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본색’ 이강인, U-20 월드컵은 또 하나의 기회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2 15:00
  • 호수 15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속팀 발렌시아 난색 불구
대회 참가 의지 강해
활약도에 따라 더 높은 도약 가능

과거 ‘세계청소년선수권’으로 불렸던 FIFA(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 월드컵(U-20 월드컵)은 전 세계 축구 유망주들의 경연장이다. 2회 대회인 1979년 MVP를 수상하며 신동의 등장을 알린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를 시작으로 루이스 피구(포르투갈), 티에리 앙리(프랑스),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세르히오 아구에로(아르헨티나), 제라르 피케(스페인), 폴 포그바(프랑스) 등이 U-20 월드컵을 통해 세계의 눈을 사로잡았다. 

한국 축구에도 U-20 월드컵은 기회의 무대였다. 멕시코에서 열린 1983년 대회에서 박종환 감독은 일명 벌떼 축구와 마스크 훈련으로 산소가 부족한 고지대의 변수를 극복하며 4강 신화를 연출했다. 최순호(1981년)·김종부(1983년)·이동국(1999년)·박주영(2005년)·구자철(2009년)·권창훈(2013년) 등의 스타가 이 대회를 통해 탄생했다. U-20 월드컵을 통해 급부상한 젊은 에이스는 자연스럽게 성인 대표팀에 등용돼 새바람을 일으켰다. 2년 전 한국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선 이승우·백승호가 본격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이승우는 그 기세로 러시아월드컵까지 향하며 선배들의 계보를 이었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남자 대표팀 이강인이 경기도 파주 축구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열린 국내 소집훈련에 참가해 드리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남자 대표팀 이강인이 경기도 파주 축구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열린 국내 소집훈련에 참가해 드리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여곡절 끝에 폴란드로 향하는 이강인

한국 시간으로 오는 24일 폴란드에서 개막하는 제22회 U-20 월드컵에서 기대를 모으는 선수는 단연 이강인이다. 만 18세인 이강인은 지난 1월 스페인의 명문인 발렌시아와 성인 계약을 체결했다. 이미 성인 무대에서 활약 중인 그는 다국적 축구 전문매체인 ‘골닷컴’이 선정한 세계 축구 유망주 순위에서 28위를 기록했다. 2001년생으로 이번 U-20 월드컵에 나서는 선수들보다 2살이 어리지만 실력으로 월반했다. 지난 3월엔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성인 대표팀에도 선발됐다.

이강인의 대회 참가 과정은 험난했다. U-20 월드컵은 FIFA 주관 대회지만 월드컵이나 대륙별 선수권과 달리 의무 차출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최근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특급 유망주들이 U-20 월드컵 참가에 다소 소극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발렌시아도 당연히 이강인의 차출에 난색을 표시했다. 이미 성인 대표팀에도 발탁된 선수를 다시 연령별 대표팀에서 뽑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U-20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정정용 감독이 삼고초려에 나섰다. 4월초 발렌시아 구단을 방문해 여러 차례 미팅을 가지며 이강인의 차출을 호소했다. 선수 본인의 참가 의지도 강력하자 발렌시아는 조건부 차출을 허락했다. 이강인의 포지션에서 부상자가 발생할 경우 다시 팀으로 부를 것이라는 조건이었다. 

이강인은 U-20 대표팀이 소집되고 하루 뒤인 4월23일 합류했다. 공교롭게 발렌시아는 하루 전 미드필더인 데니스 체리셰프가 부상을 당해 이강인이 합류하자마자 팀에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강인은 대표팀 합류 후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부터는 U-20 월드컵에만 집중하겠다”며 복귀 가능성을 일축했다. 발렌시아는 이강인의 복귀를 요구하지 않았고, 이강인은 조기 소집 훈련을 마친 뒤 5월5일 U-20 대표팀과 함께 폴란드로 출국했다. 

