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법안 패스트트랙’ 바라보며, 성 평등한 선거법 개정 촉구한다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4 17:00
  • 호수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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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소수자 대표성’ 고려 필요

패스트트랙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공항의 이동통로나 환승거리가 긴 지하철역이다. 걸어가는 속도를 빨리해 주기도 하지만, 가만히 서 있어도 이동시켜준다.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다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는 후자의 의미가 훨씬 크다. 물론 앞으로도 무려 330일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고, 그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를 노심초사하는 날들이 있다. 그러나 어쨌든 공수처법,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법,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등 3개, 실제로는 4개 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올라탔다. 지지고 볶아도 법은 만들어질 수 있게 되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법안은 뭐니 뭐니 해도 선거법이다. 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그건 선거법을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완전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택하고 국회의원 정수를 500명쯤으로 늘린다고 해 보자. 당장 권위주의 약화, 지역감정 소멸, 계급대표성 강화, 소수정당 약진 등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 눈에 보인다. 총선에 정당투표 하나를 도입했을 뿐인 2004년 17대 총선에서 일어난 변화가 지금 현재 우리 국회의 기본 지형을 형성하고 있지 않은가. 여러 개의 정당과 다양한 대표자들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인 것이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이 4월30일 국회에서 선거제 개혁법 패스트트랙 지정을 통과시키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이 4월30일 국회에서 선거제 개혁법 패스트트랙 지정을 통과시키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여성 대표성의 바탕은 ‘소수자 대표성’

하지만 선거법 개정으로 표의 비례성과 대표성이 강화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옳고 실제로는 애매한 이야기다. 노동자 대표성을 예로 들어보자. 울산 현대자동차 정규직 남성 노동자와 평택 식당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같은 사람이 대표할 수 있을까. 장애인 대표성을 생각해 보자. 시각장애인과 발달장애인 중 어느 쪽에 더 대표성이 있을까. 대표성이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외적으로 어떤 정체성의 표지를 지닌 사람들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은 지금부터다. 

4월30일 민주당 여성정치참여확대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위원장 김상희 의원은 페이스북에 “선거제도 개혁과 더불어 여성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선거법 개정안이 논의 과정 안에 담겨질 것”이라고 계획과 포부를 밝혔다. 여성은 인구비례로는 심지어 다수이면서도 대표적인 정치적 소수다. 여성의 대표성이 강화되고 정치참여가 늘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 소수자성에 있다. 그렇다면 참여가 확대되어야 하는 여성은 어떤 여성일까. 단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것이 여성 대표성의 골자일 수 있을까. 

물론 생물학적 여성의 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가까운 2018년 제7회 지방선거를 보면, 비례대표제에 힘입은 기초의회 여성 의원을 제외하고는 여성의 진출은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이미 각 정당의 공천 과정에서 여성이 배제되고 탈락했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적인 제도와 방법으로 지탱돼 온 정치라는 장에서 남성적 방식으로 경쟁해 이길 수 있는 여성은 많지도 않고, 그렇게 이긴 여성이 여성 정치의 대표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므로 선거제도 개혁을 고민하는 여성 정치인들은 여성 대표성이라고 하는 것의 바탕이 실제로는 소수자 대표성이라는 것을 유념해 주시면 좋겠다. 어떤 경우에도 보다 소수자이고 보다 약자의 처지에서 고민하고 입법할 수 있는 여성을 더 많이 의회로 들여보낼 수 있다면, 이번 국회난동 같은 사건들은 옛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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