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전쟁터 곳곳에 박힌 논쟁거리들(下)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3 13:31
  • 호수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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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 사태’ 후 남은 궁금증 10문10답…고발당한 의원들 내년 총선 출마 문제 없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사태’를 거친 국회는 ‘폐허’가 됐다. 닷새에 걸친 격한 몸싸움 끝에, 4월29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등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날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에서 두드린 의사봉은 국회 갈등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자유한국당은 곧장 장외투쟁에 돌입했고, 바른미래당 분열은 더욱 골이 깊어졌다. 국회가 마비돼 ‘동물국회’를 지나 다시 ‘식물국회’가 될 거란 말도 나온다. 여야 간 고발전이 향후 총선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도 미지수다. 전례 없는 이번 난타전이 남긴 10가지 논쟁거리들을 짚어본다. 

ⓒ 뉴시스
ⓒ 뉴시스

■6. 임이자 한국당 의원의 국회의장 성추행 고발은 어찌 될까

이번 사태에서 가장 엉뚱한 일로 불똥을 맞은 인물은 단연 문희상 국회의장이다. 4월24일 임이자 한국당 의원이 다른 의원들과 함께 의장실을 항의 방문하는 과정에서 임 의원의 얼굴을 문 의장이 손으로 감싸는 등의 신체접촉을 해 논란이 된 것이다. 결국 임 의원은 4월26일 문 의장을 검찰에 고발했고 29일 사건은 서울남부지검으로 이첩됐다. 

그러나 이후 일부 언론을 통해, 한국당이 성추행의 발단이 된 당시 여성 의원들을 일부러 앞세웠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여성단체들 역시 문 의장 행동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면서도, 한국당이 성추행을 정쟁의 도구로 삼는 데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당에서도 문 의장에게 법적인 처벌을 가하고자 하는 의지는 별로 없는 상태다.

따라서 다른 고소·고발 건에 비해 수사가 빠르게 일단락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한국당이 이번 논란을 통해 국회의장의 도덕성과 권한에 흠집을 내고 의장직 사퇴를 요구하기 위한 명분을 얻고자 한 것이란 분석이 많다.

ⓒ 시사저널 박은숙
ⓒ 시사저널 박은숙

■7. 고발된 의원들 내년 총선 출마 길 막힐까

여야 간의 치열한 육탄전은 수십 장의 고발장을 남겼다. 국회법 위반 등의 혐의로 현재 수사 대상에 올라 있는 현역 국회의원은 68명에 이른다. 특히 한국당은 소속 의원(114명)의 절반 가까운 50명이 민주당·정의당에 의해 고발당한 상태다. 이대로라면 향후 검찰 수사와 재판 결과에 따라 한국당은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설마 실제 총선 출마가 어려워질 정도로 강력한 처벌이 이어지겠느냐는 시각도 많지만, 고발당한 한국당 의원들의 걱정은 생각보다 크다. 2014년 시행 후 ‘국회선진화법(국회법 165·166조)’ 위반 여부가 이번에 처음 가려진다는 큰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폭행·상해 등의 혐의로 고발당한 여야 4당 의원들과 달리, 한국당 의원 50명은 모두 이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로 고발돼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이후 여야가 합의해 서로 고소·고발을 취하하더라도 검찰 수사는 계속 이뤄진다. 특히 166조, ‘국회 회의 방해죄’ 위반이 인정될 경우 500만원 이상 벌금형만 받아도 5년 동안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피고발 규모가 크고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은 만큼, 총선 전 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피선거권을 박탈당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검찰 수사나 1·2심 재판 결과에 따라 총선 공천 과정에서 이들이 불이익을 받거나 배제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절대 고발을 취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정치적 충돌을 사법부 판단에 맡겨버린 데 대한 비판과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정치적 문제가 검찰과 사법부의 손에 해결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이번 패스트트랙 고발전도 전형적인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8.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정당 해산 가능한가

이번 동물국회 사태를 바라본 국민들은 청와대 청원을 통해 분노를 한껏 드러냈다. 한국당 해산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은 5월2일 기준 165만 명이라는 역대급 규모의 동의를 얻었다. 민주당 해산 청원 역시 25만 명을 훌쩍 넘겼다. 현실적으로 국민청원을 통한 정당 해산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하나 된 입장이다. 정당 해산을 청구할 권한은 오직 정부에 있고, 해산을 결정할 권한은 헌법재판소만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가 국민의 청원을 받아 헌법재판소에 해산심판을 청구할 순 있지만, 이 역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어떤 절차를 거쳐 정당 해산은 이뤄질까.

