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의정 공백, 유권자들은 몰라도 된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2 17:00
  • 호수 15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재호 민주당 의원 7개월째 투병 중…국민 알 권리도 국회 대처도 ‘깜깜’

국회의원이 어떤 사정에 의해 불가피하게 6개월 이상 공백기를 갖는다고 가정해 보자. 국회는 물론 지역구에도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의정활동을 올스톱한다면, 과연 이를 알 수 있는 유권자는 얼마나 될까. 의원실에서, 소속 정당에서 굳이 부재를 밝히지 않는다면 누구도 알지 못한 채 넘어가는 게 지금 대한민국 국회 현실이다. 실제 이런 일이 최근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재호 의원(경기 고양시 을)은 지난해 8월경 업무 중 쓰러져 수개월째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뇌 관련 질환으로, 현재까지 온전한 거동을 위해 재활 및 회복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그러나 투병 기간 동안 정 의원실은 지역구민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마치 정상적인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처럼 홍보해, 이를 둘러싸고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렇듯 의원의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발생한 의정 공백에 대해 현재 국회 내엔 뚜렷한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향후 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 의원의 경우 부적절한 이유가 아닌, 병상으로 인한 공백이었다. 그것도 과로로 인한 병상 가능성이 높은 뇌 관련 질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원실은 왜 이 같은 사실을 애써 감추려고만 했을까.

정재호 의원의 페이스북 최근 게시물엔 투병 전 그의 모습이나, 그를 제외한 지역 주민들의 활동 모습만 게재되고 있다. ⓒ 정재호 의원 페이스북 

SNS에는 와병 전 활동사진 꾸준히 올려

취재 결과 정 의원이 마지막으로 국회에 모습을 보인 것은 7개월여 전인 지난해 8월27일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였다. 이후 정 의원은 국회 국정감사는 물론 모든 상임위 회의와 본회의에 단 한 번도 출석하지 못했다. 그가 맡고 있던 정무위 여당 간사직도 와병을 시작한 직후인 9월, 같은 당 유동수 의원대행 체제로 넘겨졌다. 당시 간사 변경 이유에 대해 당은 정 의원의 개인 사정에 따른 것이라고만 밝혔다. 

회의가 있을 때마다 정 의원은 국회사무처에 청가(사전에 제출하는 결석계)를 신청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청가 처리가 되면 최종적으로 회의에 출석한 것으로 카운팅된다. 3월28일 현재 기준으로 정 의원은 상임위 회의 22차례, 본회의 13차례에 걸쳐 청가를 신청했다. 현행법상 의원이 회기 내 신청할 수 있는 청가 횟수는 제한돼 있지 않다. 국회의원윤리실천규범 규정상 지역구 활동과 결혼식 주례가 아닌 이상 청가 신청이 반려되는 일은 거의 없다.

문제는 의원들의 이런 청가 사유가 국민에게 일절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유진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의원이 여러 차례 청가서를 제출하고 회의에 출석하지 않아도 어떤 사유인지 국민으로선 알 수 없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국회 사무처에 확인 결과, 이같이 부재가 장기화될 경우 의원의 급여는 물론, 의원이 이용하는 차량 유지비, 운전기사 급여 등 부수적인 비용에 대한 제한 규정 또한 뚜렷하게 마련돼 있지 않다.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 의원은 국회 회의는 물론, 지역구 대소사 어디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지역구민은 이제껏 정 의원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지 못했다. 보통 주민들은 자신의 지역구 의원 활동 여부와 그 내용을 기사나 의원의 SNS를 통해 확인한다. 정 의원의 경우, 그가 병상에 있는 동안에도 SNS에 일주일에 1~2건씩 꾸준히 사진과 함께 의정활동 내용이 게재돼 왔다. 

그러나 SNS를 자세히 살펴보면, 최근 6개월여 동안 게재된 행사 및 회의 사진들엔 모두 정 의원이 빠진 채 보좌진과 지역주민들의 모습만 찍혀 있었다. 그가 와병 이전부터 꾸준히 올린 ‘덕양시 프로젝트’라는 지역구 활동 보고 게시글에도 언제부턴가 그의 모습이 아닌 지역 시민단체와 주민들의 활동 모습만이 찍혀 게재됐다. 3월25일, 정 의원이 해마다 참석했던 창릉천 꽃씨 뿌리기 행사가 진행돼 SNS에 당일 사진들이 올라왔지만 여기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때때로 새로운 의정활동 성과와 함께 그가 국회나 지역에서 활동하는 모습의 사진이 SNS에 게재됐는데, 이 역시 전부 와병 이전에 찍은 옛날 사진들이었다. 3월19일 정 의원의 SNS엔 그가 발족한 ‘서울·경기 서북부 교통문제 해결을 위한 통일로 포럼’의 내용과 의미를 담은 글이 올라왔다. 그러나 글과 함께 게재된 그의 사진은 2018년 8월22일 열린 국회 정무위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 회의 때 모습이었다. 실제 3월18일 국회에서 열린 이 포럼에도 정 의원은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상당수의 관련 기사에는 그가 참석했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2018년 8월27일 국회 정무위원회의에 참석한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그가 투병 전 국회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날이다. ⓒ 연합뉴스
2018년 8월27일 국회 정무위원회의에 참석한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그가 투병 전 국회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날이다. ⓒ 연합뉴스

“서로 모르는 척해 주는 게 ‘불문율’”

이와 같이 보좌진들에 의해 의정활동이 지속되는 경우라면, 지역구민으로선 자신이 뽑은 의원의 사정에 대해 알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 때문에 의원의 공백 사실을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이 유권자의 알 권리를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 의원이 와병 중이던 지난해 10월, 한 지역 언론에 이미 정 의원의 건강 이상설이 짧게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정 의원의 보좌진은 근거 없는 ‘지라시’라며 “연내 문제없이 의정에 복귀할 것”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하지만 해를 넘기고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정 의원의 공백은 계속되고 있다.

정 의원의 오랜 부재로, 국회 내에서도 의원 다수가 그의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대체로 알아도 모르는 척 눈감아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실제 국회 한 관계자는 “의원이 아파 오래 자리를 비워도 알리지 않는 게 불문율처럼 돼 있다”고 밝혔다. 3월26일 시사저널이 만난 정 의원의 보좌진 역시 “국회에서도 많이 알고 있지만, 이게 문제 삼을 수 있는 가십거리도 아니고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다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대체로 이해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 역시 유권자인 지역구민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정보를 제약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의원에게 특정한 사정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국민에게 공개할 의무가 부여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근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국장은 “현재로선 국회의원 본인이 원하지 않는 한, 의원이 일정 기간 이상 활동을 제대로 못 하게 되더라도 유권자가 의원 자격을 제한하거나 박탈할 법적 권한은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도의적으로 의원 본인이 먼저 적극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의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려는 노력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