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타도’ 외치던 최고 부호, ‘대만의 트럼프’ 되나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2 17:00
  • 호수 15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폭스콘 창립자 ’궈타이밍 훙하이정밀공업 회장, 경제 불황 속 총통 출마

4월22일 대만 ‘연합보(聯合報)’는 자사 조사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합보는 “한궈위(韓國瑜) 가오슝(高雄) 시장이 26%, 궈타이밍(郭台銘) 훙하이(鴻海)정밀공업 회장은 19%의 지지율로 1~2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주리룬(朱立倫) 전 신베이(新北) 시장이 13%, 왕진핑(王金平) 전 입법원장이 11%로 뒤를 이었다. 이는 내년 대만 총통선거를 앞두고 국민당 내 주요 주자를 모두 대입한 최초의 조사 결과다. 

4월19일 ‘빈과(蘋果)일보’가 대만 세신(世新)대 조사센터에 의뢰해 발표했던 여론조사 결과가 대표적이다. 빈과일보는 “한 시장이 29.8%, 궈 회장은 29%의 지지율을 얻었고 무응답은 41.2%”라고 보도했다. 두 여론조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은 연령별 지지층이다. 연합보 조사에서 한 시장은 60세 이상 세대에서 28%, 궈 회장은 20~39세 세대에서 23%의 지지율로 각각 1위를 차지했다. 빈과일보 조사에서도 한 시장은 50세 이상 노년층에서, 궈 회장은 39세 이하 젊은 층에서 1위를 기록했다.

폭스콘 창립자인 대만의 궈타이밍 훙하이정밀공업 회장이 4월17일(현지 시각) 타이베이에 있는 국민당 당사를 방문, 당원들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EPA 연합
폭스콘 창립자인 대만의 궈타이밍 훙하이정밀공업 회장이 4월17일(현지 시각) 타이베이에 있는 국민당 당사를 방문, 당원들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EPA 연합

세계 206위 부자…정치기반은 취약 

궈 회장은 국민당 내 기반이 전혀 없는 정치 신인이다. 출마 선언을 한 지 일주일도 안 돼 강력한 지지세를 모으고 있는 현실은 대만에서 이채로운 현상이다. 대만 정계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연고(緣故)주의가 강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만의 집권당인 민주진보당(民進黨)은 남부 지방과 본성(本省)인 출신, 젊은 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에 반해 국민당은 북부 지방과 외성인 출신, 장·노년층 지지가 두드러진다. 여기서 본성인은 명·청대에 주로 푸젠(福建)에서 건너온 한족이다. 중남부에 살면서 대부분 민난(閩南)어를 구사한다.

그에 반해 외성(外省)인은 1945년 이후 국민당과 함께 대륙에서 건너왔다. 북부에 주로 살고 표준중국어를 구사한다. 과거 본성인과 외성인의 정치사회적 갈등은 심각했다. 다만 외성인의 후손이 3~4세까지 태어나면서 내성인과의 경제사회적 반목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상반된 정치적 성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실제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 한궈위 시장, 주리룬 전 시장 등은 외성인의 후예로 국민당 소속이다. 반대로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라이칭더(賴淸德) 전 행정원장 등은 본성인의 후손으로 민진당 소속이다.

궈타이밍 회장도 외성인 2세다. 그가 국민당 경선에 참여를 선언한 것은 이런 연고주의와 친중(親中)적인 정치 성향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의 지지층은 전통적인 국민당 지지층과는 거리가 있다. 불과 몇 주 전까지 39세 이하 젊은 층은 무소속인 커원저(柯文哲) 타이베이(臺北) 시장을 전폭 지지했다. 커 시장은 지난해 11월 통일지방선거에서 한궈위 시장이 당선되기 전까지 유력한 차기 총통 후보였다. 지난해 말부터 수개월 동안 지지율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전문대 졸업 이상 고학력자와 젊은 층의 절대적인 지지 덕분이었다.

