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한국 현대사의 ‘뜨거운 동반자’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29 08:00
  • 호수 15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강의 기적’과 맞닿아 있는 ‘세계 1위’ 열풍

‘썸 탄다’는 표현이 아직 발명되지 않았던 2001년.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어린 이영애는 그보다 조금 더 어렸던 유지태에게 21세기 영화사, 아니 연애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를 던진다. “라면 먹고 갈래?” 

지방 방송국 피디인 이영애가 음향 담당인 유지태와 바람 소리를 녹음하고 돌아오다 막 헤어지려는 순간 건넨 이 한마디는 그날 이후 대한민국 젊은 남녀의 내밀한 속마음을 전달하는 ‘암호 아닌 암호’가 돼 버렸다. 내 심장이 격정적으로 뛰고 있고, 상대방의 심장 또한 격정적으로 뛰고 있음을 아는 그 결정적 순간, 한국인들은 이제 이 암호 같은 말을 건넨다. 

그런데 왜 많고 많은 음식 중에 라면이었을까. 아마도 그만큼 라면이 우리에게 친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천만 한국인 중 라면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고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 친숙함은 무겁고 어려운 상황을 쉽고 가볍게 바꿔주는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된다.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만도 않다. 한국인들에게 라면은 때론 따뜻한 밥 한 그릇 이상의 음식이다. 바싹 말라버린 마음에 일어난 균열을 따스하게 위로한다. 다정한 손길처럼 말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2조원 벽에 갇힌 라면 시장

한국인들의 라면 사랑은 놀랍다.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 국민은 1년간 총 37억 개가 넘는 라면을 소비했다. 세계 8위다. 하지만 1인당 라면 연간 소비량은 73.7개로 ‘세계 1위’다. 한국갤럽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 10명 중 6명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라면을 먹고 있다. 소설가 김훈도 이런 현상을 포착했다. 그는 책 《라면을 끓이며》(2015)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고 먹을 것이 넘쳐나지만 라면 시장은 위축되지 않는다. 라면은 한국인의 정서적 토양의 기층에 착근되었다. 라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인다. 그 안쓰러운 것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고 썼다. 

한국 사회는 정말 다이내믹하다. 김훈의 관찰은 그새 ‘구문(舊聞)’이 되어간다. 최근 라면 시장은 울상이다. 2013년 첫 2조원대를 돌파한 국내 라면 시장이 이후 심각한 정체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2017년 1조9900억원으로 내려앉았던 매출은 지난해 겨우 2조475억원(추정)으로 제자리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라면을 식탁에서 밀어내고 있는 것은 가정간편식(HMR)이다. 과거 ‘3분 카레’ 등에 그쳤던 간편식은 이젠 ‘집밥’을 대체할 정도로 성장하며 집밥 대용식의 대명사였던 라면 수요를 잠식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2010년 7700억원이었던 국내 HMR 시장 규모(라면 제외)는 2014년 1조50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3조원으로 커졌다. 연평균 20% 이상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올해는 4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진라면, 신라면 30년 아성 흔드나 

“이렇게 맛있는데 언젠가는 1등 하지 않겠습니까.” 12년 전 배우 차승원이 진라면을 광고하며 했던 카피다. 이 광고가 점점 현실화하면서 잠잠했던 라면 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지난 30년간 라면 시장의 최강자였던 농심 신라면을 오뚜기 진라면이 바짝 추격하고 있어서다. 

조사기관마다 수치가 다르고 라면업체들이 서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준을 적용해 확실한 숫자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진라면은 판매량 기준으로 최근 신라면의 아성을 위협할 만큼 시장 점유율을 늘렸다. 다만 신라면 가격이 830원(편의점), 676원(이마트)으로 진라면 720원(편의점), 550원(이마트)에 비해 비싸기 때문에 판매액 기준으로는 아직 신라면이 진라면에 비해 우위에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오뚜기는 2008년 이후 진라면 가격을 11년째 동결하고 있다. 

