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페트병 재활용률’ 떨어뜨리는 주범 따로 있다
  • 경기 김포 = 구민주·박성의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4.23 09:00
  • 호수 15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처리 과정에서 절반이 그냥 버려져
페트병 재활용처리업체 현장 취재

두 개의 페트병이 있다. 하나는 라벨을 접착제로 붙인 페트병이다. 또 하나는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은 비접착식 라벨 페트병이다. 어느 페트병이 더 재활용 가치가 우수할까. 너무나도 상식적인 질문 같지만, 환경부의 정책은 이런 상식을 불허한다. 환경부가 인체나 환경에 좋지 않은 접착제가 발린 라벨을 더 우수한 등급으로 규정해 오히려 생산을 권고하고 있다는 것이다(42쪽 딸린 기사 참조). 이는 과연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왜 그럴까. 시사저널 취재진은 이런 의문을 갖고 실제 페트병을 재활용 처리하는 업체를 4월17일 직접 찾아가 봤다. 경기도 김포시에 위치한 한 페트병 재활용처리업체였다.

ⓒ 시사저널 최준필 

“비접착식 라벨 사용하면 굳이 물에 띄울 필요 없어”

“이게 다 몇 톤이에요?” “그나마 오늘은 별로 없는 편이에요.”

공장 앞 넓은 마당 한쪽에 압축된 페트병 묶음들이 수북이 산을 이루고 있다(사진 ➊). 한 묶음만 해도 명치까지 오는 높이에, 무게는 500kg에 달한다. 이러한 묶음이 마당에만 수백 개다. 날이 더워지는 5월부턴 최대 1.5배까지 그 양은 늘어난다.

높게 쌓인 페트병 산의 색은 멀리서 봐도 알록달록했다. 갈색 맥주병처럼 병 자체가 유색인 경우도 있지만, 주로 병에 붙은 라벨지 때문이다. 국내 페트병 쓰레기 중 병과 라벨이 제대로 분리돼 버려지는 비율은 10% 안팎에 불과하다. 따라서 페트병 재활용 처리의 관건은 바로 이 라벨들을 병으로부터 깔끔하게 분리하는 일이다. 그래야 재활용 공정을 모두 마친 페트병 조각들이 다시 원료로서 높은 가치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압축된 페트병 묶음들은 공장 외국인 노동자들이 끄는 지게차에 잔뜩 실려 여러 개씩 공장 내부로 쉴 새 없이 옮겨졌다. 지게차를 따라 내부로 들어가 봤다. 문 앞에서부터 바로 옆 사람과의 대화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기계 굉음이 터져 나왔다. 이물질 낀 페트병에서 흘러나오는 오물 냄새와 공장 기계들의 뜨거운 열기가 만들어내는 냄새가 한데 뒤섞여 코를 찔렀다. 

페트병 묶음들은 가장 먼저 날카로운 갈고리가 돌아가는 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안전사고 위험 때문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도록 공간은 밀폐돼 있다. 여기에서 여러 갈래로 몸이 찢긴 병과 라벨은 강한 바람이 휘몰아치는 풍력선별기 안으로 자동으로 옮겨진다(➋). 연둣빛의 둥글고 큰 선별기 안에서 병과 라벨은 바람을 통해 1차로 분리된다. 비행기 엔진처럼 바깥까지 뜨거운 바람을 뿜어내는 기계는 공장 안 곳곳에 3~4대가 더 설비돼 있다. 공정 중간중간 병과 라벨을 떨어뜨릴 2차·3차 풍력선별이 추가로 진행된다. 

바람을 잔뜩 쐰 페트병과 라벨은 풍력선별기와 이어진 두 개의 컨베이어 벨트에 각각 나뉘어 나온다. 사실 나뉘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여전히 대부분의 페트병엔 라벨이 그대로 딸려 있다. 접착식 라벨의 경우 접착제 성분이 그대로 붙어 있었고, 비접착식 라벨 또한 절취선이 미처 다 뜯기지 않아 병과 함께 딸려 나왔다. 

거의 모든 게 기계만으로 움직이는 공장에서 가장 직원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 다름 아닌 페트병 ‘색선별’ 컨베이어 벨트 앞(➌). 초록색 병(사이다 등), 불투명한 흰색 병(막걸리 등), 갈색 병(맥주 등) 등 사실상 재활용이 불가능한 유색 병들이 3개의 컨베이어 벨트에 각각 나뉘어 실려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컨베이어 벨트 위에 재활용이 가능한 투명한 무색 병들이 쌓인다. 컨베이어 벨트마다 두 명의 직원들이 목장갑을 끼고 서서 말없이 손만 움직인다. 이들은 벨트를 잘못 찾은 다른 색의 병이나 심하게 더러운 병을 골라 바닥으로 떨군다. 기계가 그냥 지나친 디테일을 챙기는 곳이다. 초보자는 5분만 벨트를 쳐다봐도 쉽게 멀미가 나지만 이들은 하루 8시간 수천 병을 고른다.

