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증여세가 한국 장수기업 길 막는다”
  • 남영호 건국대 경영학 전공 교수·창의융합대학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1 08:00
  • 호수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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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승계에 걸림돌 돼 완화·폐지 필요…기업은 정도경영과 신뢰구축 기반 확보해야

일반적으로 장수기업은 ‘장기적으로 존속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기업의 수명은 없고, 국가별로 규정 또한 다양하다. 장수기업이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은 일본은 장수기업을 ‘100년 이상 존속하고 있는 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업력이 30년 이상 된 기업을 장수기업으로 여긴다. 

최근에는 ‘명문장수기업’이란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장기간 건실한 기업 운영으로 사회에 기여한 바가 크고, 세대를 이어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되는 중소기업으로 정의된다. 즉 명문장수기업이란 기업의 사회적 기여도와 경제적 기여도, 기업의 가치, 연구·개발 등이 큰 기업으로 한정된다. 이처럼 대부분의 장수기업은 가족이나 친인척 등에게 경영권이 승계된 2대(代) 이상의 가족기업이다.

장수기업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업력 30년 이상 기업의 비중은 불과 2.1%에 불과하지만 매출액은 전체의 38.7%, 자산은 49.2%를 차지하고 있다. 업력별 고용능력지수는 10~20년 0.87인 반면 30~40년 2.37, 40~50년 5.17, 50~60년 5.33, 60~70년 14.17이다. 이는 업력이 오래된 기업일수록 고용창출을 많이 한다는 의미다. 

1301년의 역사를 이어온 일본의 장수기업 호시료칸(왼쪽)과 260년의 역사를 지닌 독일의 장수기업 파버카스텔 ⓒ 뉴스뱅크 이미지·EPA 연합
1301년의 역사를 이어온 일본의 장수기업 호시료칸(왼쪽)과 260년의 역사를 지닌 독일의 장수기업 파버카스텔 ⓒ 뉴스뱅크 이미지·EPA 연합

우리나라 장수기업 극소수

이처럼 장수기업은 기업 수에 비해 고용창출과 매출액 규모가 크기 때문에 경제적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근대적인 기업의 역사가 짧아 100년 이상 된 기업은 두산(1896년 창립)과 동화약품(1897년), 몽고식품(1905년)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전 세계적으로 살펴보면, 업력 2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은 8785개사다. 이들 기업은 일본(3937개사·44.8%), 독일(1563개사·17.8%), 프랑스(331개사·3.8%) 등에 많이 있다(고토우 토시오, 2012).

이런 장수기업은 대부분 가족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장수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가족기업, 구체적으로 장수 가족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대(代)를 이어 기업을 물려받는 가업승계가 활성화돼야 한다. 가업승계는 창업자가 설립한 사업을 후손들에게 아름답게 물려주고, 물려받은 후계자는 이를 새로운 언어로 해석해야 한다.

즉 후계자는 선임자의 능력과 재능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제품(서비스)을 개발하고, 시장개척, 기업의 장기비전 등을 설정해야 장수기업의 터전이 이루어진다. 성공적인 승계는 릴레이 경주의 바통 교환처럼 영광스럽고 우아하게 이뤄져야 한다. 바통은 관중석의 관객(가족구성원을 포함한 이해관계자)이 잘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그러나 차분하게 다른 선수(후계자)에게 넘겨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많은 연습과 훈련, 공유된 목표, 팀워크, 그리고 예술적인 수완 등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 승계 계획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통 15년 이상 소요되는 기나긴 과정이다. 

그럼 장수기업이 활성화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로, 정부는 가업승계가 잘 이뤄지도록 기본적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이 중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부분이 상속세·증여세의 완화 혹은 폐지다. 이미 상속세를 폐지한 국가는 이스라엘·뉴질랜드·스웨덴·노르웨이 등 11개국이며, 상속세를 완화한 국가도 여럿 있다. 독일은 상속인과 피상속인의 사전 경영기간 조건이 없으며, 일본은 상속·증여 후 5년간 고용유지 의무조항을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최근에 정부는 일부 상속세 감면 조건에서 업종, 지분, 고용유지 조건 등을 완화할 방침이라고 하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책임경영과 사회적 책임 완수의 필요성

나아가 증여세의 보완이 절실하다. 흔히 가업승계를 ‘부(富)의 이전’이 아니라 ‘기업가 정신의 이전’이라 한다. 선대의 경영철학, 내·외부의 네트워크(금융기관, 거래처, 주요 고객, 종업원 등)를 원활히 잘 이전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증여세의 최고 공제금액은 100억원이지만, 하루빨리 상속세와 동등하게 500억원으로 확대해야 한다. 나아가 상속·증여세는 어느 정도 규모가 큰 중견기업 전체로 확대돼야 실질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둘째로, 기업은 정도경영과 신뢰구축의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먼저 황제경영, 독단경영에서 벗어나 조직구성원을 존중하며 상호 협의해 책임경영, 사회적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또한 현 경영자(오너)와 후계자 상호 간의 높은 신뢰구축에도 큰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가업승계는 보통 15년 이상 소요되는 기나긴 과정이므로, 대부분의 조직이나 기관에서 운영되고 있는 후계자 교육 프로그램에 창업자(현 경영자)와 후계자가 동시에 교육을 받고 의사소통하는 화합의 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가 기본적으로 모든 가족구성원이 주기적으로 모여 논의하는 가족회의(주로 가정의 대소사 결정)나 가족이사회(주로 기업의 주요한 의사결정)와 같은 기구가 하루 속히 만들어져야겠다.  

셋째로, 관련 연구의 확대다. 현재 가족기업(장수기업 포함)에 관심을 가지는 전문가는 회계사나 세무사, 재무관리사(보험) 등 컨설턴트 위주로, 실질적인 연구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족기업을 강의하거나 이를 연구하는 전문가는 태부족이다. 또한 가족기업을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만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창업의 엔진이며 장기 지향적이고, 어려울수록 회복력이 크다는 점, 작업장에서의 끈끈한 우애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 등 가족기업의 장점도 강조돼야 한다. 이를 위해 중소벤처기업부 주관으로 가족기업 관련 교과목 개설 및 이에 대한 연구에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넷째로, 가족기업의 이미지 제고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족기업은 황제경영, 금수저, 네포티즘, 탈세, 불법상속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팽배해 있다. 가족기업이 제대로 된 인정을 받으려면 기업은 정도경영과 신뢰구축을, 학계에서는 가족기업 관련 강좌 개설과 전문가 육성을, 정부는 가업승계가 원활히 잘 이루어지도록 세제상의 혜택 등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또한 일반 국민들은 결과의 평등보다는 기회의 평등을 중히 여기며, 가업승계가 부의 대물림이 아닌 기업가 정신과 책임의 이전임을 재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수기업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각 개별 주체가 몸소 실천해 성공적인 가업승계가 이루어진다면, 현 정부의 모토처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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