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홍일이는 장차 나라와 국민을 위해 대성할 인물”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4.2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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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옥중서신》 이 전하는 DJ의 애틋한 자식 사랑
김홍일 전 의원, DJ 아들이자 정치적 동지
4월21일 오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고 김홍일 의원의 빈소가 마련된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조문객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4월21일 오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고 김홍일 의원의 빈소가 마련된 신촌세브란스 병원 ⓒ시사저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의 영결식이 4월24일 오전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함세웅 신부가 집전한 영결미사에는 김 전 대통령의 2남 홍업씨와 3남 홍걸씨, 김 전 의원의 부인 윤혜라 여사 등 유가족을 비롯해 15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정치적 동지였던 추미애·설훈·백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영결식장을 지키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김 전 의원은 'DJ 아들'이라는 수식어로 평생 따라다녔다. 그랬기에 3선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암울했던 독재정권 시대에는 부친의 민주화운동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야했다. 김 전 의원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고초를 겪은데 이어 1980년에는 김대중 등 내란음모 사건으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고문후유증은 파킨슨병으로 이어졌다. 의정 활동 기간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모습도 종종 있었다. 2009년 김 전 대통령 서거 때 극도로 야윈 모습이 공개돼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살아생전 김 전 대통령은 장남을 애틋하게 여겼다는 후문이다. 김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4월2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 전 대통령이) 저하고 둘이 앉아 있을 때면 ‘내가 왜 정치를 했던가, 내가 왜 대통령이 되었는가, 결국 나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우리 아들들, 특히 우리 큰아들 홍일이를 보면 가슴이 미어져서 살 수가 없다’ 이런 애절한 장남 사랑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전했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1996년 8월13일 오전 부인 이희호 여사와 장남 김홍일 의원 등 가족들과 함께 서교동 성당에서 피랍생환 23주년을 맞는 기념미사를 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1996년 8월13일 오전 부인 이희호 여사와 장남 김홍일 의원 등 가족들과 함께 서교동 성당에서 피랍생환 23주년을 맞는 기념미사를 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DJ "인생은 도전과 응전…불행도 행운이라 여겨야"

두 사람은 부자지간이자 정치적 동지 관계였다. 장남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애틋함은 《김대중 옥중서신》에 그대로 담겨 있다. 옥중서신은 육군교도소와 청주교도소에서 생활하던 김 전 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 등 가족들에게 보낸 29통의 편지를 묶어서 펴낸 책이다. 1980년 9월17일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김 전 대통령은 그해 11월21일부터 1982년 12월15일까지 엽서 한 장에 자그마한 글씨로 빼곡하게 채워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김 전 의원에 대한 언급은 1980년 12월19일에 쓴 네 번째 편지에서 처음 나온다. 이 편지에서 김 전 대통령은 며느리(김 전 의원 부인-편지에서는 ‘지영이 모’로 호칭)에게 “너의 남편 홍일이에 대해서 나는 참으로 미덥고 그 장래를 기대하는 심정이 강하다. 그 애는 개인적으로나 신앙인으로서 또는 가정인으로서 나의 그 나이 시절보다 훨씬 훌륭하다. 뿐만 아니라 사물을 판단하는 능력, 일 처리하는 역량, 타인에의 설득력, 친구들과의 신의와 결합 등 뚜렷한 능력과 소질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편지를 쓸 당시 김 전 의원은 구속상태였다. 

4월2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의 빈소에서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문하고 있다. ⓒ시사저널
4월2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의 빈소에서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문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듬해 1월17일 다섯 번째 편지에서 김 전 대통령은 편지에서 “홍일이는 여러 가지 일을 시켜보고 이번 하는 것을 보면 시종 알 수 있듯이 앞으로 자기 앞을 능히 가려 나가면서 나의 못할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통령의 기대가 반영된 것일까. 김 전 의원은 그해 5월 10일 특별사면을 받고 석방됐다. 석방 후 처음 쓴 5월22일자 편지에서 김 전 대통령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도전과 응전이다. 어떠한 어려운 도전에도 반드시 응전의 길이 있으며, 어떠한 불행의 배후에도 반드시 행운으로 돌릴 일면이 있다. 이 진리를 깨닫고 실천한 사람은 반드시 인생의 성공을 얻을 것이다.”

1982년 6월25일에 쓴 스물세번째 편지에서 김 전 대통령은 이희호 여사에게 “홍일이에 대한 나의 기대는 큽니다. 장차 나라와 국민을 위해 내가 못한 봉사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인재로 대성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라고 아들의 장래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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