최근 들어 장·노년층과 저학력자의 지지로 급부상한 한 시장에게 1위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여전히 유력한 총통 후보다. 한데 이번 빈과일보 여론조사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궈 회장이 커 시장과 민진당 내 유력 주자를 모두 물리친 것이다. 궈 회장(35.6%)은 커 시장(25.2%), 차이잉원 총통(20.2%)과의 3자 대결에서 앞섰다. 커 시장, 라이칭더 전 원장과의 3자 대결에서도 32.1%대 25.8%대 23%로 이겼다. 민진당 유력 주자와의 양자 대결은 더욱 압도적이었다. 차이 총통에게는 50.2%대 27.1%, 라이 전 원장에게는 42.6%대 33.6%로 앞섰다.

그렇다면 궈 회장은 왜 급부상해 지지를 얻게 됐을까. 이는 궈 회장의 재력과 최근 대만의 경제 상황에서 비롯됐다. 1971년 타이베이의 중국해사전문대를 졸업한 궈 회장은 한동안 해운업계에서 일했다. 2년 뒤 친구와 동업해 훙하이플라스틱회사를 창업했다. 이듬해엔 TV 부품회사로 탈바꿈시켜 독자 경영했다. 1977년 궈 회장은 일본의 전자부품 회사를 인수해 사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1982년 회사 이름을 지금의 훙하이정밀공업으로 바꾸고, 3년 뒤 미국 시장 개척을 위한 자회사를 설립했다. 바로 폭스콘(Foxconn)이다.

1988년에는 선전(深圳)에 진출해 본격적인 중국 투자를 시작했다. 현재 훙하이가 중국에서 고용한 노동자는 100만 명을 넘는다. 2002년 훙하이의 매출액은 대만 제조업체 중 1위를 차지했다. 또한 글로벌 기업 톱100 안에 진입했다. 특히 2007년을 기점으로 회사 규모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폭스콘이 아이폰의 제품 대부분을 조립·생산하면서 매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2010년부터 서구 언론은 삼성전자의 라이벌로 훙하이를 손꼽았다. 지금도 폭스콘은 애플의 최대 협력사다. 2016년 훙하이는 일본의 샤프까지 인수했다.

2018년 훙하이의 매출액은 4조7074억 대만달러(약 174조2200억원)였다. 이는 전년 대비 8% 증가한 수치다. 폭스콘은 세계 1위의 전자기기 위탁제조 서비스(EMS) 업체로 적수를 찾기 힘들다. 훙하이는 대만 최고의 기업으로, 해외 언론은 ‘대만의 삼성전자’라고 부른다. 지난해 말 궈타이밍 회장이 보유한 훙하이의 주식 가치는 77억 달러(약 8조7970억원)에 달했다. 대만 최고의 부호이자 세계 206위의 부자다. 다만 궈 회장은 삼성전자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왔다. “삼성 타도가 자신의 평생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다.


야심 찬 도전, 그러나 현실은 가시밭길

이런 궈 회장에게 거는 대만인들의 기대는 남다르다. 미·중 무역전쟁의 한파와 중국의 중간재 수입이 줄어들면서 대만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실질 경제성장률은 2.63%를 기록했다. 대만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2.2% 안팎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경제 규모가 크고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한국보다 낮다. 차기 총통선거 유력 주자 여론조사에서 차이잉원 총통의 지지율이 낮은 배경은 암울한 경제 상황 때문이다. 궈 회장이 총통선거 출마를 선언하자, 훙하이와 관련 기업의 주가는 일제히 상승했다.

귀 회장이 급부상했지만 앞날은 꽃길만 놓여 있지 않다. 국민당 내에서 한궈위 시장이나 궈 회장은 비주류다. 국민당 주류는 당 주석과 총통선거 후보를 역임했던 주리룬 전 시장을 밀고 있다. 이런 당내 기류를 의식해 한 시장은 4월 상순 “총통선거 출마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민진당의 거센 공격도 시작됐다. 대만 정부의 대륙위원회는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 내 폭스콘에 공산당 지부가 설치됐다”고 밝혔다. 중국 신화통신도 “폭스콘 내 공산당원이 3만 명”이라고 보도했다. 안팎의 견제를 물리치고 궈 회장이 ‘대만의 트럼프’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