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기업 꿈꾸는 ‘장수 기업’의 DNA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1 08:00
  • 호수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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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장수기업을 만드나…위기대처·변화·글로벌화가 핵심 원동력

260년의 역사를 이어온 초장수기업 파버카스텔은 연필 하나로 그 역사를 이어왔다. 연필로 출발해 볼펜과 만년필 등 문구류를 만들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문구 회사다. 일본 이시카와현에 있는 전통 료칸인 호시료칸은 1301년째 운영되고 있다. 명실공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이다. ‘백년기업’이나 ‘장수기업’을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나라, 독일과 일본. 일본에는 창업한 지 1000년 이상 된 기업이 스무 곳이 넘고, 독일은 2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이 1563곳에 이른다. 

일본이나 독일에 흔한, 200년 이상 역사를 지닌 기업이 한국에 있을까. 안타깝게도 단 한 곳도 없다. 산업화 역사가 짧기도 하지만, 높은 상속세율과 상속공제제도, ‘부의 대물림’이라는 반기업 정서가 기업을 장수하지 못하게 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한국에서 100년여의 명맥을 잇고 있는 기업은 8곳뿐이다. 한국에서는 ‘30년 이상 된 기업’을 장수기업으로 판단할 정도다. 기업의 평균 수명이 15년인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기업이 장수기업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장수하는 기업의 비결은 무엇일까.

1975년 진로소주 월 생산 100만 상자 돌파 기념식
동화약방(현 동화약품) 본포

환경 적응과 위기 극복 DNA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기업은 두산이다. 1896년 서울 종로 배오개에서 개점한 ‘박승직 상점’이 지금의 두산그룹이 됐다. 1946년 고(故) 박두병 초대 회장이 ‘박승직 상점’을 ‘두산상회’로 개명하면서 두산의 현대사는 시작됐다. 1952년 OB맥주를 설립한 두산상회는 1960년대 들어 건설과 식음료, 기계 등 시대의 요구에 맞춘 사업 변화를 꾀했다. 1970년대부터는 선진 외국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기술을 고도화했고, 1980년대부터 맥주와 건설, 전자, 무역 등을 중심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했다. 

특히 ‘위기 대처’는 두산의 역사를 이어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1995년 말, 창업 100주년을 앞두고 다른 기업보다 빠르게 구조조정에 착수하면서 사업구조를 재구성했고, 23개 계열사를 주력 4개사로 재편했다. 알짜 기업들을 매각해 현금흐름을 바꾼 것이 위기 극복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레드오션이라면 간판사업도 매각한 결단력도 저력으로 꼽힌다. 1990년대 식음료 사업을 매각하고 중공업과 기계로 사업을 재편한 두산은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업종을 변환한 곳으로 평가된다.

시대에 따라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것도 장수기업의 공통 DNA다. 전 세계적으로 향후 15~20년 이상 도시화와 산업화가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확신하에, 두산의 사업포트폴리오를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인프라 지원 사업(ISB)군으로 변화시키면서 성장을 이끌었다. 두산은 신사업인 2차 전지 소재 사업과 드론, 협동로봇 사업을 준비해 4차 산업혁명과 친환경 에너지 시대를 겨냥하고 있다.

GS건설이 설립한 건설기술연구소
우리은행의 뿌리인 대한천일은행 본점 광통관

금융위기 시련 이겨낸 ‘장수은행’ 

설립 120년 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역사의 은행, 우리은행은 1899년 ‘대한천일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금융 지원을 원활하게 해 경제 발전에 기여하라’는 고종황제의 뜻에 따라, 황실자금과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 주식회사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이 초대 은행장을 맡았다. 우리은행은 일제 금융침탈에 저항하기 위해 휴업을 단행하는 등 민족운동에 앞장섰고, 1907년부터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자금과 독립운동 자금을 관리했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1910년에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선상업은행’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50년 ‘한국상업은행’으로 은행명이 변경됐다. 1960년대 시작된 경제개발 계획의 국내 자금 조달을 위해 강력한 저축 운동을 전개하면서 한국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우리은행의 또 다른 뿌리는 ‘한일은행’이다. 1999년 두 은행이 합병하면서 한빛은행으로 재탄생했고, 이후 광주은행과 경남은행 등을 자회사로 하는 우리금융지주가 2001년 설립됐다. 한빛은행은 2002년 2월 평화은행을 흡수 합병했고, 그해 4월 지금의 ‘우리은행’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우리은행 역시 금융위기라는 시련을 이겨내고 일어선 장수기업이다. 금융위기 당시 부실자산을 정리하고, 전산시스템과 신용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재구축했다. 해외의 선진 금융기법 도입과 해외 진출에 심혈을 기울인 우리은행은 해외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역할도 충실히 수행했다. 신성장동력을 해외에서 찾아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해외 진출 확대 및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진출의 핵심 거점인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캄보디아·미얀마 등에서 유기적 성장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해당 국가들에 지점을 신설하는 중이다.


