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들과의 요리가 주는 삶의 가치
  • 이미리 문토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2 13:00
  • 호수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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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리의 요즘 애들 요즘 생각] 시간과 마음을 들이는 일은 반드시 티가 난다

서울에서 혼자 산다는 것은 혼자 자주 밥을 챙겨 먹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는 사실을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소설가 김훈의 말처럼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고,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나를 책임지는 일이라는 것이 돈 버는 일로 족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나를 잘 먹이는 일이었다. 

혼자 무언가를 만들어 먹을 용기는 도저히 나지 않아 대부분 사 먹었다. 요리도 반조리 식품을 데우는 게 대부분이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24시 김밥집과 편의점이 없었다면 아마 진작 굶어 죽었을 거다. 가정 간편식 시장이 최근 5년 사이 6배 넘게 성장했다고 하니 이런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 내가 생면부지의 낯선 이들과 함께 요리를 하는 소셜 다이닝에 참여하고 있다. 평일 저녁, 주말에 함께 요리를 만든다. 직접 만든 음식을 먹으며 그날 주어진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고 떠드는 우리만의 오붓한 식탁을 만든다. 대개 나처럼 요리 초보를 넘어선 요리 무식자들이 대부분이다. 처음엔 칼만 잡아도 부들거리던 이들이 어찌어찌 다른 사람과 함께 한 끼 식사를 차려낸다.

혼밥이 대세인 시대에 직접 음식을 만들고 차려내어 함께 먹고 마시는 소란한 커뮤니티라니. 거기다 레시피를 배우거나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곳이 아니라니. 목적이나 효율을 따지는 사람이라면 조금 이상한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선 요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참여자들이 함께한다. 물론 요리 무식자들이 이 험난한 모험을 안심하고 떠날 수 있도록 돕는 전문가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가이드 역할을 할 뿐이다. 스스로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요리를 만들고 나서는 음식과 삶의 관계, 한국의 미식 문화, 때론 나를 위로하는 음식은 무엇인지와 같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나눈다. 이렇게 하며 깨닫는 사실이 있다. ‘아아, 요리는 참으로 복잡한 일이고 인내와 중노동의 산물’이라는 사실 말이다. 

소셜 다이닝에서 낯선 이들이 모여 함께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 ⓒ 이미리 제공
소셜 다이닝에서 낯선 이들이 모여 함께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 ⓒ 이미리 제공

한 달에 한 번 ‘혼밥’ 대신 ‘소란스러운 식탁’을 

하지만 흙 묻은 당근을 닦아내고, 조심스레 칼질을 하고, 그릇을 씻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웃고 떠들며 얘기하는 식탁을 마주해 보면 알게 된다. 시간을 들여 정성으로 함께 차려내는 식탁이 얼마나 우리의 몸과 마음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지를.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지만, 음식을 앞에 두고 함께 웃고 떠들며 즐기는 식탁이 그늘진 마음을 얼마나 따뜻하게 펼 수 있는지를. 때론 귀찮고 성가신 일들, 사소하지만 작은 일상을 정성스럽게 꾸려낼 때 우리 삶이 놀라울 만큼 생기 있게 반짝일 수 있다는 사실을 함께 나눌 식탁을 차리며 깨닫는다.

간단히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진 세상이다. 홀로 즐기는 만찬도 충분히 즐겁다. 그러나 때론 이렇게 함께 만드는 부산한 밥상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번거롭고 수고스럽지만 분명 가치 있는 시간일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매일은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나와 우리를 위해 근사한 한 끼를 차려보자. 시간과 마음을 들이는 일은 반드시 티가 나게 마련이다. 어떤 식으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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