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쌍끌이 압박에 또 궁지 몰린 황창규 회장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4 08:00
  • 호수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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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혜채용과 ‘로비사단’ 공개로 퇴진 재부상…KT 안팎선 황 회장 후임 하마평도

KT의 황창규 회장과 포스코의 권오준 전 회장은 닮은 점이 많다. 우선 회장 취임 시기가 2014년 초로 비슷하다. 전임 회장의 방만한 경영으로 회사의 경쟁력이 크게 훼손됐거나 적자에 시달릴 때였다. 회사의 신용등급은 시간이 갈수록 하락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두 회장은 각각 통신과 철강 본연의 경쟁력 회복을 외치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섰다. 그 결과 KT와 포스코의 경영상황이 호전되면서 두 회장은 연임에도 성공했다. 취임 첫해 2917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던 KT는 최근 4년 연속 영업이익 1조원대를 기록했다. 포스코의 영업이익도 2018년 5조5426억원으로 4년 만에 130%나 증가했다. 

그럼에도 이들 CEO(최고경영자)의 연임 행보는 순탄하지 않았다. 두 회사는 정권 교체기마다 외풍에 시달려왔다. CEO 자리가 정권의 전리품으로 인식되면서, 검찰이나 경찰 수사를 받고 회장이 중도 사퇴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순실 게이트에 두 회사가 연루되면서 황 회장과 권 전 회장은 강도 높은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럴 때마다 중도 퇴진 가능성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그럼에도 두 회장은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2020년 3월 임기를 채우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황 회장과 권 전 회장의 행보가 엇갈린 것은 지난해 4월이었다. 권 전 회장은 돌연 회장직 사임 의사를 밝혔다. 임기를 2년여 정도 남겨둔 시점이어서 배경이 주목을 받았다. 표면적인 사임 이유는 건강 문제였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정권 외압 의혹이 적지 않게 제기됐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각종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서 검찰의 추가 수사 가능성이 제기되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경찰은 2018년 1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KT 광화문 지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 연합뉴스
경찰은 2018년 1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KT 광화문 지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 연합뉴스

국회 쪼개기 후원 혐의로 1년 넘게 경찰 조사

우연의 일치일까. 권 전 회장이 사임을 발표하던 날, 황창규 KT 회장도 경찰로부터 20시간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였다. KT가 2014년 5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이른바 ‘상품권 깡’을 통해 11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뒤 19대와 20대 국회의원 99명의 후원 계좌에 쪼개기 입금하고, 골프 비용 등 접대비로 사용한 혐의였다. 

당시 KT는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 합병 저지, 회장의 국정감사 출석 제외, 은행법 개정 등을 위해 국회와 원활한 관계 유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경찰은 “불법 정치 후원금 기부 계획에서부터 실행까지 모두 회장에게 보고했다”는 CR부문 임원의 진술을 확보했다. 이후 황 회장과 구현모 사장 등 전·현직 경영진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에 의해 번번이 기각됐다. 황 회장 사건은 올해 1월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면서 또 한 번의 고비를 넘겼다. 

KT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황 회장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에 배당돼 있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사건을 왜 특수3부에 배당했는지 의문”이라며 “KT 내부에서는 회장직에서 물러나라고 압박하는 일종의 ‘시그널’로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황 회장은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흑역사를 종식하기 위해 완강히 버티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딸 특혜채용 의혹이 불거졌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는 경기도 성남시 KT 본사와 광화문 지사를 두 차례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김 전 대표의 딸이 1차 전형인 서류전형 합격자 명단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3월13일 부정 채용에 관여한 혐의로 KT 인사 담당 전무였던 김아무개씨를 전격 구속했다. 

