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와 만난 뒤 빗속에 사라진 여성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6 14:00
  • 호수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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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락인의 사건추적] 김해-부산 부녀자 연쇄실종 사건

지난 2006년 6월10일 토요일, 경남 김해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면서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쳤다. 이날 오후 보험설계사 김미자씨(47)는 부푼 마음으로 삼계동 집을 나섰다. 그의 손에는 현금 4000만원이 들려 있었다. 김씨는 오후 6시59분 김해시 생림면 농협에 들러 200만원을 추가로 인출했다. 현금인출기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는 김씨가 돈을 찾는 모습이 촬영됐다. 오후 7시3분 김씨의 승용차(아반떼)는 삼랑진 철교를 건너 어디론가 향했다. 그리고 김씨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연락두절 상태였다. 휴대전화 전원도 꺼져 있었다. 

남편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 아내가 ‘집을 나간 것이 아닌가’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대학 입시를 앞둔 고3 아들을 끔찍하게 생각했던 아내가 아무런 연락 없이 집을 나갔을 리가 만무했다. 남편은 아내 지인들에게 수소문하다 한 친구에게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다. 김씨는 친구에게 “덤프차 임대업을 하면 한 달에 250만원 정도 받을 수 있다”며 덤프차를 사려는 계획을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돈이 좀 모자란다며 500만원을 빌려 달라고 해서 입금해 줬다는 것이다.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거액 현금 갖고 사라진 보험설계사

덤프차 임대업을 김씨에게 제안한 사람은 덤프트럭 운전기사인 홍아무개씨(44)였다. 그는 김씨의 보험 고객이자 10년 넘게 친구로 지낸 남자였다. 김씨의 남편과도 친분이 있었다. 남편은 홍씨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집사람을 못 봤느냐”고 물었더니 “최근에 만난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다고 직감한 남편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실종 이틀 후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은 홍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그는 “김씨를 만나기로 했었으나 약속 당일 연락이 안 돼 못 만났다”고 말했다. 경찰은 홍씨에게서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하자 집으로 돌려보냈다. 

실종 4일째인 6월14일 상황이 급반전된다. 김씨가 타고 나갔던 승용차가 밀양시 삼랑진읍 송지리 농로에서 발견된 것이다. 승용차는 김씨 신상에 위험이 닥쳤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2011년 9월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따르면 당시 승용차의 앞뒤 번호판이 모두 떼어졌고, 누군가 장갑을 끼고 차 안을 훼손한 흔적이 있었다. 차량 안에 있던 김씨의 물건도 사라졌다. 차량 주인이 김씨인 것을 알지 못하도록 지능적으로 증거를 인멸한 것이다. 특히 차량 조수석 시트에서는 핏자국이 나왔다. 

경찰은 김씨가 단순실종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김씨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삼랑진 철교에 설치돼 있던 CCTV를 분석했다. 그런데 김씨의 차 안에는 또 한 명의 동승자가 있었다. 바로 홍씨였다. 실종 당일 김씨를 만나지 못했다는 진술은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김씨가 은행에서 돈을 찾을 때도 홍씨가 김씨의 승용차에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김씨가 승용차를 운전해 삼랑진 철교를 건널 때는 분명 두 명이었다. 하지만 5시간 후인 6월11일 오전 0시18분 승용차가 다시 삼랑진 철교를 통해 들어올 때 김씨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홍씨 혼자였다. 김씨의 승용차가 발견되고 경찰 수사망이 좁혀지자 홍씨는 돌연 잠적한다. 

경찰은 그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검거에 나섰다. 경남 지역의 낚시터, 찜질방, 여인숙 등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홍씨의 행적은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공개수배를 통해 홍씨의 소재를 추적했다. 그 사이 경찰은 홍씨의 혐의를 입증할 추가 단서를 확보해 놓고 있었다. 김씨가 실종된 날의 행적을 낱낱이 확인했다. 또 홍씨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해 피 묻은 옷을 발견했다. 세탁을 한 번 하기는 했으나 바지에서 혈흔반응이 나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김씨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사람의 혈흔인 것은 분명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홍씨가 김씨의 승용차를 혼자 운전하고 돌아오기 전 김씨의 휴대전화 배터리가 강제로 분리된 것도 확인했다. 김씨의 승용차 운전대를 잡은 홍씨는 차를 김씨를 만났던 장소에 세운 후 집으로 돌아갔다. 실종 다음 날은 일요일인데도 홍씨는 어디엔가 일감을 부탁해 덤프트럭을 운행했다. 

