷰] 1972년 ‘8·3긴급조치’ 관련 글 문제 삼아

혼돈의 시대다. 혹자는 난세(亂世)라 부른다. 갈피를 못 잡고, 갈 길을 못 정한 채 방황하는, 우왕좌왕하는 시대다. 시사저널은 2019년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특별기획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인터뷰 기사를 연재한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한 시점에 맞춰 정해졌다. ⓛ조정래 작가 ②송월주 스님 ③조순 전 부총리 ④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⑤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⑥김원기 전 국회의장 ⑦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⑧박찬종 변호사 ⑨윤후정 초대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⑩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⑪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⑫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⑬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1999년 10월14일 독일 헌법학자 볼프강 뢰버 교수와 허영 교수가 만나 독일 통일을 헌법적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 뉴스뱅크 이미지
1999년 10월14일 독일 헌법학자 볼프강 뢰버 교수와 허영 교수가 만나 독일 통일을 헌법적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 뉴스뱅크 이미지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박정희 정권 시절이던 1972년 교수 부임 첫해에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독일 뮌헨대에서 헌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허 교수가 그해 8월 독일 헌법학자 카를 슈미트의 결단주의(영도적 국가 이론)를 비판하는 글을 쓴 게 발단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2년 3월 경희대에 부임했는데, 그해 8월 8·3긴급조치가 있었어요. 김수환 추기경이 창간한 월간잡지 《창조》 편집국장이 연구실로 찾아와 8·3긴급조치에 대한 글 한 편을 써달라고 해서 쓴 거예요. 당시 신문·잡지 할 것 없이 모든 인쇄매체가 다 검열될 때인데, 내 글이 정보부에 딱 걸린 거죠. 편집국장이 ‘교수님 글이 검열에 걸려 불려갔는데 교수님도 아마 남산에서 오라고 할지 모릅니다’라는 거야.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 지프차로 나를 남산에 끌고 간 거지.”

허 교수는 “3일 동안 극심한 고문을 당하며 죽을 고초를 겪었다”고 했다. ‘또 한 번 이런 일로 걸리면 그때는 용서 없다’는 협박과 함께 풀려나기는 했지만, 이후 ‘내가 대한민국에서 헌법 교수로 살아갈 길이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었다고 한다. 허 교수는 1975년 학교에 1년 휴직을 하고 독일로 다시 건너갔다. 독일 정부에 연락해 초청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학교로부터 교수 재임용에 탈락했으니 귀국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지가 왔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6년 2월 반정부 교수들을 쫓아내기 위해 교수재임용제도를 만들었어요. 그해 5월 재임용에 탈락했다는 편지가 온 거죠. 난감하잖아요. 하루아침에 교수직을 잃어버렸으니까. 가족들도 있는데. 이 사건을 말하는 거 같아요. 창조지 필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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