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리더십이 박수 받는 이유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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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치’가 성공하려면 ‘이낙연처럼’

이낙연 국무총리가 연일 화제다. ‘국가 재난 사태’가 선포될 만큼 다급했던 강원도 산불을 단시간에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 총리가 보여준 신속한 대응과 경청의 리더십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 총리가 ‘해야 할 일’을 적어놓은 ‘깨알 메모’가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그간 놓치고 있던 부분을 이 총리가 보여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4월5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 방문해 피해 주민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4월5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 방문해 피해 주민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헬기 대신 차량으로, 형식적 의전 다 물려

이 총리는 신속했다. 기민하게 움직였다. 4월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상황실에서 주재한 강원도 산불 관계장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께 국가재난사태 선포를 건의 드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깨알 지시’를 내렸다. 그는 “2005년 양양·고성 화재 이후 최대 화재가 발생했다”며 “(각 부처는) 매뉴얼대로 대처를 잘해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고는 현장으로 움직였다. 자신이 직접 강원도 산불 현장에 가는 이유로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현장에 가셨지만 내일 (6일) 0시를 기해 장관이 바뀌기 때문에 이 회의가 끝나자마자 제가 현장에 가겠다”고 설명했다. 개각으로 김부겸 전 장관이 진영 신임 장관으로 임무를 교대하는 만큼 혹시 모를 업무공백이 발생하지 않게 총리가 직접 현장으로 날라간 것이다.

이 총리는 산불에 총동원된 헬기 대신 차량으로 고성·강릉 일대 산불 피해현장을 찾았다. 총리로서 응당 누릴 수 있는 형식적인 의전은 물렸다. 산불 진압에 투입된 소방관 등에 혹시 해가 되지 않을까 각별히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현장에서 피해 상황을 둘러보고는 이재민을 찾아 위로했다. 형식적 위로가 아니었다. 정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약속을 건네는 동시에 손을 잡고 진심어린 위로와 용기를 함께 건넸다.

이 총리는 현장을 둘러보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 상황을 공유하는 ‘대국민 보고’도 잊지 않았다. 시시각각 상황이 급변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 등이 국민들의 불안감을 높여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를 원천차단한 셈이다.

그렇게 이 총리는 정부의 행보를 구체적으로 알리고 현장 상황을 공유하면서 국민적 불안감을 최소화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총리는 4월7일에도 SNS를 통해 “성금 47억3000만원을 접수했다. 이재민들께는 옷가지도 필요하다”라고 상황을 알렸다. 구호에 동참하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연락처를 남기기도 했다.

이 과정이 정치권의 모습과 국민들에게 대비됐다. 산불 발생 당일 국가위기관리 컨트롤타워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국회 운영위원회에 붙잡아둔 자유한국당과 이후 여야가 벌인 ‘네 탓’ 공방, 속초 시장의 늦은 복귀 등은 국민들의 속에 불을 질렀다.

이런 와중에 이 총리가 관계장관 회의 당시 메모했던 수첩이 공개돼 다시 화제가 됐다. 공개된 이 총리의 메모(총 8쪽 분량)에는 관계장관 회의 모두발언 내용과 산불과 관련해서 해야 할 일, 이재민 호소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정치권에서 이 총리의 메모 습관은 사실 유명하다. 언론인 출신의 이 총리는 “저는 감히 말한다. ‘메모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어록을 남길 만큼 메모광이다. 30년 가까이를 오른쪽 뒷주머니에 수첩을 넣어두고 다녀 엉덩이 균형이 무너져 허리가 아플 정도다.

그만큼 이 총리는 말과 글에 신경을 쓴다. 품격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 총리는 말과 글에 한해서는 누구보다 엄격하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대선후보 대변인이었던 이 총리는 당시 김현미 부대변인(현 국토교통부 장관) 논평을 퇴짜 놓을 만큼 글에 대해 엄격하다. 지금 국무총리실 직원들도 이 총리의 엄격한 데스킹(퇴고)에 쩔쩔 멜 정도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4월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제2차 강원도 산불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직접 작성한 당부사항을 적은 깨알같은 메모장. 정운현 총리 비서실장이 촬영해 자신의 SNS에 공개했다.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4월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제2차 강원도 산불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직접 작성한 당부사항을 적은 깨알같은 메모장. 정운현 총리 비서실장이 촬영해 자신의 SNS에 공개했다. ⓒ연합뉴스

‘이낙연처럼’ 이야기 나오는 이유

징치권에서는 이 총리가 박수 받는 배경에 문재인 정부가 가야 할 길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저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어려운 경제 상황뿐만 아니라 소통과 경청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도 일조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날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가 이 총리가 박수 받는 이유를 잘 새겨야 한다”라면서 “특히 문 대통령이 새 정부 첫 국무총리로 이 총리를 지명하면서 받았던 박수의 이유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초심을 되돌아 봐야 한다. ‘이낙연처럼’의 리더십이 필요할 때”라고 했다.

무슨 뜻일까. 시계추를 돌려보자.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10일 당시 이낙연 전남지사를 새 정부 첫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탕평·통합의 향배를 가늠하는 첫 번째 시험대였다. 호남 출신에 비(非)문재인계 인사인 이 지명자는 계파색이 적고 여야 모두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어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문 대통령은 당시 직접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선을 발표하고 배경을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 지사 지명은 호남 인재 발탁을 통한 균형인사의 시작이자, 협치행정·탕평인사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백악관에선 종종 있었던 일이지만 우리에겐 낯선 장면이었다. 소통과 경청의 리더십을 바라는 시민의 요구를 실천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첫 비서실장으로 비문계인 임종석 전 의원을 기용한 것도 친정체제 구축보다 소통과 통합에 주안점을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박수가 쏟아졌다. 

최근 문 대통령은 집권 후 처음으로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설명은 없었다. 당초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발표가 됐을 때도 문 대통령은 나서지 않았다. ‘이낙연·임종석 발표’ 때와 같은 감동도 없었다. 그만큼 탕평인사로 여겨지지 않았다. 어느 때보다 인사라인에 대한 부실 인사 검증 책임론도 거세지고 있지만 청와대는 부실 인사 검증 문책 여론을 피하는 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이낙연처럼’이라는 말이 그저 지나쳐지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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