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을 설립자 드레스룸으로”…막장까지 간 ‘사학비리’
  • 전북 전주 =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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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교육청 감사…설립자 일가·교직원 20억 부당이득 챙겨
공사대금 부풀려 차액 챙기고 학교에 태양광 설치로 이득 챙기기
A학교법인 의혹 전면 부인…도교육청, 설립자 등 형사 고발 검토

전북지역 한 사립학교의 설립자 일가가 수년간 부당이득 20억원 가량을 챙겨온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전북교육청은 3일 수년간 학교 예산을 빼돌리고 사유재산처럼 사용해 20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전주의 학교법인 설립자 일가와 교직원 등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 학교법인에 대한 중간 감사 결과다. 교육계에선 “소문으로만 떠돌던 족벌사학의 전횡이 그대로 드러나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1961년 설립된 A학교법인은 ‘가족경영’ 사학 중 하나다. 비위 의혹 대상은 설립자와 이사장 등 학교법인 이사 8명, 행정실 직원 10명 등 20여명이다. 이사 중 1명은 설립자의 아내, 아들은 이사장, 딸은 행정실장을 맡고 있다. 법인 산하 중학교는 2014년에 특별교부금을 받아 설치한 학교도서관을 사적 공간으로 사용하다 적발돼 당시 이사장 K씨가 물러났으나 그는 4년 후 다시 돌아와 지금은 설립자로 재직 중이다. 

전북도교육청 ⓒ시사저널 정성환
전북도교육청 ⓒ시사저널 정성환


전북 A사학에선 무슨 일이…학교예산은 설립자 집안 ‘쌈짓돈’ 

이번 감사에서 드러난 전주 소재 이 학교의 비위는 ‘사학비리의 종합판’이다. 전북교육청에 따르면 이들은 2014년부터 최근까지 학교 회계 예산을 부풀려 집행한 뒤 거래 업체들로부터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으로 부당이득을 챙겨온 것으로 파악됐다. 

공사업체와 계약을 체결한 뒤 대금을 송금하고서 실제 공사는 행정실 직원에게 맡겼는가 하면 공사대금이 설립자 호주머니로 흘러간 흐름이 포착됐다. 교육용 기본 재산인 교실을 개조한 해당 학교의 특별교실에는 설립자 부부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드레스룸과 화장실, 욕실이 설치된 사실도 드러났다. 

또 학교 옥상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페이퍼컴퍼니인 태양광 회사와 20년 동안 장기임대 계약을 맺어 수익을 빼돌린 사실도 적발됐다. 임차인은 설립자의 아들인 이사장 K씨로 드러났으며, 학교 행정실 직원을 관리인으로 둔 채 K씨는 지난 4년간 1억2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사립학교법은 학교 재산을 타인에게 임대하거나 다른 용도로 쓸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도교육청은 설립자 일가와 교직원들이 이런 수법으로 빼돌린 돈이 2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전주의 A학교법인 산하 중학교 2층에 설치된 법인 설립자의 사적 공간인 응접실 ⓒ전북교육청
전주의 A학교법인 산하 중학교 2층에 설치된 법인 설립자의 사적 공간인 응접실 ⓒ전북교육청

도교육청은 아울러 친인척을 행정실 직원으로 허위 등록해 인건비를 가로 채고 2011년부터 최근까지 118차례 이사회 회의록을 허위로 작성한 의혹도 조사 중이다. 학교 측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교육청은 A학교법인 설립자의 갑질행위 등 민원을 접수하고 지난 2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학교법인과 직원 등을 대상으로 집중 감사를 벌였다. 도교육청은 해당 학교 설립자 등 연루된 관련자들을 형사고발하고, 해당 학교법인의 설립 취소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중간 감사 결과라서 아직 조심스럽지만 설립자 일가와 교직원 등의 위법 행위를 증명할 직원 진술과 증거 등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며 “정확한 사실관계는 감사가 다 끝난 후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족벌사학 비리 실제 드러나”…“가족경영 금지 관련법 개정해야“

A학교법인 비위 의혹은 족벌사학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으로 교육계는 보고 있다. 지역별 학교 수를 감안하면 전북 사학의 족벌체제는 심각하다. 지난해 9월 현재 전북지역 사립 중·고교는 모두 34곳이다. 이들 학교에는 모두 41명의 이사장 친인척이 교장·교감·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이는 경북과 경기·부산에 이어 전국 시·도 중 네 번째로 많은 수치다. 

하지만 설립자 일가가 학교를 운영하는 데는 법적 제약이 없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최초 임원진에 대한 임명은 설립자가 스스로 작성해 교육부에 제출한 정관에 따르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법인 사무국과 교직원의 친인척 근무제한 조항도 없고 이사회 의결만 있으면 학교의 장으로 설립자의 배우자와 친족을 임명할 수 있는 길 역시 열려 있다.

친인척이 학교를 운영하는 것 자체를 제한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비리를 저질러 학교에 손해를 끼쳐도 퇴출시킬 길이 막혀있다는 점이다. 지역교육계 한 인사는 “사학의 족벌경영은 결국 비리와 무관치 않다”며 “사학법인도 국가예산을 지원받아 교원의 인건비와 사학연금을 지급하는 만큼, 가족기업처럼 운영할 수 없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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