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리스크’에 비틀거리는 하이트진로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5 08:00
  • 호수 15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태영 부사장, 일감 몰아주기로 사법처리 위기…하이트진로 측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계속”

하이트진로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절주(節酒) 문화의 확산으로 국내 주류시장 전체가 침체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맥주 부문은 국내 경쟁사의 공세와 수입 맥주의 인기로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60%에 가깝던 하이트진로의 맥주 시장 점유율이 30%대로 추락하면서 한때 80%대이던 맥주 공장 가동률도 30%대까지 낮아졌다. 그 결과 하이트진로 맥주 부문은 2014년부터 적자를 내고 있다. 2016년 ‘이름 빼고 다 바꿨다’는 슬로건을 내건 ‘올 뉴 하이트’를 출시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최근엔 이름마저 버린 ‘테라’를 내놓고 홍보에 매진하고 있다.

박태영 하이트진로 부사장과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빌딩 ⓒ 시사저널 포토
박태영 하이트진로 부사장과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빌딩 ⓒ 시사저널 포토

승계 지렛대였던 서영이앤티, 지금은 리스크

그렇다고 소주 부문에서 괄목할 성과를 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시장 점유율과 판매량이 매년 우상향 성장을 해 오고 있지만 원부자재 비용과 제조경비 등 고정비 부담이 증가하면서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다. 하이트진로가 최근 소주 출고가 6.45% 인상을 결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 높은 차입금 비중으로 재무구조도 좋지 않다. 이 때문에 하이트진로는 보유 자산과 계열사를 매각하는 한편 2017년엔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고민거리는 따로 있다. 생맥주 기자재 제조업체 서영이앤티를 통한 편법 승계 논란에서 촉발된 ‘오너 리스크’다. 한때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의 장남인 박태영 하이트진로 부사장과 차남 박재홍 서영이앤티 상무가 지분 100%를 보유했던 서영이앤티는 3세 승계의 지렛대 역할을 했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재원을 마련한 뒤 지분매각·주식스왑·유상증자·기업합병 등의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서영이앤티는 현재 ‘서영이앤티→하이트진로홀딩스→하이트진로→손자회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올랐다.

승계의 핵심이던 서영이앤티는 이제 리스크가 됐다. 이 회사 일감 몰아주기 논란으로 박 부사장이 사법처리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검찰은 올해 1월 박 부사장과 하이트진로 임원진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서영이앤티는 맥주캔 제조·유통 과정에 끼어들어 43억원의 ‘통행세’를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박 부사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조사에서 비롯됐다. 조사 결과 공정위는 지난해 하이트진로와 서영이앤티에 과징금을 부과하고 박 부사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렇다 보니 하이트진로는 어떻게든 서영이앤티의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해소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른바 ‘일감몰아주기법’은 총수 일가의 지분이 30%(비상장사 20%) 이상인 기업의 내부거래액이 한 해 200억원 이상이거나, 연매출의 12%가 넘는 경우를 규제 심의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서영이앤티가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해소하는 방안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일단 오너 일가 지분율을 20% 밑으로 줄여 규제를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영이앤티 지분이 경영권과 직결돼 있어서다. 두 번째로는 내부거래가 발생하는 사업 부분을 다른 계열사로 넘기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 역시도 실현 가능성이 낮을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3세 승계를 마무리하기 위해선 박 회장이 보유한 하이트진로홀딩스 지분 29.5%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재원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내부거래 규모와 비중을 규제 범위 밖까지 줄이는 방안이 거론된다. 서영이앤티도 그동안 이를 위한 자구노력을 기울였다. 먼저 내부거래 규모를 줄였다. 실제 2015년 253억원이던 서영이앤티 내부거래액은 2016년 210억원, 2017년 204억원을 거쳐 지난해 199억원까지 낮아졌다. ‘내부거래액 200억원 이상’이라는 범위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문제는 내부거래 비중이다. 서영이앤티는 내부거래 규모를 줄이면서 비중을 낮추는 작업도 병행해 왔다. 여기엔 사업다각화로 외부 매출을 늘려 내부거래 비중을 희석시키는 방법이 동원됐다. 이를 위해 서영이앤티는 2013년 이탈리아 프리미엄 오일&비니거 브랜드 올리타리아를 수입해 유통하는 사업에 뛰어드는가 하면, 2014년에는 키즈카페 업체인 ‘딸기가좋아’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런 전략은 일부 효과를 냈다. 서영이앤티의 연도별 매출이 증가하면서 내부거래 비율은 감소세를 보였다. 실제 서영이앤티의 내부거래율은 2014년 40.17%(총매출 507억원), 2015년 36.87%(685억원), 2016년 28.25%(744억원), 2017년 23.98%(851억원) 등으로 낮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내부거래 비중을 12% 이내로 줄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내부거래 규모(199억원)를 유지한다고 가정했을 때 매출을 12% 이내로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1664억원 이상의 매출을 발생시켜야 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엔 외부 매출 증가세마저 제동이 걸렸다. 매출이 745억원으로 전년 대비 100억원 이상 줄면서 내부거래율도 26.77%로 증가했다. 이에 대해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글라스락과 거래하는 과정에 서영이앤티를 끼워넣어 통행세를 거둬들였다는 공정위의 지적을 시정하기 위해 해당 거래를 중단하면서 매출이 줄어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감 몰아주기 의식해 유통사업 진출

서영이앤티가 최근 해외 제과 유통사업 진출을 결정하며 종합식품업체로 도약하겠다고 밝힌 것도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의식한 결과로 해석된다. 서영이앤티는 글로벌 제과업체인 몬델리즈와 독점 수입·유통 계약을 맺고 4월부터 제품 판매에 나섰다. 서영이앤티는 이를 통해 단기적으로 200억원, 5년 후에는 700억원대의 신규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매년 생맥주 기자재에 대한 꾸준한 내부 수요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감 몰아주기 논란 해소를 위해 이를 경쟁사 제품이나 수입제품으로 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대신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해 계속 내부거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