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초고령 사회의 어려운 숙제 ‘고령 운전자’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7 17:00
  • 호수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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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노인이 일으킨 교통사고에 일본 열도 발칵
면허 갱신 강화 및 보완대책 요구하는 목소리 커져

4월19일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 도쿄 이케부쿠로의 횡단보도로 자동차가 돌진했다. 적신호를 무시하고 법정 속도보다 시속 50km나 빠르게 달리던 자동차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모녀를 덮쳤다. 31세 엄마와 이제 겨우 3살 된 딸이 목숨을 잃고 운전자와 동승자를 포함해 10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차량의 운전자는 일본 경제산업성 공업기술원장을 지낸 이즈카 고조로 현재 87세다. 

이 사고는 일본 내 고령자 운전에 대한 관심을 더욱 고조시켰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부터 급속히 고령화가 진행돼 2007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1%를 넘어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이 때문에 고령자 운전은 일본 사회 내 큰 골칫거리가 됐다. 일본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은 28.1%며 운전면허 소지자 중 22.6%가 65세 이상이다. 일본 경찰청의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교통사망사고는 3449건으로 그 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일으킨 사고가 960건(27.8%)이었다. 같은 기간 20대(403건·11.7%)나 30대(389건·11.3%)가 일으킨 사고보다 월등히 많았다. 또한 10만 명당 85세 이상 고령자의 운전 사망사고 건수는 16.27건으로 다른 연령층(16~24세의 경우 5.65건)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았다.

4월19일 도쿄 아케부쿠로에서 87세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로 모녀가 목숨을 잃었다. ⓒ EPA 연합

고령자 운전면허 조건 강화에도 역부족 

일본 정부도 고령자 운전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있기는 하다. 2009년부터 일본에서는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운전면허를 갱신할 때 의무적으로 고령자 강습과 인지기능검사를 받아야 한다. 인지기능검사는 운전자의 기억력과 판단력을 판정하는 30분가량의 필기시험이다. 기억력·판단력이 낮음(치매 가능성 있음), 조금 낮음(인지기능 저하 가능성 있음), 문제 없음(인지기능 저하 가능성 없음) 등 세 가지 판정을 받게 된다. 어떤 판정을 받더라도 면허 갱신은 가능하다. 다만 치매 가능성이 있다고 판정받고 과거 일정 기간 내에 신호 무시 등 위반행위가 있었을 경우 임시 적성검사를 전문의로부터 받아야 한다. 진단 결과 치매로 진단받은 경우 운전면허 취소나 정치 처분을 받도록 했다. 그러나 여전히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고는 줄지 않았고, 2017년 개정된 도로교통법에서 인지검사와 고령자 강습을 한층 강화했다. 

2017년 개정된 도로교통법에는 ‘임시 인지기능검사’와 ‘임시 고령자 강습’이 추가됐다. 75세 이상 운전자의 인지기능 저하로 인해 발생하기 쉬운 신호 무시, 통행금지 위반, 진로변경금지 위반 등 ‘18개 기준행위’를 위반했을 경우 강제적으로 받게 되는 검사가 ‘임시 인지기능검사’다. 이 검사에 의해 인지기능 저하가 운전에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되었을 경우 개별지도·주행지도 등을 받게 되는데 이를 ‘임시 고령자 강습’이라고 한다. 검사와 강습을 받지 않으면 면허 취소나 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기존의 면허 갱신 때 이루어진 인지기능검사에서도 판정 결과에 따라 좀 더 세분화된 강습을 받아야 한다. 치매 가능성이 있다고 판정받은 경우 임시 적성검사를 받거나 전문의의 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면허가 취소된다. 

그러나 여전히 고령 운전자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72세 이상 운전자가 면허를 갱신하면 3년간 연장이 가능하다. 이번 사고를 일으킨 이즈카의 경우에도 2017년 면허를 갱신했다. 당시 인지기능검사에서는 인지기능 저하 가능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위반 행위가 없다면 아무리 고령이라고 해도 갱신 후 3년 동안 자유롭게 운전할 수 있다. 일본 경찰청도 제도적 한계를 인식해 대책을 구상 중이다. 그중 하나가 고령자가 면허 갱신을 할 때 주행시험을 시행하는 것이다. 현재 면허를 한 번 취득하면 주행시험 없이 갱신이 가능하지만 자동차의 최신 기능에 대한 이해도와 운동 능력, 조작 기술 등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남성은 영결식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 남성은 “필사적으로 살아온 젊은 여성과 겨우 3년밖에 살지 못했던 생명이 있었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느껴주길 바란다”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사람들 앞에 나서 아내와 딸의 생전 사진을 공개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불안 자각 후의 운전, 음주운전, 난폭운전,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등 위험운전을 하고자 할 때, 두 사람을 떠올리고 운전을 멈추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여러 논의가 이뤄지고 조금이라도 교통사고에 의한 희생자가 없는 미래가 되었으면 한다”고 약 40분의 기자회견 동안 호소했다. 

도쿄에서 발생한 87세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망사고 현장에 마련된 추모시설
도쿄에서 발생한 87세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망사고 현장에 마련된 추모시설

자발적 반납·제도적 보완 동시에 이뤄져야

이 남성의 호소처럼 불안을 느낀다면 고령 운전자 스스로 운전대를 놓는 것이 사고 감소를 위한 가장 좋은 대책이다. 일본에서는 ‘운전면허 자주반납’ 제도를 1998년부터 시행해 왔다. 이 제도는 고령 운전자가 자발적으로 운전면허 취소를 신청하는 제도로 매년 스스로 면허를 반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2009년에 5만1086건이었던 자주반납 건수는 2018년 42만1190건까지 증가했다. 도쿄에 거주하는 영양사 A씨의 아버지도 운전면허를 반납했다. 올해 76세인 A씨의 아버지는 약 10년 전 운전대를 놓았다. 비 오는 날 A씨를 회사까지 차로 데려다주려 아침 일찍 집을 나섰지만 젖은 도로 때문인지 적신호에도 차를 멈출 수 없었다. A씨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며 스스로 그만뒀다. 이후로도 비 오는 날이면 차로 회사까지 데리러 와 달라고 농담처럼 말하고 거절당하기를 반복했던 A씨는 이번 사건을 보며 아버지의 판단이 옳았다고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면허를 스스로 반납하면 우선 ‘운전경력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운전면허증을 신분서로 사용하고 있는데 면허 반납 후에는 이 증명서를 신분증으로 사용할 수 있다. 지자체에 따라 택시를 포함한 대중교통 이용요금을 할인받을 수 있으며 민간기업에서도 식사권·할인쿠폰·무료배송 등 운전경력증명서 소지자에게 여러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교통망이 잘 정비되어 있지 않은 교외 거주자 등 자발적인 반납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따라서 운전 가능한 시간, 지역을 한정하거나 안전장치가 장착된 자동차에 한해 면허를 발급하는 ‘한정 조건부 면허’를 검토 중이다. 독일과 스위스 등지에서 도입된 제도다. 면허 반납이 아니면 유지라는 양자택일 속에서 스스로 반납을 결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충분히 논의할 필요와 가치가 있는 제도란 지적이다. 일본에서는 2017년 10월부터 이 제도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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