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과 청와대 향한 여당 의원들의 불안감
  • 차윤주 정치전문 프리랜서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0 13:48
  • 호수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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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패스트트랙 승자? 오만함이 총선 망칠 것”…與 의원들의 위기, 이인영 선택으로 귀결

이변이 벌어졌다. 5월8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인영 의원이 집권여당의 2인자, 원내사령탑 자리를 꿰찼다. ‘친문 실세’ 김태년 의원은 고배를 마셨다. 문재인 정부가 만 2년 임기를 채운 날, 여당 의원들은 변화를 택했다. 차기 총선을 이해찬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치러야 한다는 ‘친문 단일대오론’은 통하지 않았다. ‘비주류’ 혹은 ‘범문’으로 분류되는 이 원내대표의 지도부 진출로 당내 계파 분화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아울러 86그룹의 상징적 존재니만큼 ‘50대 기수론’을 중심으로 한 여권 내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질 전망이다. 총선을 11개월 앞두고 어쩌면 예고된 이변이다.

5월8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4기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신임 원내대표에 선출된 이인영 후보(왼쪽)가 이해찬 대표와 손을 맞잡아 들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5월8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4기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신임 원내대표에 선출된 이인영 후보(왼쪽)가 이해찬 대표와 손을 맞잡아 들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그 나물에 그 밥’ 겨냥한 경고

이인영 신임 원내대표는 ‘김근태계’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좌장, 86그룹(1980년대 학번·1960년대 출생) 맏형으로 86그룹과 개혁적 초·재선 의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뒤늦게 선거전에 뛰어들 때만 해도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를 다듬은 국정기획자문위 부위원장, 친문 핵심 정책통 김태년 의원을 이길 것으로 보는 이들은 드물었다. 그것도 접전이 아닌 무려 27표 차의 완승이었다.  

판세를 엎은 것은 민주당 현역 의원들이 변화와 혁신, 견제와 균형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의 화두는 분명했다. 1년 앞으로 다가온 21대 총선이었다. 초반 ‘김태년 대세론’은 이해찬 당 대표를 중심으로 뭉쳐야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단일대오론이 힘을 얻으면서 퍼졌다. 총선 승리를 위해 대표와의 호흡이 중요하고, 당·정·청 관계가 원만하려면 핵심 친문으로 지도부 진용을 짜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싸늘한 PK 지역 민심을 확인한 4·3 재보선, 지도부가 청와대와 교감 속에 추진한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하나둘씩 동요하기 시작했다.

의원들의 계산 공식은 단순 명료하다. 1차는 본인의 공천에 유리한 후보, 2차는 총선 본선에서 한 표라도 더 도움이 될 당의 얼굴에 대한 평가가 들어간다.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 대표는 어느 때보다 큰 폭의 공천 물갈이를 예고해 왔다. 최측근 김 의원이 지난 연말 정책위의장직을 내놓고 원내대표 선거에 올인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것도 강력한 리더십을 예고하는 포석이었다. 다음 총선은 내 식대로 치르겠다는 신호를 여러 차례 보낸 것이다.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 3년 차,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자신을 친문으로 규정하지만 개별 속내는 복잡하다. 특히 공천권자와 거리를 잴 때는 더 그렇다. 이번 경선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결국 이 대표를 겨눴다고 봐야 하는 이유다.

이해찬 체제 자체에 대한 위기감도 높다. 이 대표는 4·3 재보선 이후 뾰족한 민심 수습 방안을 내놓지 않았고, 오히려 “내년 총선은 240석 목표”라는 엉뚱한 이야기로 당을 곤혹스럽게 했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아마도 지도부는 이번 패스트트랙 정국의 승자가 우리 민주당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가면 또 오만해진다. 오만함의 결과는 총선 패배로 이어질 것이고, 그땐 이미 되돌리기 어렵다. 집권여당이 언제까지 제1야당의 자충수만 기대하고 있을 텐가”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현역 의원들 위기의식이 생각보다 크다. 실제로 지역에 가면 별소리를 다 듣는다. 경선 후반부로 갈수록 ‘그 나물에 그 밥(이해찬-김태년)으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고 전했다. 


달라질 당·청 관계…세대교체 분위기 가속화

흥미로운 것은 이른바 ‘부엉이 모임’ 핵심 친문들이 처음부터 이인영 원내대표를 밀었다는 점이다. 민평련과 개혁 성향 초·재선 의원들이 앞에서 끌었다면 홍영표 전 원내대표를 비롯해 김진표·전해철 의원 등 친문 고문급 중진들이 뒤를 받쳤다. 당내에선 친문그룹 절반 이상이 이 원내대표에게 표를 줬다고 분석한다. 총선을 앞둔 여권 내 세력 분화가 점쳐지는 대목이다.

청와대는 앞으로 달라질 당·청 관계를 대비할 수밖에 없게 됐다. 총선체제로 태세 전환을 앞두고 올해 초부터 청와대와 정부 인사들이 대거 당내로 들어왔다. 임기 후반까지 당 장악력을 놓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분명히 보낸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선 결과로 청와대 인사들에게 당이 호락호락 자리를 내주지 않겠다는 대항력이 확인됐다. 이 원내대표가 친문 핵심에게 박빙이 아닌 압승으로 이겼다. ‘비문’ 노웅래 의원이 1차 투표에서 받은 표도 34표나 된다. 당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청와대의 고민은 더 커질 것이다. 한때 ‘상왕’이라 불린 이해찬과 영원한 운동권 기수 이인영, ‘강대강’ 투톱이 주는 긴장감은 언제라도 불협화음을 예고하고 있다. 둘 간의 대립은 자연스럽게 1970년대 민청학련 세대에서 1980년대 전대협 세대로의 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당장 시끄러운 소리가 나진 않을 것이다. 이 원내대표는 “이해찬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잘 운영될 수 있게 떠받치는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당선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이 말은 당 안팎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한 당직자는 “이 원내대표를 선택한 것도 총선을 향한 위기의식 때문이다. 선거전 초반을 지배했던 김태년 대세론과 후반을 집어삼킨 이인영 대망론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어쨌든 당은 뭉쳐서 총선을 치를 것”이라고 했다. 이 원내대표는 선거 기간에 달라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까칠함을 버리고 부드러움을 전면에 내세웠고, 동료 의원들과의 스킨십에 적극적이었다. 수차례 당권 도전에서 물을 먹은 뒤, 원내대표로 체급을 낮춘 승부수가 통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이인영이 잘했다고 준 자리가 아니다” “이인영에 대한 호감 투표는 아니다”는 게 냉정한 평가다. 

‘낡은 운동권’이란 시선은 아직 거둬지지 않았다. “이인영·86은 지금껏 보여준 게 하나도 없다”는 냉소도 여전하다. 문제는 지금으로선 86그룹 외에 민주당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50대를 건너뛰고 바로 40대로 눈길을 돌릴 만큼 당내 청년 기반이 탄탄하지도 않다. 여권 내 전략가로 통하는 한 관계자는 “86은 민주당의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미래다. 그렇다고 해서 다음 시대정신이 반드시 ‘86’인가에 대해선 반드시 한번 논의의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희정 전 지사와 김경수 지사 사태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여권의 차세대 주자군에서 이 원내대표가 다시 하나의 점을 찍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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