라면 시장의 판도가 흔들리자 라면업체들은 각자 독특한 제품과 파격 마케팅으로 성장 돌파구를 찾고 있다. 농심은 일단 1990년대 단종됐던 ‘해피라면’을 내놓고 저가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해피라면은 편의점 가격 기준 700원으로 진라면보다 싸다. 아울러 농심은 신라면 고유의 맛은 유지하면서도 튀기지 않은 건면을 사용해 칼로리가 일반 라면의 70% 수준인 ‘신라면 건면’을 출시했다. 신라면 건면은 1986년 신라면 브랜드를 처음 내놓은 뒤 2011년 2세대 신라면블랙에 이어 8년 만에 나온 3세대 신라면이다. 가격도 일반 신라면과 차이가 크지 않은 1000원(편의점 기준)으로 책정해 경쟁력을 높였다.

오뚜기도 진라면 외에 신제품을 내놓고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오뚜기가 지난해 출시한 ‘쇠고기 미역국 라면’은 초록색 미역이 가득 든 라면으로 일반 상식을 뛰어넘는다. 가격도 1600원으로 프리미엄 제품에 속하지만 출시 6개월 만에 판매량이 3000만 개를 넘었다. 쇠고기 미역국 라면은 지난해 하반기 오뚜기의 전체 라면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삼양라면도 최근 ‘참참참 계란탕면’ ‘쯔유우동’ ‘튀김칼국수’ 같은 신제품을 선보였다. 참참참 계란탕면은 라면 국물이 중식 계란탕처럼 걸쭉한 질감이라는 소문을 타고 출시 한 달 만에 150만 개가 팔렸다. 팔도는 팔도비빔면 35주년을 기념해 이름부터 암호 같은 ‘괄도네넴띤’을 선보여 ‘1020 소비자’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라면업계가 ‘신제품 전쟁’에 나서는 것은 라면 시장 자체의 정체도 있지만 최근 1~2년 사이에 등장한 경쟁자들의 영향도 크다는 분석이다. 최근 라면업계에는 스타트업 열풍이 거세다. 2017년 출시된 옥토끼프로젝트의 ‘요괴라면’이 대표적이다. 크림파스타, 조개파스타, 국물떡볶이 맛 라면을 선보이는 이 업체는 기존 라면보다 2배 비싼 가격에 일부 웹사이트에서만 판매하는데도 출시 한 달 만에 7만 개를 팔아 화제가 됐다. 라면업계에 PB(자체 브랜드)도 무서운 경쟁자다. GS25의 ‘오모리김치찌개라면’과 이마트의 ‘민생라면’ 등은 유명 맛집 또는 초저가 라면과 같은 다양한 콘셉트를 내세우며 전통 라면업체를 위협하고 있다.

‘국민 음식’ 라면의 역설, 한국 사회의 그림자

해외에서 오래 살던 사람들이 십여 년 만에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이 천지개벽’했다며 놀라는 일이 종종 있다. 특히 이들은 한국에서의 삶이 얼마나 편리한지 강조한다. 해외에선 일주일이 걸리는 인터넷 신청이 서울에서는 1시간 만에 뚝딱 해결된다. 스마트폰으로 장을 보면 반나절도 걸리지 않아 문 앞에 배달이 온다. 자정이 넘어도 대리운전 기사를 부를 수 있고, 배달 음식 주문이 가능하다. 편의점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그래서 간만에 한국을 찾은 교포들은 왜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은다. 

맞다. 너무 편리한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한국은 너무 고달픈 나라가 되어만 간다. 한국에서는 자꾸 청년들이 일을 ‘빨리빨리’ 하다 죽는다. 이들의 유품으로는 자꾸 컵라면이 나온다. 3년 전 지하철 구의역 사고로 숨진 청년의 가방에서 컵라면이 나왔다. 19세 청년은 컵라면 하나 먹을 시간 없이 종종거리며 목숨 걸고 혼자 일했다. 작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노동자 김용균씨의 유품에서도 컵라면이 나왔다. 컵라면은 김씨가 식사시간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줬다. 그렇게 꽃다운 청년들의 죽음 속에 컵라면은 비정규직과 그들의 고단한 삶을 상징하게 됐다. 