이후 추가 폭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이름이 확인된 정치권 인사만 4명. 김성태 전 대표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정갑윤·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다. 당사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KT 사업이나 국회 활동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있었고, 자녀들 역시 관련 부서에 근무했다는 점에서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검찰도 유력 인사 자재 특혜채용이 윗선 지시에 따라 관행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 중이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응시자 이름 옆에 괄호를 치고 유력 인사의 이름이 손글씨로 적힌 공개채용 서류를 확보한 상태”라며 “현재까지 부정 채용이 확인된 사건만 모두 9건이다. 이 중 박근혜 정권 청와대의 고위인사를 지낸 A씨와 차관급인 민간 위원회 사무총장 출신 B씨도 포함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검찰은 3월27일 서유열 전 KT 사장을 추가로 구속했다. 조만간 특혜채용 의혹의 정점에 있는 이석채 전 KT 회장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물론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KT의 특혜채용 의혹은 대부분 황 회장의 전임인 이석채 전 회장 때 이뤄졌다. 황 회장이 현재 CEO이니만큼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직접적으로 사건과는 연관이 없다는 게 그동안 재계의 시각이었다. 하지만 최근 황 회장 재임 시절에도 홍문종 의원의 측근 3~4명을 부정 취업시킨 의혹이 제기됐다. KT 전·현직 직원들로 구성된 KT민주동지회는 3월21일 기자회견을 통해 “2014년 황창규 회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유사 사례가 계속 있었다는 제보가 있다”며 “검찰 수사를 통해 채용비리 청탁 정황이 추가로 포착된 6명을 검찰에 고발한 상태”라고 말했다. 

2018년 11월 발생한 KT 아현지사 화재로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황창규 회장이 부정 채용 의혹과 경영고문 명단 폭로까지 더해지며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2018년 11월 발생한 KT 아현지사 화재로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황창규 회장이 부정 채용 의혹과 경영고문 명단 폭로까지 더해지며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황창규 회장 “내년 3월 임기 채우고 퇴진”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기밀로 분류되는 KT의 경영고문 명단까지 폭로됐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월24일 “황 회장 취임 후 14명의 정치권 인사와 군인, 경찰, 고위 공무원 등에게 고액의 급여를 주고 민원 해결 등 로비에 활용해 왔다”고 주장하며 고문 명단을 공개했다. 고문단은 정치권 인사 6명, 퇴역 장성 1명, 전직 지방경찰청장 등 경찰 2명, 고위 공무원 출신 3명 등 모두 14명이다. 이들의 자문료 총액은 20억원으로, 매달 500만원에서 1400만원의 자문료가 지급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의원은 “황 회장이 정치권 줄대기를 위해 막대한 급여를 자의적으로 지급했다. 2017년 말 시작된 경찰 수사가 1년 넘게 지지부진한 것도 황 회장이 임명한 경영 고문들의 로비 때문이 아닌지 의심된다”며 “엄정한 수사를 통해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응분의 법적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이 사건 역시 서울중앙지검 조사2부에 배당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KT에 대한 사정기관이나 국회의 압박이 전임 이석채 회장을 넘어 황창규 회장에게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2014년 취임 이후 꾸준히 회복 중인 실적을 바탕으로 연임에 성공한 황 회장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황 회장이 또다시 검찰 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황 회장의 중도 퇴진 압박 역시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KT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황 회장의 후임자에 대한 하마평이 오르내리고 있다.   

황 회장도 이런 우려의 시선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최근 폐막한 세계경제포럼(WEF) 2019 연차총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IT 기업을 6년이나 이끈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젊고 유능한 인재가 경영을 맡기를 바란다”면서도 “내년 3월로 예정된 임기 만료에 맞춰 퇴진하겠다”고 말했다. 중도 퇴임은 없을 것이라는 뜻을 명확히 했다. 

KT 측도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니만큼 구체적인 언급은 곤란하다”면서도 “다툼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 많은 만큼 검찰에서 충분히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이철희 의원이 공개한 경영고문 14명과 자문 계약을 한 날짜가 2014년 11월부터 시작된다. CJ헬로비전 인수 이슈가 터지기 한참 전으로 시기상 다툼의 소지가 있다”며 “고문 선정은 사업적 필요에 따라 절차대로 자문 계약을 맺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홍문종 의원 측근 채용 역시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고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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