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오염국①] 마약에도 불어닥친 ‘유통혁명’
  • 유지만·박성의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9.04.15 08:00
  • 호수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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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으로 주문하고 암호화폐로 거래하고…남기는 흔적이 없다

강남 클럽 ‘버닝썬’에서의 마약 유통 의혹,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인 황하나씨와 방송인 로버트 할리씨(한국명 하일)의 마약 사건 등으로 마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 이 사건들로 인해 그동안 한국이 ‘마약청정국’이란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온라인과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마약 판매자를 어렵지 않게 접촉할 수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버닝썬과 아레나 등 강남 유명 클럽을 통해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신종 마약이 유통되는 현상도 보인다. 그동안 음성적으로 진행돼 온 성매매·마약 등 악질적 범죄에 온라인을 통한 ‘유통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상 ‘마약 보급 시대’가 열린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4차 산업혁명’의 빛은 결코 양지만 비추지 않았다. 

그동안 마약 사건은 연예인이나 일부 재벌 2·3세 등 특권층에 국한된 사건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실제 연예인이나 재벌가 자제 마약 사건은 과거에도 대중적인 관심을 받은 일이 많았다. 특히 연예인 사건 중 마약 관련 사건은 단골메뉴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대중들과는 거리가 조금은 먼 사건으로 여겨졌다. ‘2017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마약류사범(대마·마약·향정신성의약품)은 1999년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선 이후 2002년까지 4년 연속 1만 명을 넘었다. 2002년부터 강력한 단속이 실시되면서 2006년까지 7000명 수준으로 떨어진 이후 2010년부터 2014년까지 1만 명을 넘어서진 않았다.

“잠잠해질 때 이 아이디로 연락드릴게요” 

하지만 2014년 이후부터 마약류사범이 급증했다. 모바일이나 인터넷을 통한 SNS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점과 맞물린다. 2016년 1만4214명, 2017년 1만4123명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 2014년 대비 2016년이 40% 이상 늘었다. 마약사범이 급증하면서 ‘마약청정국’ 위상도 흔들렸다. 통상 국민 10만 명당 마약류사범이 20명 미만이면 ‘마약청정국’으로 인정하는데,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24.3명 수준으로 마약청정국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마약사범 급증의 배경에는 모바일 시대가 있다. 10여 년 이상 강력범죄를 다뤄온 한 경찰 수사관은 “최근 마약사범들은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해 구매자들과 접촉한다”고 말했다. 특히 많이 쓰이는 메신저는 ‘텔레그램’이다. 경찰 관계자는 “텔레그램의 경우에는 메시지 삭제 기능이 있는 비밀 채팅방을 개설할 수 있다. 이 대화방에서 대화한 후 대화 내역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구매자와 연락한다”고 설명했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결과, 실제로 온라인 검색을 통해 대마 판매자와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어렵지 않게 접촉할 수 있었다. 포털사이트에서 ‘떨(대마의 은어) 판매’를 검색하자 여러 판매글을 볼 수 있었다. 해당 게시글에는 텔레그램과 또 다른 메신저 아이디가 공개돼 있었다. 기자가 직접 텔레그램 아이디를 통해 대화방에 초대한 뒤 구매 방법이나 가격 등에 대해 물었다. 5명가량의 판매자를 접촉한 결과 그중 1명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최근의 마약 사건을 의식했는지 “판매는 한동안 힘들다”면서도 대마 판매 가격을 자세히 알려줬으며 “이달 말쯤 해당 아이디로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답했다. 다음은 대마 판매자와 나눈 텔레그램 대화 내용이다. 

 

기자 떨 문의 맞나요?
판매자 떨 잠정중단입니다. 떨 씨만 있네요. 
기자 언제쯤 가능할까요? 시기가 이래서 그런 건지…웃돈 더 드리면 혹시 못 구하나요?
판매자 네,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4월)말쯤 보고 있습니다. 
기자 예약이나 이런 건 안 되나요?
판매자 잠잠해지고 풀릴 때 이 아이디로 연락드릴게요. 
기자 그리고… 최상품 기준으로 가격대 문의 가능할까요?
판매자 3쥐(3그램) 이하 그램당 16(만원) 그 위로 14(만원)요.

판매자와 대화를 나눈 텔레그램 대화방은 메시지 삭제 기능이 있는 비밀 대화방이었다. 비밀 대화방에서는 일정 시간을 정해 대화가 자동으로 삭제되도록 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텔레그램을 이용해 대화를 삭제하면 수사기관에 적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포렌식 절차를 거치면 이 역시도 파악 가능하다”며 “최근 비밀 채팅방을 활용해 마약 판매자와 구매자가 연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030세대 마약사범 급증 추세

모바일 메신저를 통하면 마약 유통 과정을 조금 더 간결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밀수조직과 도매상, 매수자로 이어지는 기존 마약 유통구조에서 도매상을 건너뛸 수 있다는 점이 텔레그램 등 SNS를 이용하는 주된 이유다. 과거에는 밀수조직들이 추적을 피하고자 믿을 만한 도매상을 거쳐 마약을 팔았지만, SNS를 이용하면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도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신 메신저 활용이 많아지면서 모바일 사용능력이 높은 20~30대 마약사범이 증가하는 현상도 보인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마약류 사범 연령별 현황’에 따르면, 20~29세 마약사범은 2014년 1174명에서 2016년 1842명으로 급증했다. 30~39세 마약사범도 같은 기간 2640명에서 3526명으로 크게 늘었다. 40~49세(3542명→4496명), 50~59세(1768명→2659명) 역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마약 구매 비용을 암호화폐로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2017년 12월 수원지검 강력부(이진호 부장검사)가 적발해 재판에 넘긴 국내외 마약밀수 4개 조직, 21명의 범죄수법을 보면, 이들은 수사기관의 단속을 우려해 암호화폐를 사용했다. 검찰 수사관이 위장거래 과정에서 판매책으로부터 “필로폰을 구매하려면 비트코인을 구매한 뒤 영수증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요구를 받았다. 수사관이 영수증 사진을 보내자 판매책은 영수증에 적힌 개인식별번호(PIN)로 비트코인을 현금화해 챙긴 뒤 필로폰을 받을 장소를 알려줬다. 검찰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는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있어서인지 이렇게 범죄에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얼마든지 추적이 가능하다”면서도 “다만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가 도입된 이후 이 같은 추세는 조금 꺾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새로운 마약 유통 방식이 도입되면서 수사기관이 적발하는 과정이 예전보다 더 어렵게 된 점도 있다. 한 경찰 마약전담 수사관은 “기존의 거래는 대포통장을 통했는데, 암호화폐를 통해 거래대금을 지불하면서 추적기간이 더 길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모바일 메신저의 경우 역시 서로 모르는 사람인 경우도 많기 때문에 마약 거래 정황을 확실히 파악하는 데 애로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매수자는 물론, 조직원들끼리도 서로의 신원을 숨긴 채 오직 SNS로만 연락을 주고받는 등 일부가 적발돼도 다른 조직원들이 드러나지 않도록 철저히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일부는 잡아도 마약 유통망 전체를 잡아내기는 힘든 단점도 있다. 

이범진 마약퇴치연구소장은 교류 활성화가 곧 마약사범 증가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마약을 접한 경험이 없던 일반인들도 인터넷 SNS나 국제적인 교류 증가 추세에 따라 마약류를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이 마약사범 증가 원인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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