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패스트트랙은 없었다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3 13:33
  • 호수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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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찬의 민심풍향계] 국회 파행 책임 누구에게 있나…중도층 민심 향방에 달린 ‘몸싸움’ 이후 정국

4월 국회를 벌겋게 물들였던 패스트트랙은 일단락되었다. 선거 제도를 포함해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이 발의한 안은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 설치법안까지 망라된 법안들은 진통 끝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된 시점으로부터 짧게는 180일까지 길게는 330일까지 검토되고, 일정이 경과된 후에는 자동적으로 본회의에 상정된다. 패스트트랙 지정을 두고 자유한국당은 결사적으로 저지에 나섰다. 선거제는 제1야당과 합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공수처 관련 법안은 기존 조직의 옥상옥 역할에 그치고 제1야당을 탄압하는 도구로 전락하기 십상이라는 주장이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패스트트랙에 결국 올라탔다. 한국당의 물리력 행사와 이에 맞서는 더불어민주당의 격앙된 반응으로 사상 초유의 쌍방 고소·고발전이 진행되고 있다. 여의도 정치권은 협치와 포용은 이미 물 건너간 모양새다. 패스트트랙 뒤끝이 무서워진 정국이다. 정치권을 넘어 이젠 지지층마저도 서로 말을 섞기 힘들 정도의 반목이 예상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자유한국당을 해산해 달라’는 국민청원은 150만 명을 가뿐하게 돌파했다. 전체 참여 인원은 열세지만 ‘더불어민주당을 해산해 달라’는 국민청원도 22만 명을 넘어섰다(이상 5월1일 정오 기준). 국민청원을 지지층의 결집으로 해석한다면 민주당의 판정승으로 패스트트랙 현안은 끝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국민청원은 여론조사와 달리 대표성이 있는 여론이 아니라 지지층의 적극적인 결집으로 봐야 한다. 대통령과 현 정권의 정통성이 한국당에 의해 위협받는 국면에 대통령 지지층이 국민청원을 발판으로 강력하게 결집한 결과다. 그렇다면 패스트트랙 이후 정국은 누가 결정하는가. 바로 중도층이다. 중도층은 보수층·진보층과 비교할 때 이념보다 경제 현안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모습이다. 개혁 법안과 별개로 경제문제는 현 정부 평가와 내년 총선의 ‘시한폭탄’이다. 선거에서 부동층으로 당락을 결정짓는 중도층의 민심은 최근 많이 달라졌다. 

4월29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장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이상민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4월29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장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이상민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중도층, 여야 모두에 국회 파행 책임 물어

향후 정국이 중도층에 달린 첫 번째 이유는 패스트트랙 책임을 보는 시각이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는 진보층뿐만 아니라 이념적 우클릭을 통해 중도층까지 견인해 선거 승리를 이끌어냈다. 역대 대부분 대통령들의 당선 공식이다. 이번 패스트트랙 지정은 자기 진영을 결집하는 중요한 무대였다. 한국당도 비록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보수층 결집이라는 수확은 있었다.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를 받아 4월26일 실시한 조사(구체적인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국회 몸싸움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물어본 결과, 전체는 ‘자유한국당의 물리력 행사’가 43.8%로 가장 높았다. 그러나 중도층의 의견은 달랐다. 한국당의 물리력 행사가 38.1%, 민주당의 무리한 추진이 36%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표1). 

회의장 봉쇄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한국당에 비난이 쏟아지지만, 제1야당이 극렬하게 반발하는 원인을 제공한 여당의 책임을 동시에 묻고 있다. 불과 1년여 전인 지난해 지방선거 직전의 상황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진 태도다. 정부의 주요 정책과 이슈에 대해 중도층은 줄곧 긍정 일변도의 반응을 보였지만, 패스트트랙 파행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중도층은 두 정당 모두를 꾸짖고 있다. 일반적인 여론조사 결과와 지지층의 적극적 참여인 청와대 국민청원은 꽤 큰 온도차가 있다. 

향후 정국을 중도층이 좌지우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정당 지지율 때문이다. 1년여 전 지방선거를 전후한 시점에 민주당 지지율은 50%를 훌쩍 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한국당과 많은 차이를 보였던 중도층 지지율 변화는 최근 들어 뚜렷하다.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를 받아 4월22~26일 실시한 조사(구체적인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어느 정당을 지지하거나 약간이라도 더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물어본 결과, 전체는 민주당 38%, 한국당 31.5%였다. 민주당이 오차 범위 밖으로 6.5%포인트 앞서는 결과다. 그러나 중도층은 달랐다. 민주당 33.7%, 한국당 32.7%였다. 지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보여줬던 중도층의 반응이 아니다. 두 정당의 차이는 불과 1%포인트 차이다(표2). 패스트트랙이라는 개혁 트랙을 강력하게 이끈 민주당이지만 중도층의 반응은 온도차가 있었다.

중도층의 대통령 지지율, 작년 비해 떨어져 

중도층이 패스트트랙 이후 정국을 주도하는 세 번째 이유는 대통령 지지율이다.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등 각종 전국적인 선거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주는 영향은 짐작하는 수준 이상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50%대라면 집권여당은 이른바 대통령 마케팅이 가능해진다. 대통령의 후광 효과를 십분 누리게 된다. 그렇지만 대통령 지지율이 40% 미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에게 낮은 대통령 지지율은 오히려 부담이 된다. 각종 현수막에서 대통령은 사진조차 걸리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이미 자기 진영은 결집된 선거라면 최종 승부처인 중도층의 중요성은 한층 더 커진다. 지난해 지방선거 직후 대통령의 중도층 지지율은 정점을 찍었다. 당선된 민주당 소속의 단체장 후보들은 선거 득표율이 거의 50~60%대를 웃돌았다. 중도층 표까지 가져간 결과다. 

한국갤럽의 대통령 지지율 조사(구체적인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중도층의 대통령 국정평가 추이를 분석해 봤다. 지난해 지방선거 직후 중도층의 대통령 지지율은 긍정평가 80%, 부정평가 13%였다. 경제문제가 발목을 잡으면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지난 3월26~28일 실시한 조사(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서 중도층의 긍정평가는 42%, 부정평가는 49%였다. 패스트트랙 대치 와중에 실시된 조사(4월23~25일)에서 중도층의 대통령 국정평가는 긍정 45%, 부정 49%로 긍정과 부정이 역전된 데드크로스가 다시 발생했다(표3). 대통령 지지율이 총선 투표에 영향을 주는 것을 감안하면 향후 정국에 중도층이 미치는 비중은 이전 선거와 비교할 때 월등히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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