우리는 비교적 최근 정당 해산의 경험을 갖고 있다.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이 헌정 사상 최초로 헌재 결정에 따라 강제 해산된 바 있다. 헌법 제8조 4항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했다고 판단할 경우 정당 해산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정당 해산 청구는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재가를 거쳐야만 헌재로 향할 수 있다. 헌법재판관 7인 이상이 출석해 그중 6인 이상이 찬성해야 가능할 만큼 요건이 매우 엄격하다. 

이번 한국당 해산 청원 내용엔 통합진보당 해산 판례가 언급돼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에 통합진보당 판례를 적용하는 건 무리라고 보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경우 헌재에 해산 청구가 올라갔을 때, 이미 소속 이석기 의원 등이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있었다. 당시로선 정부도 헌법재판소도 통합진보당을 위헌정당으로 볼 최소한의 근거가 있던 셈이다. 이번 한국당의 경우, 헌법에 명시된 민주적 기본질서를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보는 평가도 있지만 제1야당의 역할 범위로 인정하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9. 지역구 축소 따른 각 당의 유불리 셈법은

결과적으로 선거법 개정안이 패스트트랙에 오른 이상, 여야 정당과 각 지역은 당장 의석수 계산기를 두드려볼 수밖에 없다. 바뀐 선거법에 따르면, 지역구 의석수는 253석에서 225석으로 줄어든다. 이 경우 인구 하한 미달로 통폐합 영향을 받는 지역구는 80여 곳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권역별로 수도권 10곳, 영남 8곳, 호남 7곳, 강원 1곳이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정당별로 따져보면 이번 선거법 개정으로 인한 각 당의 유불리가 더욱 잘 보인다. 정개특위가 지난 20대 총선을 기준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민주당과 한국당은 각각 10개 이상 의석수가 줄어들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정의당은 기존 6석에서 최대 15석으로 늘어났다. 현재 10%대 정당 지지율을 유지할 경우 20석까지도 가능해진다. 전국 지지도가 2% 미만인 민주평화당은 호남 지역구가 주로 축소되면서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는 처지다. 

바른미래당은 현재 분당 위기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셈법이 달라진다. 일단 패스트트랙 처리엔 힘을 더했지만, 크게 얻을 게 있는지는 미지수다. 일단 호남 지역 의석수 감소에 따른 당내 호남계 의원들의 불안이 큰 상태다. 당내에선 “당 지도부와 호남계 의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지 않은 선거법 개정안 상정에 동의한 데는 향후 평화당과의 통합으로 새 가능성을 모색해 보려는 계획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보수 성향이 강한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들이 한국당으로 옮겨갈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들게 됐다. 의석수 축소로 한국당 내 공천 경쟁도 한껏 치열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한국당 모두 의석수가 줄어들지만, 상황은 한국당에 더 불리하다는 분석이 많다. 민주당은 정의당 등의 의석수가 늘어나면서, 범여권 정당의 의석수가 지금보다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범여권으로 묶었을 때 의석수 과반을 내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240석 발언’ 또한 이에 근거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 시사저널 박은숙
ⓒ 시사저널 박은숙

■10. 본회의에서 이탈표30표 이상 나올까

본회의 상정까지 최장 330일, 우여곡절 끝에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다 하더라도 지금의 선거법 개정안 그대로 통과를 장담하긴 힘들다. 앞서 언급했듯 한국당은 물론, 여야 4당 내에서도 벌써부터 자신이 속한 지역구 의석수가 줄어들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일단 여야 간 자존심이 걸린 당론이었기 때문에 패스트트랙 처리에 힘을 더했지만, 본격적인 총선 국면에 들어서면 곳곳에서 반대 여론이 터져 나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호남 지역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의원들이 패스트트랙이 처리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내색을 안 하지만, 지역 주민이나 당원들이 ‘어떻게 되는 거냐’ 묻기 시작하고 옆 동네랑 지역구가 합쳐질 위기에 부딪히면 지금과 다른 입장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역구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같은 정당 소속 의원들끼리 내전을 치르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서대문 갑·을이 인구 하한 미달로 통합될 경우, 민주당 우상호·김영호 의원이 공천을 두고 경쟁해야 한다. 그 때문에 총선을 얼마 안 남기고 열릴 본회의에서 의원들이 대거 반대표를 던져 통과 요건인 과반을 넘지 못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한국당은 전체가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 여기에 지역구가 없어질 28곳의 의원들 중 대부분, 바른미래당 내 보수 성향이 강한 의원들 중 최소 10명 이상 반대에 동참해도 과반을 넘기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즉 한국당 114표에 더해 여야 4당에서 36표만 이탈해도 선거법 개정안은 무산되는데, 이 수가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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