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박물관 “약탈 문화재는 원소유주에게 돌아가야”
  • 강성운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12 13:56
  • 호수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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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실천해 박수받는 독일 로텐바움박물관…약탈 문화재 ‘문인석’ 이례적 자진 반환

3월17일, 독일 함부르크의 로텐바움박물관에서 ‘우리 코레아’ 전시회가 막을 내렸다. 3개월간 열린 이 전시에는 고려청자부터 조선 후기의 민화, 노란색 플라스틱 바구니가 달린 배달용 오토바이, 구본창 화백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문화와 일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물품이 전시됐다.

그런데 이 전시회에서 유독 눈길을 끈 전시품이 있었다. 바로 16세기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한 쌍의 ‘문인석’이다. 약 130cm 높이에 40cm가량의 너비, 그리고 30cm쯤의 두께를 지닌 이 문인석은 관복을 입은 남성이 양손으로 홀(笏)을 쥐고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로텐바움박물관 소장품인 이 전시물에는 전시가 끝난 뒤인 3월19일, 한국으로 반환될 예정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설명을 읽고 다시 보면 두 문인석이 가슴에 품은 것이 마치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배표처럼 보였다.

3월19일 독일 함부르크 로텐바움박물관에서 조선시대 문인석 한 쌍에 대한 반환식이 열렸다 ⓒ 로텐바움 박물관 sns
3월19일 독일 함부르크 로텐바움박물관에서 조선시대 문인석 한 쌍에 대한 반환식이 열렸다 ⓒ 로텐바움 박물관 sns

유럽에서 싹트는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

유럽의 박물관은 ‘남의 나라에서 훔쳐온 소장품이 많을수록 입장료가 싸다’는 씁쓸한 농담이 있다. 그만큼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시절 전쟁·약탈·학술연구·밀수 등을 통해 들여온 비(非)서구의 문화유산이 여러 개의 박물관을 세울 정도로 많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약탈 문화재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미 1960년대에 이뤄졌다. 그 결과 1970년 유네스코 총회는 불법으로 반출된 문화재는 환수돼야 한다는 내용의 협약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 협약은 강제성이 없으며, 회원으로 가입하더라도 가입 시기 이전에 이뤄진 문화재 반출 행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사실상 권고 사항인 셈이다.

19세기 유럽 주요 도시에는 이른바 민속학 박물관들이 속속 세워졌다. 이 박물관들은 서구가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비서구의 동물, 곤충, 각종 생활용품은 물론 사람의 사체까지 수집해 만들어졌다. 서구인들은 비서구의 문화를 자신들의 시각에서 재정의하고 이해하기 위해 분류 체계를 세웠다. 또한 비서구 문명을 고유의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이라기보다 서구와의 차이를 통해 정의되는 타자의 문명으로 규정지었다. 이 과정에서 서구는 비서구의 문화를 원시적인 것, 열등한 것으로 낙인찍었으며, 이 수집품들을 서구의 우수함을 증명하는 자료로 취급했다.

로텐바움박물관의 전신 역시 이러한 시대정신 속에서 세워진 민속학 박물관이었다. 1841년 함부르크 시립도서관의 민속학 컬렉션으로 시작한 이 박물관은 최근인 2016년까지도 민속학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유럽에서는 민속학 박물관들에 대한 비판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과거에 대한 반성이 이뤄지는 가운데, 민속학 박물관이 서구인들에게 비서구권 문명이 이국적이며 열등한 타자라는 편견을 심어줬고, 소장품들 또한 부적절한 경로로 입수됐다는 문제의식이 생겨났다. 그 결과 함부르크 민속학 박물관도 새로운 콘셉트를 개발하고 내부 정비를 마쳐 2017년 로텐바움박물관으로 재개장했다.

세계의 모든 문화를 수집한다는 서구의 제국적 문화정책에 걸맞게 이 박물관에는 2700여 점 규모의 한국 컬렉션이 따로 있다. 2014년부터 로텐바움박물관은 한국의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협력해 한국 컬렉션을 면밀히 검토했는데, 이 과정에서 주잔네 크뇌델 큐레이터가 문인석의 입수 과정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1987년 한 독일인 사업가로부터 구입한 이 소장품이 이삿짐용 컨테이너에 들어가 밀수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 박물관은 한국의 문화재연구소 측에 이례적으로 자진해 문인석이 불법적인 경로로 입수됐으며, “반환할 테니 반환요청서를 보내달라”고 나섰다. 권고 사항에 불과하던 유네스코 협약에 드문 선례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유럽 사회에서 약탈 문화재 반환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해 11월, 프랑스에서 두 명의 미술사학자가 한 편의 보고서를 제출하면서다. 프랑스 학자 베네딕트 사보이와 세네갈 학자인 펠린 사르는 프랑스 박물관 소장품의 출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끝에 이들 중 대부분이 식민통치 시기 강탈된 물건이며, 따라서 출신 국가에 돌려줘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이 보고서는 군사작전이나 탐구여행 중 수집된 물품은 전부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제출됐고, 프랑스뿐 아니라 식민지를 경영했던 벨기에와 독일 등 유럽 사회 곳곳에서 식민지 역사 청산 문제와 맞물려 논의가 시작됐다. 


“단지 돌려주는 데에만 그쳐선 안 된다”

역사학자인 레베카 하버마스와 울리케 린드너는 독일의 주간지 ‘차이트’ 기고문을 통해 “물건을 단지 돌려주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유럽 박물관 소장품 대다수가 “식민지의 권력관계 속에서 획득됐으며, 오늘날의 법에 비춰볼 때 출신지로 돌려주는 것이 맞다”고 전제한 뒤, 반환품을 돌려받기를 원하는지, 반환 후 이 물품들이 어떻게 쓰일지는 원소유자 측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즉, 물품을 돌려주는 것으로 식민지 역사를 청산했다고 믿는 대신에 그 과정에서 이 물품들이 원래 문화에서 어떤 의미와 기능을 지니는지 밝혀내고, 그것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 의견도 있었다. 1962년까지 콩고를 식민통치한 벨기에의 테뷰런아프리카박물관은 약탈 문화재 반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박물관 관장인 기도 그리젤스는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SZ)’지와의 인터뷰에서 “아프리카 국가에는 소장품을 제대로 보관할 만한 인프라 구조가 없다”며 “반환이 꼭 정답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장품 하나하나의 정확한 입수 경로를 밝혀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 박물관의 콩고 소장품 규모는 12만 점에 이른다.

로텐바움박물관의 문인석은 엄밀히 말해 식민주의 시기에 반출된 유물은 아니다. 그러나 반환 대상을 역사의 한 시기 또는 특정 지역으로 한정 짓는 대신에 “약탈 문화재는 원소유주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일견 지극한 상식을 실제로 실천했다는 점에서 서구와 비서구 간에 패어 있는 역사적 골을 조금이나마 메운 의미 있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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