민족정신 기반으로 100년사 만든 제약회사들

국내 최초의 제약사인 동화약품은 1987년 창립됐다. 국내 제약산업이 동화약품의 대표 상품인 활명수의 개발과 그 시작을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국내 최초 양약 활명수의 의미는 컸다. 동화약품은 일제강점기 시절 활명수 판매금으로 독립자금을 조달했고, 1919년 3·1운동 이후 상해에 세워진 임시정부와 국내 간 비밀연락망인 ‘서울연통부’를 운영했다. 당시 동화약방(현 동화약품)의 민강 사장이 국내외 연락을 담당하고 수집된 정보와 독립자금을 전달하는 행정 책임자였다. 

민족정신을 기반으로 성장한 만큼 동화약품은 사회공헌활동에 많은 공을 들였다. 물 부족 국가의 식수 정화와 위생교육 사업 지원에 활명수 기념판의 판매 수익금을 사용하고 있고, 2017년에는 인도네시아 자바섬 식수와 위생 사업을 지원했다.

유한양행은 93년이라는 역사를 지닌다. 100년 기업을 바라보고 있는 유한양행은 유일한 창업주가 일제강점기에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한국인들을 보고 ‘건강한 국민만이 잃어버린 주권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1926년 의약품산업을 선택해 창립한 회사다. 민중 사이에 만연했던 피부병, 결핵 등을 치료하기 위해 의약품을 수입·공급하는 한편, 소독제와 백신 등을 보급해 국민들의 질병퇴치에 노력했다. 외국 의약품 수입에만 의존할 수 없다고 판단, 자체생산에 돌입해 1933년 자체 1호 개발품인 ‘안티푸라민’ 생산을 필두로 구충제·피부병약을 제조·판매하기 시작했다. 1936년에는 본격적으로 제약공장과 실험연구소를 건립하고 회사 형태를 주식회사로 변경했다.  

자본과 경영을 분리한 경영체제 또한 유한양행의 장수 DNA로 꼽힌다. 유한양행의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는 작고 당시 보유 지분 전체를 사회에 내놓았다. 그의 딸인 유재라 여사 역시 200억원의 재산을 유한재단에 기부하고 세상과 이별했다. 유한양행은 1969년부터 유일한 박사의 뜻에 따라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전문경영인 체제가 유지되면서, 공채 출신 CEO가 경영을 맡아오고 있다. 

①두산이 4차 산업혁명을 겨냥해 준비 중인 드론 사업 ②유한양행이 건립한 중앙연구소
①두산이 4차 산업혁명을 겨냥해 준비 중인 드론 사업 ②유한양행이 건립한 중앙연구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결단력 

하이트진로의 전신은 조선맥주다. 1933년 우리나라 최초 맥주공장으로 설립됐다. 1967년 현 박문덕 회장의 선친인 고(故) 박경복 회장이 경영권을 인수했고, 1973년 8월에는 기업을 공개하고 주식을 상장했다. 1991년 3월 박문덕 회장이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2세 경영체제에 돌입했다. 

하이트진로는 1990년대, 소비자 구매실태조사를 통해 기록적인 매출신장을 이룩하면서 정상궤도에 올랐다. 하이트의 지속적인 판매 호조에 힘입어 업계 1위를 탈환했고, 국내 최초 흑맥주 ‘스타우트’, 100% 보리맥주 ‘맥스’, 국내 첫 발포주 ‘필라이트’ 등으로 성장가도를 계속 달리는 중이다. 최근에는 청정 라거 ‘테라’를 출시하며 친환경, 자연에 대한 갈망이 커진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소주의 대명사 ‘진로’의 인수 작업에 착수한 것이 회사가 장수기업으로 나아가는 데 가장 주효했다는 평가다. 2003년 10월부터 1년6개월 동안 하이트맥주는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며 치밀하게 인수 작업을 진행했다. 진로를 다른 회사에 뺏길 경우 하이트맥주 사업이 존망의 기로에 설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진로 입찰에 참가한 10개 기업 중 외형이 가장 작은 하이트맥주가 진로를 가져가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국내 최대 맥주 및 소주 제조회사로 자리매김한 하이트진로는 다른 장수기업처럼 세계화 전략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동남아, 유럽, 아프리카 등 전 세계 80여 개국에 소주를 수출 중이다. 지난해 소주 수출액 5000만 달러를 돌파했다. 한류 드라마 협찬, 프랜차이즈 등으로 유통망을 넓히면서 영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으로 현지인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①포스코 포항제철소 ②대한항공 50주년 행사
①포스코 포항제철소 ②대한항공 50주년 행사

