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이용섭 광주시장, 왠 뜬금없는 사미인곡?
  • 정성환 호남취재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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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시장,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 ‘깜짝 서신’
두 개의 시선 “순수 감사표시” vs “연군지사 타령”

이용섭 광주시장이 10일 오전 ‘문재인대통령 취임 2년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으로 A4 용지 1장 분량의 서신 형식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10일은 문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반부 내용은 문 대통령이 광주에 대해 지대한 관심과 지원을 한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후반부는 “~하겠다”며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한 이 시장 자신의 역할을 다짐하고 있다. 전체 맥락상으로는 문 대통령에 대한 찬양이 주를 이룬다. 이 때문에 마치 송강 정철의 가사 ‘사미인곡(思美人曲)’의 기시감마저 느껴졌다. 

이 작품은 조정에서 물러난 작가가 전남 창평에서 은거하면서 지은 가사로, 임과 이별한 여인의 심정에 비겨서 변함없는 왕에 대한 충정을 하소연할 목적으로 읊은 충신연군지사다. 각 연에서는 임금과 이별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뒤 임금을 향한 충성을 노래한다.

2018년 7월 1일 제13대 광주시장에 취임한 이용섭 시장이 선서를 하고 있다. ⓒ광주시
2018년 7월 1일 제13대 광주시장에 취임한 이용섭 시장이 선서를 하고 있다. ⓒ광주시

이 시장은 이날 서신에서 “광주시내 곳곳에 오월의 상징 이팝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었다”며 “다시 5월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루어낸 자랑스러운 역사, 5‧18민주화운동이 39주년을 맞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사미인곡에서 봄을 읊은 “동풍이 문득 불어 적설을 헤쳐 내니, 창 밖에 심은 매화 두세 가지 픠여셰라”라는 대목을 연상케 한다.

이 시장은 이어 “지난 5월 7일 아침, 대통령님의 특별한 글을 접했다. 취임 2주년을 맞아 독일 언론에 기고하신 ‘평범함의 위대함’이라는 이 글의 첫 단어는 ‘광주’였다”면서 “대통령님의 글은 저와 우리 시민들의 가슴을 울렸다. 광주시민으로 살고 있음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행복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 시장은 “1년여 전 일자리위원회 초대 부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내려놓고 광주에 내려올 때, 저는 문재인 정부 일자리 5년 로드맵을 광주에서 실현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강조했다. 

「엊그제 님을 모시고 광한전(청와대)에 올랐더니 그 동안에 어찌하여 하계(광주)에 내려왔느냐. 올 때에 빗은 머리 헝클어진지 삼년이라.」 (사미인곡)

이 시장은 “그래서 시장 취임 이후 노사상생의 새로운 일자리 모델을 실현시키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으며, 광주형 일자리사업을 성사시켰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이는 대통령님의 지원과 온 국민의 성원이 없었다면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150만 광주시민의 마음을 모아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 시장은 뒷부분에서는 대통령 면전에서 보고하듯이 각오와 의지를 피력했다. “오월의 정의로운 역사를 지켜내겠다”, “5‧18을 대한민국과 세계의 5‧18, 미래 발전의 동력으로 승화시켜 나가겠다”, “2019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 “광주가 한국경제의 구원투수가 되겠다”, “중앙정부에 무엇을 요구하기에 앞서 광주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겠다”고 썼다. 

이 시장은 “우리 앞에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우리는 대통령님께서 대내외 격랑의 물결을 헤치고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꼭 실현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그 길에 광주도 함께 하겠다”면서 글을 마무리했다.

「가뜩이나 쌀쌀하고 적막한데 그윽한 향기는 무슨 일인고. 황혼의 달이 좇아와 배갯머리에 비치니 흐느끼는 듯 반기는 듯 님이신가. 저 매화 꺾어 내어 님 계신데 보내고 싶구나.」 (사미인곡)

임금에게 화자의 변함없는 충성심을 알리고자 하는 대목이다. 

이용섭 광주시장이 취임 후 첫 결재를 하고 있다. ⓒ광주시
이용섭 광주시장이 취임 후 첫 결재를 하고 있다. ⓒ광주시

같은 당 소속이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이 대통령에게 이 같은 깜짝 서신을 통해 ‘정치적 행위’를 한 것은 이례적이다. 물론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김완주 전북지사는 2009년 7월 정부의 새만금사업 종합실천계획 발표에 대해 장문의 감사편지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냈다. 그는 편지에 “저와 200만 전북도민들은 대통령님께 큰절을 올린다”, “새만금 계획안을 읽을 때마다 새록새록 감동이 밀려왔다”고 적어 ‘과공’ 논란을 빚었다.

민선 5기 당시인 2009년 11월22일 박광태 광주시장과 박준영 전남지사는 4대강 사업 영산강 구간 기공식에서 이 대통령을 화끈하게 칭송해 ‘엠비(MB)어천가 논란’을 빚었다. 김영록 전남지사도 지난해 12월 전남도청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청책(聽策) 투어’ 현장간담회 석상에서 같은 당 소속 홍영표 당시 원내대표에게 “예산 많이 줬다”며 ‘90도’ 각도로 깍듯하게 절하는 바람에 과공비례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이 시장이 감사의 서신을 올린 배경에는 문 대통령의 광주형일자리 지원에 대한 감사하기 위한 뜻이 담겨 있어 보인다. 문제는 과한 데에 있다. “(광주형 일자리사업 성사에 대한 대통령의 지원에) 150만 광주시민의 마음을 모아 감사드린다.”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대통령님의 글은 저와 우리 시민들의 가슴을 울렸다” “광주시민으로 살고 있음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행복했다”등의 표현은 낯 뜨겁다. 

요즘 심각한 경제난에 ‘모든(All)’ 광주시민이 대통령 조치에 감동하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웅장한 시청사를 지나며 “때 되면 월급 척척 나오는 시청 공무원들은 좋겠다. 저들이 우리 사정을 알겠느냐. 난 이제 어디로 가야하냐”고 한숨짓는 시민들도 많다. 

자세한 속내까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시장이 뭔가 헛다리를 짚어도 단단히 짚은 것 같다. 지금은 광한전을 바라보고 연군지사 타령할 때가 아니다. 하계에서 생계 난에 눈물짓는 시민들에게 대안 제시의 편지를 쓸 때다. 치열한 삶 속에서 성숙한 지성을 갖춘 지도자는 어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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