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구원한 《열혈사제》 《닥터 프리즈너》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21 10:00
  • 호수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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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출생의 비밀 등 기존 성공 코드 빼고 기득권 타파 ‘통쾌함’ 넣어 인기몰이

한때 거의 불이 꺼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tvN, OCN, JTBC 등의 공세에 직면한 지상파 드라마의 상황이 그랬다. 지상파 드라마가 가족 코드와 멜로 라인이라는 구시대 성공 코드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이, 케이블 채널과 일부 종편이 새로운 시도로 젊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tvN은 지상파 드라마가 시도하기 힘든 대규모 투자를 공격적으로 진행해 작품의 질을 높였다. 기존의 지상파 드라마 왕국을 떠받쳤던 작가와 PD, 스타들도 신규 채널로 빠져나갔다. 일급 시나리오들이 지상파를 제치고 tvN과 JTBC 앞에 줄을 섰다. 여기에 넷플릭스 자체 드라마 《킹덤》까지 성공하며 지상파를 압박했다. 출구가 없어 보였다.

지상파 드라마는 트렌드를 이끄는 젊은 시청자층, 문화적 화제성을 모두 놓치고 간간이 터지는 전통극의 시청률에 의지해 명맥만 잇는 처지가 됐다. 그런 지상파 드라마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KBS의 ‘간 파동’이었다.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 편》,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 일일드라마 《비켜라 운명아》에서 동시에 간 이식이 소재로 등장한 사건이다.

장기 이식은 주로 친족 간에 이뤄진다. 그러므로 장기 이식 소재를 통해 가족의 정을 극대화할 수 있다.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가족드라마가 되는 것이다. 또 장기 이식을 통해 죽어가던 사람이 기사회생한다. 작품의 극적 반전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들고 가족 코드를 강화하기 위해 장기 이식 소재가 남발되다 보니 심지어 세 작품에서 동시에 간 이식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상파 드라마가 얼마나 기존 성공 코드에 매몰돼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SBS 드라마 《열혈사제》의 한 장면 ⓒ SBS
SBS 드라마 《열혈사제》의 한 장면 ⓒ SBS

통쾌한 폭소탄을 터트린 지상파 드라마

그랬던 지상파 드라마에 반전이 일어났다. 시청률이 오르면서 젊은 층의 주목도 받기 시작했다. 고목나무에 꽃이 핀 것이다. 바로 SBS 《열혈사제》와 KBS 《닥터 프리즈너》가 지상파 드라마의 부활을 이끈 구원자들이다. 이들 드라마는 각각 19%와 14%에 달하는 시청률을 올리면서 인터넷에서 화제도 모았다. 이들을 중심으로 다른 작품들에도 조금씩 힘이 실리면서 지상파 드라마의 위상이 상승했다.

《열혈사제》는 SBS의 첫 금토드라마다. 주말극 이미지에서 벗어나 젊은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토요드라마를 없애고 젊은 시청자의 패턴에 부합하는 금토드라마를 신설했다. 그리고 간 이식 같은 가족 코드는 물론 출생의 비밀, 불륜, 시어머니 구박 등을 일절 배제한 작품으로 내놓은 것이 《열혈사제》다.

케이블 채널에서 장르극이 성공하면서 장르극 또는 그와 유사한 형태의 작품들이 많았다. 그런 작품들은 보통 어둡고 무겁다. 극장가에서도 무거운 장르 스릴러물이나, 역시 무거운 실화 역사물들이 많았다. 그런 무거움에 관객이 부담을 느낄 때쯤 《극한직업》이 나타났다. 전혀 대작 같지 않은 이 가볍고 유쾌한 소품을 한국 관객은 뜨겁게 환영했고, 1600만 명 관객이라는 믿기 어려운 대흥행이 터졌다.

이렇게 코믹을 원하는 시기에 TV에 등장한 것이 바로 《열혈사제》다. 주인공 김남길을 비롯해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작정하고 망가졌다. 시청자는 시청률과 찬사로 화답했다. 코믹은 코믹인데 단지 웃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여기엔 국민의 속을 풀어준 통쾌함과 대리만족이 있다. 국정원 대테러 요원 출신인 신부(김남길)가 폭력적인 방법으로 구담시의 거대 악을 일소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한때 조폭과 유착했으나 개심한 형사, 거악의 꼭두각시였으나 개심한 평검사, 태국 출신 무에타이 고수인 배달원, 빵을 먹으면 청력이 좋아지는 아르바이트생 등 소시민들이 ‘구벤져스’(구담시 어벤져스)를 결성해 힘을 보탠다.

구청장, 경찰서장, 국회의원, 검찰, 조폭 등이 유착한 거대 악은 구벤져스의 한 방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 바로 이것이 지지부진한 개혁에 답답해하던 시청자의 속을 뚫어줬다. 드라마 초반에 유착한 경찰의 모습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버닝썬 사태와 연결되면서 더욱 현실과의 접점이 커졌다. 작품은 5시간30분 단식을 풍자한 ‘간헐적 단식’, 버닝썬을 풍자한 ‘라이징 문’에 이어 인터넷에서 많이 회자되는 ‘토착왜구’라는 말까지 차용해 통쾌한 풍자 폭소탄을 터뜨렸다.

KBS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의 한 장면 ⓒ KBS
KBS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의 한 장면 ⓒ KBS

착하지 않은 해결사가 뜨는 시대

《닥터 프리즈너》는 속도감과 박진감이 있다. 대형 병원에서 축출된 의사 나이제(남궁민)가 교도소의 왕이며 한국 사회 최상층과 연결된 교도소 의료과장과 대결하는 것이 초반 내용이었다. 두 사람의 일진일퇴 전쟁이 매회 엎치락뒤치락 긴박하게 이어졌다. 네티즌이 인기 미드에 빗대 ‘교도소 왕좌의 게임’이라고 할 정도로 박진감 있는 전개였다.

통쾌함도 있다. 극 속에서 교도소 의료과장이 왕 행세를 하는 것은 한국 사회 최상층의 목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최상층은 툭하면 감옥에 가는데 교도소 의료과장이 대형 병원과 짜고 진단서를 조작해 형집행정지를 이끌어낸다는 설정이다. 의료과장이 누구를 꺼내줄 것인가가 재벌 후계구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최상층의 일탈과 그들에 대한 특혜가 만연한 현실을 야유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은 교도소에 나타나 기존 의료과장보다 더 악랄한 수법으로 형집행정지를 만들어내면서 순식간에 카르텔의 핵심부에 진입한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혀 획득한 힘으로 그 카르텔을 붕괴시킨다. 여기서 통쾌함이 나타난다.

《열혈사제》와 《닥터 프리즈너》의 주인공은 모두 반영웅이다. 착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열혈사제》 신부는 폭력적이고 《닥터 프리즈너》 의사는 악랄한 냉혈인이다. 바로 이 점이 더욱 시청자를 사로잡은 요인이다. 착하기만 해서는, 옳은 방법만 사용해서는 공고한 기득권 카르텔을 부술 수 없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현실에서 의혹 조사가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을 보며 수많은 절망을 경험했다. 드라마에서만이라도 무자비한 누군가가 나타나 한 방에 거악을 무너뜨려주길 바라는 심리. 바로 그런 시청자의 답답함이 이 작품들의 성공을 만들었다. 버닝썬 사태에서도 부유층과 권력의 유착이 밝혀지지 않아 대중이 답답해했다. 이럴수록 ‘한 방 싹쓸이’ 드라마의 인기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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