한국 경제 성장사와 함께 성장

1968년 설립된 포스코의 50년 역사는 한국 경제의 성장사와 궤를 같이한다. 포스코는 설립 이래 반세기 동안 성장을 멈추지 않고, 단 한 번의 적자도 없이 지속적으로 흑자 경영을 유지하면서 국가 경제 발전을 지켜왔다는 평가다. 1960년대 후반 자본과 기술, 경험은 물론 부존자원마저 없던 시절, 당시 박태준 포항제철(현 포스코) 사장이 영일만에 종합제철소를 성공적으로 건설했고, 광양만에 세계 최대 제철소를 만들었다.

첫 쇳물이 생산된 1973년 416억원이던 매출액은 2018년 30조6594억원으로 늘었다. 기술 측면에서도 괄목하게 성장했다. 기존 100여 년 역사의 근대식 용광로를 대체하는 파이넥스 공법은 환경친화적이고 경제적인 혁신공법으로 포스코가 독자적으로 개발해 상용화했다. 2013년에는 동남아시아 최초의 일관제철소를 인도네시아에 준공했다. 1970년 일본 철강사들의 도움으로 첫 일관제철소를 보유하게 된 이래, 40년 만에 독자적으로 해외에 일관제철소를 지을 정도로 성장한 기술 선도기업이 된 것이다. 포스코는 우수한 경영실적과 경쟁력 및 지속가능 경영을 인정받아, 글로벌 철강전문 분석기관 WSD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에 2010년부터 9년 연속 선정됐다. 지난해 포스코는 창립 50주년을 맞이해 새로운 100년을 위한 준비작업에 돌입했다.


브랜드·디자인의 변화와 새 시대 혁신

1969년 설립된 GS건설도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GS건설의 역사는 1969년 락희개발 설립으로 시작됐다. 당시 설립 자본 1억원으로 건설업에 뛰어들었고, 1975년 럭키개발로 이름을 바꾸며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올랐다. 1995년 3월 LG건설로 명칭을 변경한 후 1999년 LG엔지니어링을 흡수 합병했고, 2005년 3월 구씨인 LG가(家)와 허씨인 GS가(家)의 계열분리를 통해 GS건설로 새 출발을 했다.

GS건설의 본격적인 성장은 아파트 브랜드 자이(Xi)의 론칭과 함께 시작됐다. 확고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며 업계에서 고급 브랜드로 각인된 것이다. 자이 론칭을 시작한 2002년에는 주택 부분 매출이 7800억원이었지만, 8년 후인 2010년에는 2조3500억원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적응력도 GS건설의 장수 원인으로 꼽힌다. 자이는 업계 최초로 가스와 난방, 조명 등을 집 밖에서 제어할 수 있는 홈네트워크 시스템을 도입하며 건설업계의 4차 혁명을 주도했다. 최근에는 주택뿐 아니라 정유 플랜트 부분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중동과 베트남, 터키 등 전 세계 주요 정유 플랜트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클럽’에 가입한 GS건설은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또 다른 50년의 역사를 지닌 기업으로 대한항공이 있다. 대한항공은 1969년 조중훈 창업주가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면서 출범했다. 1970년대 태평양·유럽과 중동에 하늘 길을 열었고, 1980년대에는 서울올림픽 공식 항공사 역할을 했다. 1990년대는 베이징·모스크바 노선을 개설하고, 2000년대에는 국제항공동맹체 ‘스카이팀(SkyTeam)’을 창설했다. 2010년대에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지원 및 공식 파트너로서 대회 성공 개최를 견인했다. 1969년 3월 제트기 1대와 프로펠러기 7대 등 8대를 보유하고 있었던 대한항공은 현재 166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했다. 대한항공은 지금까지의 과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객과 화물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항공우주 사업 활성화를 위해 민항기 제조 부문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또 경영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사회 내부에 설치된 감사위원회, 경영위원회의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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