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재개발 옥죄기 집값 폭등 불씨 되는가
  • 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gil@sisajournal-e.com)
  • 승인 2019.05.07 13:00
  • 호수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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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사업 위축으로 공급 부족 불가피…“희소성 커진 새 집 가격 상승폭 클 것”

헌 집을 허물고 새 집을 공급하는 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 등)이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정부가 규제 수위를 갈수록 높이고 있어서다. 특히 신규 택지 공급이 어려워 정비사업 중심으로 주택이 공급되는 서울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조합들은 수익성 저하를 우려해 사업을 잠정 중단하거나 연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규제로 정비사업이 위축되면 수급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결국 집값 상승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부는 재건축 사업이 주택시장의 과열과 투기를 조장한다고 보고 수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통해 사업 전 단계에서 규제 장벽을 설정해 놓은 상태다. 2017년 8·2 부동산 대책을 통해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재당첨 제한 등으로 재건축 사업 규제를 본격화했다. 지난해 1월에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가 시행됐다. 재초환은 조합이 얻은 이익이 1인당 평균 3000만원을 넘으면 초과금액의 10~50%를 환수하는 조치다. 세금 부담을 높여 투기수요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대한 정부 규제가 오히려 집값 폭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개포주공 4단지 재건축 공사현장 ⓒ 연합뉴스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대한 정부 규제가 오히려 집값 폭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개포주공 4단지 재건축 공사현장 ⓒ 연합뉴스

재건축 겹규제, 사업 중단 사업장 속출

이어 3월 시행된 ‘안전진단 기준 강화’도 많은 사업장의 발목을 잡았다. 실제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아파트는 재건축 첫 단계인 안전진단 준비 단계에서 발목이 잡혔다. 모든 단지가 일찍이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했지만 강화된 안전진단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어서다. 

일부 재건축 단지는 사업이 중단되거나 지연될 위기에 처해 있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대표단지인 압구정3구역은 일부 주민들이 재건축 사업의 잠정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각종 규제로 사업 추진이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강남구 대치동 ‘대치쌍용2차’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금이 억대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동력을 잃었다. 4월27일로 예정됐던 정기총회도 연기했다.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했던 재개발 사업도 정부의 타깃이 된 모습이다. 국토교통부는 4월23일 발표한 ‘주거종합계획’에서 서울과 인천·경기 등 수도권 일대 재개발 사업의 ‘임대 의무비율’(임대주택을 짓는 비율)을 기존보다 5%포인트 올리기로 했다. 각 지자체는 최대 10%포인트까지 올릴 수 있다. 현재 10~15%의 임대주택 의무비율이 적용되는 서울의 경우 최대 30%까지 늘어난다. 사업시행인가를 받기 전인 상당수의 재개발구역이 이 규정을 적용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소식에 재개발 사업장과 건설업계는 술렁이는 모습이다. 조합 입장에서는 임대주택 의무비율이 증가하면 일반분양분이 줄어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의 한 재개발 사업장 조합원은 “수익성이 저하되는 만큼 부담금이 늘어나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더 큰 문제는 사업 진행에 대한 전략을 다시 짜야 해 사업기간이 길어진다는 점이다”고 토로했다.

건설사들도 임대 의무비율을 높여 주택공급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재개발 사업장 규모가 축소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장기적으로는 공급물량 부족에 시달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공급물량이 적은 서울이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재 재초환과 안전진단 강화 때문에 재건축 시장이 위축된 상황인데, 재개발 사업장까지 쪼그라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비구역 일몰제’도 정비사업장에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정비구역 일몰제는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20조(정비구역 등의 해제)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사업에 진척이 없는 정비구역에 대해 시·도지사가 직권으로 구역을 해제하는 제도다. 정비구역 지정 후 2년 이내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하거나 추진위원회 승인 이후 2년 이내 조합설립 인가 신청이 이뤄지지 못하면 적용한다. 서울은 재건축 23곳, 재개발 15곳 등 총 38곳이 일몰제 대상 지역에 해당한다. 업계는 정부의 규제가 계속되고 서울시가 집값 안정화와 투기수요 차단을 위해 인허가 절차를 늦추고 있기 때문에 구역이 해제되는 현장들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공급 제한, 오히려 주택수급 불균형 초래

전문가들은 신규 택지 공급이 어려운 서울에서 정비사업을 막으면 중장기적으로 공급물량 부족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서울 주택공급의 핵심 축인 정비 부분을 옥죄면 결국 도심지역의 공급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주택수급 불균형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서울은 주택 노후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지난해 4월 발표한 ‘서울시 주택 노후도 현황분석 및 시사점’에 따르면, 2017년 1월 기준 서울에서 준공 30년이 넘은 노후주택은 전체(44만9064동)의 37.2%에 해당하는 16만7019동이다. 이 중 주로 재개발 지역에 분포하는 단독주택의 경우 노후주택 비중이 47.4%에 육박한다. 권영선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저층주거지 전반에 걸쳐 주택 노후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나, 정비정책은 일부 지역에 편중된 상황”이라며 “주거시설의 정비가 시급한 지역에 대해서는 빠르게 정비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주택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공급이 막히면서 2~3년 후에는 ‘새 집’을 중심으로 집값이 폭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지난해 서울의 연간 주택 인허가 물량은 6만5751호로 전년(11만3131호) 대비 41.9% 줄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새로운 집에 대한 수요는 많은데 주택이 따라가지 못하니 쏠림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며 “특히 희소성이 높아진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뛸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어 “정부가 규제를 지속하기보다는 일부 규제 완화를 통해 수요를 분산시키는 전략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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