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 탈원전에 따른 부작용 감당키 어렵다”
  •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9 10:00
  • 호수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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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 곧은소리] 늪으로 빠져드는 미세먼지 대책…경유세 인상, 자영업자·서민층에 엄청난 고통

미세먼지 30% 감축 공약을 까맣게 잊고 있던 정부가 뒤늦게 내놓은 대책은 현실성이 전혀 없는 코미디 수준이다. 정부·여당에 협조하고 있는 환경정책학 전문가도 엉뚱한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야당과 언론의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을 ‘과도한 정치화’라고 몰아붙인다. 환경을 위해서라면 경유세와 전기요금 인상은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과도한 경유세·전기요금에 신음하는 서민들의 어려움과 산업 생산성 저하에 대한 관심은 찾아볼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19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19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설비용량과 가동률을 구분해야

탈원전이 미세먼지를 악화시킨다는 야당과 언론의 주장에 대한 정부·여당의 반론은 황당하다. 탈원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고, 석탄화력은 모두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건설·계획한 것이라고 한다. 발전소의 설비용량과 가동률을 구분하지 못한 어처구니없는 동문서답이다. 더욱이 원전·석탄·LNG의 설비용량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굳이 전문가의 입을 빌려 확인해야 할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 야당이 지적하는 탈원전의 문제는 설비용량이 아니라 가동률이다. 2018년의 원전 가동률은 37년 만에 처음으로 65.7%로 추락해 버렸다. 2017년의 평균 가동률도 71.3% 수준이었다. 정부의 맹목적인 탈원전 정책 탓에 사소한 핑계만 있으면 무작정 원전을 멈춰버려서 생긴 결과였다. 작년 초에는 멀쩡한 원전의 절반을 세워두기도 했다. 과거 정부가 원전의 안전운전을 무시했다는 억지도 설득력이 없다. 원전의 안전운전 기록은 대통령이 직접 프라하 발언으로 확인해 준 것이다.

화력발전에서 더 많은 미세먼지가 배출되었다는 주장도 역시 설비용량이 아니라 가동률에 대한 것이다. 정부가 탈원전을 고집하는 동안에도 전력 소비는 끊임없이 늘어났다. 실제로 2018년의 발전 총량은 51만4806GWh로 탈원전을 시작하기 전인 2016년보다 6.1%나 늘어났다. 원전의 가동률이 떨어졌다면 석탄·LNG를 가동해 충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같은 기간에 석탄화력이 생산한 전력은 14.0% 늘어났고, LNG화력은 무려 26.8% 늘어났다. 탈원전으로 미세먼지 배출이 없는 원전의 가동은 줄어든 대신 미세먼지를 쏟아낸 화력발전의 가동이 늘어났다는 야당과 언론의 주장은 함부로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팩트라는 뜻이다.

탈원전을 아직 시작조차 못 했다는 주장도 현실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의도적인 궤변이다.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호기 덕분에 올해 원전의 설비용량이 사상 최대인 25.8GW까지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올해 원전 가동률이 80% 이상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도 다행스러운 것이다. 실제 원전의 설비용량이 줄어들게 되는 2030년이 되어야 본격적인 탈원전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다르다. 2017년 6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국가’ 선언으로 출발한 탈원전은 곧바로 효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충격은 이미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무작정 신고리 5·6호기의 공사를 중단시켜 3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발생시켰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나마 공사를 재개하게 된 것은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했던 젊은 청년들의 현명한 선택 덕분이었다. 

부지 매입까지 끝낸 신규 원전 6기의 건설도 백지화했고, 7000억원을 들여 말끔하게 새 단장을 해 놓았던 월성 1호기도 조기 폐로를 했다. 멀쩡하게 완공된 신고리 4호기를 뚜렷한 이유도 없이 무려 18개월 동안이나 세워두었던 것도 탈원전 때문이었다. 쓸모없어진 신한울 3·4호기의 원자로 장비는 야적장에서 시뻘겋게 녹슨 고철로 변해 가고 있다. 가동 중인 원전도 그냥 두지 않았다. 지난 2년 동안 원전 가동률이 사상 최저로 떨어졌던 것도 탈원전 정책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진실이다.

맹목적인 탈원전의 부작용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멀쩡하던 에너지 공기업들이 한순간에 적자를 기록하는 불량기업으로 전락해 버렸다. 2016년 2조5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던 한수원이 작년에는 1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한전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는 전기요금 인상으로 메워줄 수밖에 없다.

원전 산업도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원전 공기업과 두산중공업을 떠난 원전 전문가가 무려 340여 명에 이른다. 창원 지역의 원전 부품 산업은 이미 고사 상태에 들어섰다. 이런 상황에서는 원전의 해외 수출은 고사하고, UAE에 건설하고 있는 4기의 운영권도 보장된 것이 아니다. 사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전운전에 필요한 부품 조달도 보장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정부가 기대하는 60년 후 탈원전의 꿈은 어쩌면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훨씬 빨리 실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원전 안전성 강화하는 기술 계속 개발될 것 

탈원전 전문가들이 내놓는 미세먼지 해결책도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섣부른 것이다. 경유세 인상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어차피 한시적인 유류세 인하 조치가 5월초에 끝난다. 경유 값은 리터당 100원 가까이 올라가게 된다는 뜻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의 국제적인 저유가 상황도 종료되고 있다. 기름 값 자체가 올라가고 있다는 뜻이다. 

과연 정부가 유류세 할인 혜택 종료, 국제 유가 상승, 경유세 인상의 ‘3중 폭탄’을 맞게 될 소비자의 거센 반발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확실치 않다. 경유세를 2배로 올리더라도 경유 소비는 고작 2.58% 줄어들 뿐이라는 기재부의 분석 결과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경유세 인상의 부담이 그렇지 않아도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자영업자와 서민층에만 집중된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경유차의 퇴출도 불가능하다. 대형 버스와 트럭에는 경유 엔진 이외의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환경과 안전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경제를 포기하고 환경과 안전을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제가 죽으면 환경도 지킬 수 없게 되고, 안전은 더 심각하게 위협받게 된다. 원전에 대한 일방적인 거부감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원전 기술이 영원히 현재 수준으로 정체되는 것은 아니다. 원전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사용 후 핵연료를 처리하는 더욱 안전한 기술은 앞으로도 계속 개발될 것이다. 심지어 우라늄 대신 토륨을 사용하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차세대 원전의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에너지정책학도 기술 발전과 함께 진화해야 한다. 세상을 넓게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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