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한 형제》, 마음을 움직이는 어떤 동행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4 11:00
  • 호수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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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허무는 영화

한 사람은 머리 역할을 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몸을 담당한다. 어디든 함께하는 이 2인조는 둘이 있을 때 가장 완벽하다. 《나의 특별한 형제》는 목 밑으로는 신체를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지체장애인 세하(신하균), 수영에 특출한 재능이 있지만 지적 수준은 어린아이에 머무는 지적장애인 동생 동구(이광수)의 이야기를 그린다. 피를 나눈 친형제는 아니더라도 그보다 더한 애정과 의리로 뭉쳐진 사이다. 여기에 구청 수영장 아르바이트생이자 취업준비생인 미현(이솜)이 얽혀든다. 영화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들과 그 안의 고민 그리고 행복한 동행의 조건을 사려 깊게 들여다본다. 코미디 장르를 택했지만 불편한 웃음은 없다. 

ⓒ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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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코미디로 만든 이유

시설 ‘책임의 집’을 운영하던 신부님이 세상을 떠나고, 세하는 자신과 동구를 비롯해 이곳에 머무는 장애인 형제들을 지키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끊긴 지원금을 대신해 봉사활동 시간이 필요한 학생 및 다른 이들에게 증명서를 발급해 주고 돈을 받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다른 한 가지 묘안은 수영에 재능이 있는 동구를 상금이 걸린 구 대회에 내보내는 것. 이 모든 것이 지금까지 함께 지내왔던 모두가 떨어지지 않기 위한 방편이다. 그러면서 이 둘은 미현과도 친구가 되고, 동구를 버렸던 친엄마의 등장으로 예상치 못한 위기를 겪기도 한다. 

두 사람의 캐릭터에는 실존 모델이 있다. 광주의 한 복지원에서 형제처럼 지낸 지체장애인 최승규씨와 지적장애인 박종렬씨의 사연이 모티브가 됐다. 실제로 두 사람은 영화 속 세하와 동구처럼 서로의 머리와 몸이 되어 지냈다. 2002년 최씨가 광주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면서 둘의 이야기는 세상에 알려졌다. 실제로 박씨는 최씨의 수업에 항상 동행했다. 만날 붙어 다니는 두 사람에게 ‘강력접착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두 사람의 성격과 장애 등은 실제 모티브지만 중반 이후의 드라마는 영화를 위해 만든 설정들이다. 다만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카페 주문 장면, 은행 업무 장면 등은 영화를 연출한 육상효 감독이 두 사람을 실제로 지켜보면서 넣은 것이다. 주문은 세하가 하는데 카페 직원은 입술을 씰룩거리는 동구의 얼굴만을 볼 수 있다. 휠체어의 높이와 카운터의 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상황이다. 새벽 3시만 되면 울리는 알람 소리에 익숙한 듯 눈을 뜬 동구가 세하의 몸을 이리저리 바꿔 눕히는 장면은, 대사 없이도 둘의 오랜 습관을 비춰주는 디테일이다.

실화를 모티브로 하기에 작업은 더욱 신중했다. 제작진은 시나리오 개발 단계부터 노들장애인야간학교(노들야학), 일산 사랑장애인자립센터 등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에게 지속적인 자문을 구했다. 영화의 최종본을 완성하기 직전 편집 단계에서도 모니터링을 구했다는 후문이다. 시나리오 작업에만 꼬박 3년이 걸렸다.

영화는 세하와 동구 콤비의 활약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는 코미디다. 장르 선택은 육상효 감독의 생각이었다. 언뜻 사회적 약자들의 상황을 희화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 쉬운 선택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자연스러운 웃음이 배어 나온다. 휠체어에 앉은 세하가 비장애인에게 “저처럼 의자를 가지고 다니셔야죠”라고 말하는 농담에도 불편함 없이 웃게 되고, 라면 하나를 가지고도 투닥거리는 두 사람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게 된다. 이 영화에서 코미디는 누군가를 희화화하려는 장치가 아니라, 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가장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허무는 장치다. 웃음을 통해 나와 다른 상대를 보다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길은 훨씬 쉬워진다. 코미디의 순기능인 것이다. 자칫 동구의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희화화되기 쉽지만, 적절한 균형을 잘 지킨 배우 이광수의 연기 덕에 불편한 구석이 없다.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의 한 장면 ⓒ NEW

약자들이 뭉치는 이야기

영화는 고단한 취업준비생인 미현, 형제를 돕는 사회복지사(박철민) 등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이지만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 나간다. 이때 미현의 캐릭터를 형제와 애정 관계로 엮지 않았다는 것도 새삼 반가운 지점이다. 형제는 자신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새 친구 미현의 등장을 반가워하지만 그 속내는 조금 다르다. ‘형의 휠체어를 나 대신 밀어줄 수 있는 존재의 등장’을 조금씩 신경 쓰는 동구의 표정이 대표적인 예다. 

장애인들 간의 자립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도 이전의 비슷한 소재 영화들로부터 한발 나아갔다는 인상을 준다. 이 영화에서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거나 비장애인의 도움을 얻어야 하는 핸디캡이 아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조금 불편한 방식이더라도, 자신들의 최선을 찾아 잘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특정 규격의 삶을 제시하는 것은 옳은 해답인가. 영화는 과거 동구를 버렸지만 지금이라도 함께 살기를 원하는 동구의 친어머니 등장을 통해 갈등을 제시한다. 장애인들의 자립을 행복하지 않은 삶 혹은 비정상적 삶이라 규정하는 시선들을 꼬집고, 행복의 조건을 묻는 것이다. 장애인이 가족의 짐이 되거나 시설에 격리되는 것이 아닌,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공존하며 자립할 수 있는 길에 대해 영화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중 상업영화를 지향하기에 인권과 제도적 차원의 문제에 더욱 깊숙이 접근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다만 이 영화는 장애인의 존재와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적어도 그들을 타자화하지는 않는다. 제도를 바꾸는 것은 영화의 몫이 아니다. 다만 《나의 특별한 형제》는 상업영화로서의 재미와 시사점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갖추고 있고, 모두가 ‘함께 산다’는 것의 행복한 감각을 제시하고 있다. 

장애를 바라보는 한국영화의 또 다른 시각

그간 한국영화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분리하는 것이 아닌,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 당연히 인정하고 공존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 작품들이 있었다. 달리기에 특출한 재능을 지닌 초원(조승우)의 이야기를 그린 《말아톤》(2005)의 경우 특정 대사들이 두드러지게 유명해지긴 했지만, 모두가 행복한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손꼽히는 영화다.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2018)은 발달장애인 동생 혜정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적응해 가는 언니 혜영이 직접 그들의 삶을 비추는 작품이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두 자매의 모습은 우리가 앞으로 더 자주,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할 것들에 대해 좋은 물꼬를 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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