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대출 늘리니 돌아온 건 ‘연체 폭탄’
  • 이용우 시사저널e. 기자 (ywl@sisajournal-e.com)
  • 승인 2019.05.02 13:00
  • 호수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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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대 은행 개인사업자 대출액 9.8% 증가…대출금리 증가에 채무불이행자도 증가세

자영업자 김아무개씨(36)는 지난해 서울 강남구에 15평 규모의 커피숍을 오픈했다. 직장 생활을 하며 모아둔 8000만원이 있었지만, 창업자금으로는 부족해 1금융권에서 3000만원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장사는 생각보다 잘되지 않았다. 하루에 손님이 두세 명에 그친 적도 많았다. 외진 곳에 가게를 차린 것이 문제였다. 김씨가 한 달에 내야 했던 임대료는 143만원. 대출 이자만 56만원이었다. 김씨는 한 달에 200만원도 벌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자 1년 만에 가게를 접어야 했다. 

시사저널e가 4월24일 만난 김씨는 현재 강남의 한 건물 인테리어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장사를 접은 지 반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는 폐업과 함께 신용불량자가 됐다고 토로했다. 자기 명의로 통장이나 카드를 개설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기존에 있던 8000만원 투자금은 가게와 함께 사라졌고 빚만 떠안은 채 작은 원룸에서 혼자 산다. 가족들한테 손을 벌릴 수도 있지만 부담을 넘기고 싶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경기 침체 등의 여파로 자영업자 대출의 연체율이 크게 증가하면서 은행권에 비상이 걸렸다. ⓒ 연합뉴스
경기 침체 등의 여파로 자영업자 대출의 연체율이 크게 증가하면서 은행권에 비상이 걸렸다. ⓒ 연합뉴스

자영업자 대출 증가에 연체율 리스크 커져

김씨는 “폐업은 잘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차라리 속이 편하다. 1년 동안 장사를 접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이 고민했다. 임대료에다 대출 이자도 내지 못할 땐 저축은행, 대부업 대출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더 큰 빚을 질 것이 뻔했다. 장사를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며 “지금도 은행에서 대출금을 갚으라는 독촉 전화가 오지만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의 사례처럼 자영업자 중에 최근 대출 이자를 내지 못해 연체율이 상승하거나 원리금 상환을 못하는 채무불이행자가 늘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을 늘린 금융권의 자산 건전성 역시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신용평가업체인 나이스신용평가가 지난 2월 국회 정무위원회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개인사업자 대출(개인이 보유한 기업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90일 이상 연체 상태인 자영업자는 2만7917명이다. 전체 자영업 대출의 1.43%로, 2017년 말보다 0.11%포인트 증가했다. 채무불이행 자영업자 비율 역시 지난해 1분기 1.36%, 2분기 1.39%, 3분기 1.41%, 4분기 1.43% 등으로 매 분기 상승 중이다. 

업계에선 자영업자 대출이 가계대출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자영업자 채무불이행에 따른 은행 연체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KB국민·신한·KEB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개인사업자(SOHO·소호) 대출 총액은 191조58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9.8% 증가했다. 같은 기간 4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253조8050억원으로 전년 대비 3.4% 늘었다.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율이 주택담보대출보다 3배가량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은행별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규모가 가장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우리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총액은 41조549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7% 늘었다. 신한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은 같은 기간 42조6650억원으로 전년보다 10.5% 증가했다. 하나은행은 9.2% 늘어난 41조7660억원을 기록했다. 국민은행은 9.1% 증가한 65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전체 금융권의 개인사업자 대출도 매년 증가했다. 2015년 274조원, 2016년 307조원, 2017년 354조원, 2018년 9월말 현재 390조원 등으로 늘었다. 특히 상호금융 및 저축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액이 가파르게 증가하며 전 금융권의 자영업자 대출 규모를 키웠다. 상호금융의 지난해 9월말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8% 증가했다. 저축은행은 37.6%, 은행은 9.6% 늘었다. 

자영업자의 대출 규모가 늘어난 만큼 연체율도 증가했다.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전 금융권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65%를 기록했다. 전년 말보다 0.14%포인트 증가했다. 연체율 관리가 엄격한 5개 시중은행(KB국민·신한·KEB하나·우리·NH농협)도 올해 1분기 자영업자 연체율은 0.30%로 1년 전보다 0.03%포인트 증가했다. 

금융권의 자영업자 대출 증가율은 계속 커질 전망이다. 금융권의 자영업자 대출 금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이 지난 3월 취급한 개인사업자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연 4.97%로 1년 전(4.87%)보다 0.10%포인트 증가했다. 같은 기간 물적담보대출 평균금리 역시 3.71%에서 3.83%로 0.12%포인트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분할상환방식 주택담보대출 금리(3.20~3.40%)보다 높은 상황이다. 

9월13일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 ⓒ 연합뉴스
9월13일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 ⓒ 연합뉴스

발등에 불난 금융 당국, 자영업자 대출 검사

이에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은 은행권의 자영업자 대출에 대한 공동 검사에 나서기로 했다. 금감원과 한은은 신한은행을 시작으로 KB국민은행,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자영업자 대출 취급 실태를 점검한다. 한은은 통화정책 관련 규정을 중심으로, 금감원은 담보 및 보증과 관련해 조사할 계획이다. 

또 금융 당국은 자영업자 등 개인의 연체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채무조정제도를 도입해 채무조정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대출 연체가 발생한 차주에게는 정상적으로 경제생활에 복귀할 수 있도록 채무감면율을 29%에서 2022년까지 45%로 확대할 계획이다. 변제 능력을 상실한 차주는 성실 상환 시 잔여 채무를 면제하는 특별감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자영업자의 채무조정과 재기 지원 활성화 외에도 개인사업자 대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금융사에 대해 개인사업자 대출 관리계획을 제출받아 주기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라며 “특정 업종에 대한 대출 편중도 집중 관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금융 당국은 자영업자 대출에 따른 금융권의 대출 부실화는 계속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 금융 당국 관계자는 “자영업자 사업성에 대한 면밀한 심사가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대출 급증세나 업종 쏠림이 지속될 경우 대출 건전성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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