U-20 월드컵을 향한 이강인의 의지가 각별한 데는 최근 소원해진 소속팀과의 관계가 숨은 배경으로 작용한다. 발렌시아의 마르셀리노 감독은 성인 계약을 맺은 뒤부터 오히려 이강인의 기용 빈도를 줄였다. 성장 과정에서 안정된 경기 출전이 필수인 이강인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결국 이강인과 에이전트는 다음 시즌에 대비해 타 팀으로의 임대를 추진하며 활로를 찾고 있다. 다음 시즌 스페인 1부 리그로 승격하는 팀들을 포함해 3~4개 팀들이 이강인을 임대 영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발렌시아도 임대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U-20 월드컵 활약에 따라 선택지는 더 증가할 수 있다. 이강인의 활용에 대한 발렌시아 구단과 마르셀리노 감독의 판단이 바뀔 수 있고, 다른 팀들이 더 적극적인 구애를 보낼 가능성도 존재한다. 향후 유럽에서의 생존 경쟁과 성장을 위해서도 이번 대회는 이강인에게 중요한 도약대다. 

정정용 감독과 U-20 대표팀의 도전에는 난관이 많다. 조별리그부터 험난하다. 포르투갈·아르헨티나·남아공과 함께 F조에 속했다. 아르헨티나는 대회 최다인 6회 우승을 달성한 U-20 월드컵의 최강자다. 2회 우승의 포르투갈은 유럽 예선을 우승으로 통과했다. 남아공은 두 팀에 비해 전력이 떨어지지만, 연령별 대회에서 아프리카 팀은 항상 다크호스로 꼽힌다. 이번 대회 ‘죽음의 조’다.

하지만 이강인을 비롯한 선수들의 자신감도 상당하다. 재능 넘치는 선수들이 모처럼 쏟아진 세대라는 평가가 많다. 이강인과 함께 유럽파의 양대 미래인 정우영(바이에른 뮌헨), 성인 대표팀에 꾸준히 발탁된 김정민(FC리퍼링), K리그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엄원상(광주FC)·전세진(수원 삼성)·조영욱(FC서울)·오세훈(아산무궁화) 등이 세계 무대에 선다. 한국-독일 혼혈인 골키퍼 최민수(함부르크, 독일명 케빈 하르)도 눈에 띈다. 21명의 선수 중 프로가 아닌 대학 선수는 정호진(고려대)·최준(연세대) 2명뿐이다. 불과 2년 전 대회만 해도 21명 중 11명이 대학 선수였다. 


‘죽음의 조’ 임에도 “목표는 우승!” 자신감

유스 시스템에 대한 K리그의 투자가 본격적인 결실을 본 덕분이다. 유럽파인 정우영과 김정민도 각각 인천 유나이티드와 광주FC 유스 출신이다. 만 18·19세에 프로에 진출하는 선수가 늘어나며 어린 선수들의 경쟁력도 한층 올라갔다. 정정용 감독은 “공격력에 대해서는 어느 팀과 맞붙어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이강인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세우고 전방에 다양한 공격 조합을 둘 수 있는 3-4-1-2 포메이션에 4-3-3 포메이션을 혼용한다는 것이 정정용 감독의 계획이다. 

유일한 우려는 수비다. 조별리그부터 맞붙는 상대가 공격적인 색채의 팀들이다. 맞불을 놓을 경우 수비에서 버텨줘야 한다. 국내에서 진행한 열흘간의 훈련 동안 가장 강조한 것도 조직적인 수비와 간격 유지, 전환 속도였다. FC서울, 수원 삼성과 가진 연습경기에서 그런 전술을 수행하며 승리를 거뒀다. 최근 참가한 네 번의 대회 모두 조별리그를 통과했고 16강 2회, 8강 2회를 달성한 한국은 이번 대회 목표를 4강에 맞추고 있다. 그러나 팀에서 두 번째로 어린 이강인은 “어떤 대회에 나선다면 우승을 목표로 하는 것이 맞다. 형들과 함께 성과를 낼 자신감이 있다. 폴란드에서 최대한 오래 있겠다”며 더 높은 곳을 바라봤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