홍씨는 일을 마친 오후 7시30분쯤 김씨의 차량을 세워둔 곳으로 가서 22km를 운전해 밀양의 한적한 농로로 이동했다. 그는 준비해 온 도구로 승용차의 앞뒤 번호판을 제거한다. 그리고 차 안에 있던 김씨의 보험 관련 서류와 물건들을 불태운 후 택시를 타고 자신의 차를 세워둔 곳으로 이동했다. 택시기사에게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탔다”고 말했지만 그에게서는 술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김씨 실종 후 홍씨는 거액의 현금을 지니고 있었다. 김씨가 실종된 지 4일 후 그는 여동생에게 비닐봉지를 건넸는데 그 안에는 현금 2400만원이 들어 있었다. 여동생은 이 돈을 은행에 맡겼는데 출납 직원은 “돈다발이 젖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사건 발생 6개월째 되던 2006년 12월 울산 울주에서 홍씨를 봤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경찰은 그가 홍씨인 것을 확인했다. 홍씨는 모자와 안경을 쓰는 등 변장한 채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숨어 있었다. 그는 또 가명을 사용하고 대포폰을 썼으며, 다른 사람 명의의 차량을 이용했다.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위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홍씨가 검거되면서 사건은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찰의 기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홍씨는 그때그때 말을 바꾸면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김씨를 만나지 못했다는 거짓이 드러나자 태도가 뒤바뀐다. 그날 김씨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김씨가 갑자기 차키를 꽂아둔 채 어디론가 사라진 후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만일 김씨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자신이 의심받을 것이 두려워 번호판을 떼고 차량을 훼손한 후 차를 버렸다는 것이 홍씨의 주장이었다. 

경찰은 피 묻은 옷에 대해서도 추궁했다. 홍씨는 이전에는 없었던 괴한들을 등장시킨다. 김씨와 만나고 있는데 괴한 3명이 습격해 자신을 폭행하고 김씨를 납치해 갔다고 했다. 이때 흘린 피가 옷에 묻었다는 것이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차에 멍하니 4시간30분 정도 앉아 있다가 혼자 차를 끌고 왔고,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말도 안 되는 진술”이라면서 홍씨를 상대로 여러 차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벌였다. 그때마다 ‘거짓’ 반응이 나왔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추가 실종 4명 더 드러나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새롭게 드러난다. 홍씨와 만난 뒤 사라진 것은 김미자씨만이 아니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실종 여성이 4명이나 더 있었다. 거주지는 김해 4명, 부산 1명이었다. 

2002년 3월13일 김해 생림면에 살던 김남환씨(46)는 어머니에게 “식당에 일하러 간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당시 김씨 수중에는 남편과 이혼하면서 받은 위자료와 아들이 어깨를 다쳐서 받은 보험금 등을 합쳐 4000만원의 현금이 있었다. 김씨는 이 돈을 들고 나간 후 실종됐다. 김씨는 낙동강 모래 채취현장에서 일하면서 홍씨를 알게 됐고, 이후 덤프차 사업을 한다는 말을 하고 다녔었다. 

2년 후인 2004년 6월6일, 이번에는 김해 삼방동에 살던 김영순씨(43)가 아파트 담보금과 보험금 등 4850만원을 갖고 집을 나간 후 행방불명됐다. 김씨 또한 덤프차 사업에 투자한다며 현금을 갖고 나간 뒤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7개월 후인 2005년 1월20일 부산 금정구에서는 덤프트럭 사업에 5000만원을 투자한 조금선씨(46)가 동업자를 만나러 나간 뒤 사라졌다. 조씨의 사업 파트너가 홍씨였다. 같은 해 9월30일에는 김해에 거주하던 최점옥씨(41)가 약 3800만원을 소지하고 집을 나섰다가 사라졌다. 

최씨가 타고 나갔던 승용차는 실종 10개월 만인 2006년 7월 경남 김해 진영읍의 한 초등학교 부근에서 발견됐다. 최씨는 김미자씨의 보험 고객이었다가 그의 소개로 같은 보험사에 취직해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었다. 김씨를 통해 홍씨를 알게 됐고, 실종 전에는 덤프트럭 사업을 구상 중이었다. 최씨 어머니는 김미자씨의 실종 사건이 공개수사로 전환되면서 언론에 보도되자 “내 딸 실종과 너무 비슷하다”며 경찰에 제보했다. 

그러나 경찰 수사는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경찰은 실종자들이 살해됐을 것으로 보고 시신을 찾는 데 총력을 기울였으나 단 한 구도 찾지 못했다. 또 홍씨가 실종자들을 죽였다고 단정할 수 없어 살인 혐의를 적용하지 못했다. 결국 김미자씨 차량의 번호판을 훼손하고 유기한 ‘재물은닉 및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만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홍씨는 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으나 2009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모두가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이번 사건은 심증은 확실한데 물증이 없어 미제로 남았다. 다섯 명의 실종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실종 당시 거액의 현금을 갖고 있었으며 덤프트럭 사업을 구상 중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업 파트너는 홍씨였다. 모두 한 사람과 연결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실종됐을 당시 최점옥씨 때만 빼고는 모두 비가 내렸다는 점이다. 최씨가 실종된 날도 비가 온다고 했던 기상청 예보가 빗나가고 날씨가 잔뜩 흐렸다. ‘우연의 일치’라기보다는 범인이 비오는 날을 선택해 범행에 나섰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사건은 치밀하게 계획됐다고 봐야 한다. 김미자씨를 제외한 4명의 실종자 가족들은 실종 이후 모두 한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들은 공중전화를 이용해 실종자들이 스스로 집을 나갔고, 살아 있는 것처럼 얘기했다. 그러다 보니 실종보다는 가출로 여겨져 수사에 혼선을 줬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상 실종자들이 살아 있을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들에게서 생활반응(금융거래, 통신 이용, 인터넷 접속, 병원 이용)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연쇄실종’이지 사실상 ‘연쇄살인’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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