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야구 선수도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7 10:00
  • 호수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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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앞에 선 ‘LG 레전드’ 이상훈 MBC 해설위원
“내가 경험한 야구 인생이 방송에 묻어났으면”

LG 트윈스의 ‘야생마’ 이상훈(48)이 마이크 앞에 섰다. 거침없고 솔직한 성격의 그가 ‘해설위원’으로 시청자들을 만난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그는 올 시즌 필드가 아닌 중계석과 스튜디오에서 야구와 동고동락한다.

2004년 은퇴 후 음악과 개인 사업에 몰두했던 이상훈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2012년 고양 원더스에서 투수코치로 첫발을 내디뎠던 그는 이후 두산 베어스(2015년), LG 트윈스(2016~18년)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올 시즌부터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그에게 소감을 묻자 “질문이 너무 형식적이다”며 기어이 한 방 날리고 만다. 3월26일 MBC 일산드림센터에서 평범한 질문을 거부하는 그에게서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그의 야구 인생을 들었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해설위원 신분으로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를 방문했다. LG를 비롯해 삼성, 한화, SK, 삼성 등 여러 팀을 돌며 선수들을 인터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선수들을 코치로 만나는 것과 해설위원으로 인터뷰하는 건 분명 차이가 있었을 텐데 실제로는 어떠했나.

“유니폼 입고 있는 것과 사복 입는 것의 차이 정도였다고 말하면 설명이 될까? 일하는 분야가 다르니까 분위기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유니폼을 입었을 때는 내 것만 하면 됐지만 해설위원으로 캠프를 찾았을 때는 방송에 나올 장면을 떠올리고 선수들을 만나야 했다. 좀 더 생각할 부분이 많아졌던 것 같다.”

선수들과 인터뷰할 때 직접 질문을 준비했다고 들었다. 

“내가 선수였을 때 인터뷰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그때 기자들이 이런 질문을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내용을 살려 질문해 나갔다. 미리 준비하기보다는 인터뷰하면서 생각나는 걸 우선으로 물어봤던 것 같다.”

선수들이 어려워하지 않았나. 대선배이자 레전드 출신의 야구인을 상대로 답변해 나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다행히 날 피한 선수들이 없었다. 지금 고참 선수들이 내가 선수 생활을 할 때 신인들로 활약했던 터라 오랜만의 만남을 반가워했고 조금은 신기해하더라. 나 또한 그리운 얼굴들을 직접 만난 시간들에 좋은 영향을 받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상훈이라 그런지 당신의 해설을 궁금해하는 팬들이 많다.

“해설도 여러 형태로 나뉘지 않나. 가급적이면 선수들도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생방송 중에는 말로 표현된 내용들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걸 의식하다 보니 자꾸 부자연스러워지더라. 방송 용어를 사용하고 방송처럼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스튜디오가 아닌 현장에서 전하는 야구 중계는 또 다른 느낌이 들 것 같다.”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이상훈 해설위원을 만난 LG 트윈스 임찬규는 MBC스포츠플러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임찬규는 이상훈 해설위원이 LG에서 피칭아카데미를 운영했을 때 직접 지도를 받은 제자다. “코치님, 아니 위원님이라고 해야 하는데…. 하여튼 코치님 뵙자마자 제 폼이 어떤지 봐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코치님이든 위원님이든 이제 다른 길을 가시지만 어느 곳에 계셔도 항상 우리들 마음속에 존재하는 분입니다. 시청자분들이 위원님 말씀을 듣고 따뜻했으면 좋겠어요. 위원님 팬들은 방송 보면서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셨을 거예요. 그럴 때마다 그분들의 귀와 눈이 될 수 있는 말씀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잠시 지난 일들로 돌아가 보자. 2004년 6월, SK에서 공식 은퇴를 발표한 후 한동안 야인으로 생활했다. 록밴드 활동도 하고 미용실을 운영한다는 소식도 들렸다. 그러다 지금은 해체된 고양 원더스 투수코치로 다시 야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프로팀이 아닌 독립구단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는 걸 보고 ‘이상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지게 보이려고 독립구단과 인연을 맺은 건 아니다. 당시 김성근 감독님이 창단 때도 연락을 주셨는데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있어 합류하지 못하고 이듬해 다시 부름을 받고 들어간 것이다. 지도자로 첫발을 내디딘 곳이 프로팀이 아니라고 해서 서운하거나 아쉽지 않았다. 감독님이 날 가장 먼저 불러주셨고, 나로선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고양 원더스가 해체되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계약관계를 유지했다면 난 여전히 그곳에서 코치 생활을 했을 것이다.”

강성 이미지의 김성근 감독과 카리스마를 내뿜는 이상훈 코치의 조합에 의구심을 품은 일부 야구인들도 있었다.

“선수 시절 김성근 감독님 밑에서 야구를 배웠다. 던지라면 던지고, 쉬라면 쉬고, 감독님 말씀에 잘 따랐다. 만약 내가 책임감 없이 반항아의 이미지만 있었다면 감독님이 날 코치로 불렀을까? 그래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날 부르셨을 것이다.”

고양 원더스가 해체된 후 두산 베어스 투수코치를 맡았다. LG 색깔이 강한 선수가 LG가 아닌 두산에서 선수들을 지도한다는 사실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원더스가 해체됐고, 이후 내게 연락 온 곳이 두산이었기 때문이다. LG에서 코치를 하고 싶다고 그 기회가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나도 생활인이다. 새로운 직장에서 같이 일하자고 연락이 왔는데 그 직장이 두산이라고 거절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먼저 연락 온 팀에서 내 역할을 해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지도자로 인연을 맺는 프로팀이 다른 곳도 아닌 두산이었다는 게 흥미롭기는 했다.” 