어쩌면 그토록 라면의 종류가 다양한 것은 그만큼 우리네 일상이 복잡하고 고단해서일지도 모른다. 《밥벌이의 지겨움》(2003)에서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고 노동의 비애를 얘기했던 김훈은 12년 후 《라면을 끓이며》를 통해 밥 대신 라면을 말했다. 그는 “증명할 수는 없지만, 나는 1960년대 이후 한국 라면 시장의 팽창은 그 무렵부터 구조적으로 전개된 빈부의 양극화, 인구의 대량 소외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사실 라면은 한국 현대사의 동반자다. 일본에서 대한해협을 건너 1963년 9월15일 한반도에 처음 상륙한 라면은 보릿고개 시절을 이기게 해 주는 구호물자와 같았다. 라면의 역사가 시작된 1960년대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산업 전사들에 의해 산업화가 본격화되던 때다.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시작한 산업화 초기부터 경제 규모로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미덕은 속도였다. 서구에서 수백 년이 걸린 산업화를 몇십 년으로 압축한 비결 역시 속도였다. 숨 막히는 속도전의 시대에 라면보다 어울리는 음식은 드물다. 우리보다 앞서 일본에서 인스턴트 라면 산업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도 우리와 흡사하다.  

1963년 이후 라면은 생산·유통·소비의 모든 단계에서 공업화, 대량화의 길을 걸어왔는데, 라면 회사들의 광고정책은 이와는 반대로 라면의 천연적 성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가장 공업적인 생산방식임에도 업체들은 라면은 식재료를 고아내 우려낸 맛이고, 자연 속에 고유하게 존재하는 맛이라는 것을 대중 정서에 각인시키려는 광고를 내보냈다. 그리고 이런 광고들은 상당 부분 성공했다. 우리의 산업화 정책처럼 말이다.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고도 성장기를 맞으면서 라면 시장도 황금기를 맞게 되는 1980년대에 지금의 베스트셀러 제품 대부분이 개발된다. 이 시기 라면은 가난한 시절의 먹거리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누구든 아무나 즐길 수 있는 친근함으로 이미지를 전환한다. TV의 급속한 보급에 발맞춰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식의 재밌는 라면 광고가 생겨나고, 품질을 높인 이른바 ‘프리미엄 라면’이 처음으로 시도되기도 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사회 전체에 불안감이 휘몰아칠 당시에는 자극적인 맛이 강한 라면이 유행하기도 했다. 전반적인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라면의 시장 규모는 이때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한다. 그리고 3분이던 기본적인 조리 시간보다 훨씬 짧은 제품들이 생산된 것도 이 시기의 특징 중 하나로, 조급한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1960년대 ‘조국 근대화 정책’에 따라 경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진행된 도시화와 핵가족화도 라면 폭풍 성장의 중요한 배경이다. 1949년에서 1960년 사이 도시 인구는 347만 명에서 700만 명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전체 인구에서 도시 인구의 비중이 17.2%에서 28.0%로 증가한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려운 대규모 인구 이동이었다. 이런 도시화 추세 속에서 이른바 ‘나홀로족’도 급증해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4인 가구를 넘어선 지 오래다. 혼자 일하고, 혼자 쇼핑하고, 혼자 잠자고, 혼자 먹는 나홀로족들은 라면의 주요 소비층을 형성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할퀴던 2007년 라면은 배우 송강호와 함께 한국인들을 울린다. 그해 개봉한 영화 《우아한 세계》에서 기러기 아빠로 지내는 찌질한 조폭 두목 역을 연기한 송강호는 가족들이 해외에서 즐겁게 물놀이를 하는 비디오를 보면서 라면을 먹다가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터뜨린다. 라면이 가진 가벼움과 대비된 당시 가장들의 삶의 무게가 기묘한 대조를 이뤄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양세욱 인제대 교수는 라면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반세기 전 일본에서 건너온 라면이 없었더라면, 라면으로 육신의 허기를 달래고 마음의 위안을 얻지 못했더라면 우리의 현대사는 얼마나 쓸쓸했을 것인가. 라면은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려주고 허기진 몸과 영혼을 위로해 주던 식구이자 친구였다. 뜨거운 입김을 불어가며 라면 한 젓가락을 입안 가득 물고 행복해하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라면과 라면의 성공 신화를 함께 이룬 이들에게 따뜻한 박수를 건넨다.” 

참고자료: 《라면이 바다를 건넌날》(2015, 무라야마 도시오), 《라면을 끓이며》(2015, 김훈), 《라면에 관한 알쓸신잡》(2018, 하창수)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