좀 더 깔끔하게 다른 색과 분류된 무색 페트병들은 재활용 가치를 갖기 위한 본격적인 절차를 거친다. 여전히 대부분 덕지덕지 붙어 있는 라벨을 좀 더 분리하기 위해, 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수조에 이들을 쏟아 붓는다. ‘비중 분리’라는 과정이다(➍). 물에 가라앉는 페트병과 물에 뜨는 라벨을 분리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 작업은 현재 환경부와 재활용업계 사이에서 가장 논란이 큰 부분이다. 

시중의 라벨은 끝에 접착제가 붙어 있는 ‘접착식 라벨’과 접착제 없이 절취선대로 뜯는 구조의 ‘비접착식 라벨’ 두 가지가 있다. 이 둘의 무게가 달라 비접착식 라벨은 물에 가라앉는 반면, 접착식 라벨은 물에 뜬다. 환경부는 “접착식 라벨이 물에 뜨기 때문에 병과 더욱 쉽게 분리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재활용처리업체들과 환경 관계자들은 “애초에 비접착식 라벨은 몇 차례 풍력선별만 거치면 깔끔히 분리된다. 굳이 물에 띄워 분리할 필요도 없다”며 “그렇게 되면 접착제로 인한 추가적인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비중 분리를 통해 물에 뜨는 일부 라벨을 걸러내고 나면 병은 더욱 잘게 분쇄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새끼 손톱만 한 크기로 변한 병 조각들은 바로 옆 건물 세척실로 이동한다. 세척실 내부는 물을 끓일 때 나오는 수증기가 가득하다. 여기선 조금 특별한 물이 90도 가까운 온도에서 팔팔 끓여진다. 병과 라벨의 접착 성분을 제거하기 위해 가성소다(NaOH)를 넣어 끓인 양잿물이다(➎). 병 조각들은 양잿물 속에서 10~15분가량 함께 끓여진다. 일각에선 양잿물 성분이 접착 성분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병 조각의 질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여기에서 나오는 가스나 폐수가 추가적인 오염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 시사저널 최준필 

접착 성분 제거 때 추가적인 오염 일으킬 수 있어

물에서 나온 병 조각들은 공정 초반에 봤던 풍력선별기로 다시 들어가 추가적인 라벨 분리와 건조를 동시에 거친다. 그리고 곧장 금속선별기로 빨려 들어가 병 조각 틈틈이 숨어 있을 금속물질을 제거한다. 마지막으로 색선별 점검까지 마치고 나면 병 조각들은 네 부류로 구분돼 각각의 자루에 담긴다. 라벨 등 이물질과 매우 깨끗하게 분리된 A급 조각과 여전히 틈틈이 이물질이 섞여 있는 B·C급 조각, 그리고 재활용될 수 없어 폐기물이 된 조각들로 나뉜다(➏➐).

A급 조각은 높은 가치의 원료로서 운동복 등 기능성 섬유 등에 재활용된다. 일부는 해외에 수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A급 조각은 공정을 마친 병 조각의 10%에 불과하다. 일본처럼 다시 도시락 케이스나 컵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특A급과도 차이가 크다. 조각들 중 절반을 차지하는 B·C급은 더욱 원료로서의 가치가 낮으며 사용 영역도 제한된다. 나머지는 재활용이 안 돼 폐기물로 그대로 버려진다. 문제는 이 버려진 페트 조각들은 자연에서 썩는 데 수백 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이처럼 낮은 재활용률과 원료 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우선 병 조각을 손상시키는 복잡다단한 재활용 공정 절차를 단순화해야 한다고 지적된다. 그러기 위해선 라벨 제거가 좀 더 쉽게 돼야 하는 게 필수다. 이 부분에 있어 접착식 라벨 측과 비접착식 라벨 측이 각자의 논리로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처리 공정을 지켜본 취재진의 입장에선 여전히 환경부의 논리에 선뜻 수긍이 어려워 보였다. 비접착식 라벨 사용을 통해 기존의 물에 띄우거나 양잿물로 끓이는 공정을 생략하는 게 재활용률을 높이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란 점이다. 이제 환경부가 좀 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할 때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