2015년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잠실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당시 어떤 기분이 들던가. 

“이현승이 마무리로 올라가 경기를 매듭지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잠실야구장에서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 동안에는 2군 코칭스태프도 모두 잠실야구장을 찾아가 응원을 펼쳤고 경기가 종료되면 더그아웃 뒤편에서 기다렸다가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기도 했다. 정말 묘한 감정이 교차했던 것 같다.”

이듬해에는 두산이 아닌 LG로 자리를 옮겼다. 선수가 아닌 피칭아카데미 원장이라는 생소한 보직을 제안받고 LG로 향했는데 그 과정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나.

“사실 1년 만에 두산을 떠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두산도 당연히 재계약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내게 프로팀 코치 자리를 처음 맡겨준 팀이고, 만족도도 컸는데 그곳을 나와 ‘옆집’으로 이사 가야 하는 상황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LG였기 때문에 갈 수밖에 없었다. 두산 김태형 감독님을 비롯해 김태룡 단장님이 내 처지를 잘 이해해 주셨다. LG에서 선수 생활을 했었고, LG의 녹을 많이 먹었던 사람이고, 여전히 대외적으로는 LG 색깔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마치 자석처럼 이끌려갔던 것 같다.”

LG 트윈스는 이상훈을 지도자로 영입하기 위해 피칭아카데미를 신설했다. LG가 이상훈한테 ‘러브콜’을 보낼 당시에는 이미 1·2군, 육성군까지 코치들 자리가 정해진 터라 이상훈을 위해 새로운 보직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 자리가 피칭아카데미 원장이었다. 매뉴얼 하나 없이 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시스템을 구축해 가며 아카데미를 운영했던 이상훈. 그는 ‘코치’가 아닌 ‘원장’이라는 타이틀이 다소 어색했다고 말한다. 

2003년 5월5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두산전 9회말에 구원투수로 나선 LG 이상훈이 힘껏 공을 던지고 있다. ⓒ 연합뉴스
2003년 5월5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두산전 9회말에 구원투수로 나선 LG 이상훈이 힘껏 공을 던지고 있다. ⓒ 연합뉴스

피칭아카데미에서 배출한 선수들이 많다. 주로 나이 어린 선수들을 대상으로 훈련을 진행했던 걸로 알고 있다. 

“피칭아카데미는 주로 앞선 순번에 지명받은 선수들, 군 제대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훈련을 진행했다. 신인 드래프트 1차 1번 지명자들은 곧장 1군에서 활약하기 어렵다. 그들이 2군에서 뛸 정도의 실력을 쌓으려면 부상 없는 몸으로 건강한 공을 던질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했다. 김대현·임찬규·배재준 등이 피칭아카데미를 거쳤고, 1·2군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는데 선수들이 마운드에서 좋은 공을 던질 때마다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게 되더라.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3~4년, 더 나아가 4~5년 후 1군 마운드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로 키우고 싶었던 게 당시 피칭아카데미의 철학이었다. 내 신념이기도 했고.” 

그러나 피칭아카데미가 3시즌 동안 진행되다 2018 시즌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이후 LG에서 투수코치 자리를 제안했지만 팀을 나오게 됐고.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건가.

“내가 고양 원더스와 두산, 그리고 피칭아카데미에서 했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선수들을 가르칠 자신이 없었다. 그런 열정 없이 월급 받기 위해 남는다면 선수들한테 못할 짓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LG를 사랑하고 애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고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LG의 레전드가 공식 은퇴식을 갖지 못했다. 아쉬움은 없나.

“전혀 없다. 2016년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시구한 적이 있었다. 그 시구가 은퇴식을 대신했다고 해석했다. 그렇게 팬들을 만났으면 된 거다.”

이제는 방송을 통해 팬들을 만난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불리는 당신의 야구 인생에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 

“정말 특별할 경험이다. 야구와 관련됐지만 다른 형태로 야구를 접하는 거니까. 가급적이면 내가 경험한 야구 인생이 방송에서 묻어나길 바라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들을 소개할 만한 여유가 없다. 선수들이 하는 경기, 그때의 심리 상태, 전술과 작전 등을 적절한 타이밍에 풀어내는 게 중요하더라. 잠깐의 경험에 의하면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다. 다섯 구장에서 진행되는 야구 경기를 빠짐없이 모니터링하고 포인트를 잡아내면서 방송을 준비하는 게 매우 힘들다. 지금은 나도, 방송도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인 것 같다. 1년 정도 지나야 방송이 편해질 수 있을 것 같다.”

해설위원으로서 올 시즌 프로야구 전망을 묻는다면.

“그런 질문은 재미없다(웃음).”

오늘 계속 펀치를 맞고 있다(웃음). 그래도 바람이 있을 것이다.

“야구가 좀 더 평준화됐으면 좋겠다.”

평준화될 것으로 보이나.

“작년보다는 좀 더 평준화되는 방향으로 흐를 것 같다.”

길들여지지도, 길들일 수도 없는 ‘야생마’가 곧 이상훈이기에 해설위원으로 나서는 그의 행보는 기대를 부풀리게 한다. 까다로운 인터뷰지만 만날 때마다 깊은 여운을 안겨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만나보고 싶다. 사람 이상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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