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서 재활까지 자신과 사투 벌이는 마약환자 24시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5.20 08:00
  • 호수 154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재활센터’ 운영…가족·사회 관심도 절실

“마약사범을 모두 ‘죽일 놈’으로 만들어서는 마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마약범죄를 수사했던 검사부터 마약을 연구하는 전문가, 실제 마약을 투약했던 중독자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마약을 판매하는 유통·공급책과 마약 투약자가 구분돼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돈’을 목적으로 마약을 유통시키는 이들은 강력 처벌해야 하지만, 이미 마약에 중독된 이들은 ‘구조’ 또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진흙탕에 빠진 이들을 바라보며 “왜 스스로 탈출하지 못하나”라고 탓만 하는 것은, 실제 중독자의 재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마약의 늪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은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걸까.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 설립된 민간단체(NGO)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마퇴본부)가 마약 중독자 재활을 돕고 있다. 시사저널은 마퇴본부에서 실제 재활을 하고 있는 다수 중독자들의 사례를 취재했다. 그리고 이를 종합해 가상의 인물 ‘K’를 통한 재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재활 프로그램의 세부 내용은 인터뷰에 응한 마약 중독자들과 마퇴본부 관계자의 증언을 따랐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1. ‘쭈라’에 떠는 중독자 위한 ‘심리상담’

K는 마약 중독자다. K가 스스로 마약을 찾았던 것은 아니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처음 만난 남자친구가 술에 취한 자신의 팔에 ‘필로폰’을 투약하면서 마약 중독에 이르게 됐다. 약 1년간 필로폰과 코카인을 투약하던 K는 남자친구가 경찰에 덜미를 잡히면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같이 기소된다. 법원은 K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마약사범’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고 사회로 돌아온 K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우선 단약(약을 끊음) 부작용이 뒤따랐다. 일명 ‘쭈라(자신이 체포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뜻하는 마약 중독자들의 은어)’ 탓에 잠을 자지 못하고 벌벌 떨다가, 날을 꼬박 새우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은 물론 심지어 가족과도 대화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마약을 시작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 K는 직접 인터넷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을 검색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마퇴본부였다.

마퇴본부는 가장 먼저 K의 심리상담을 진행했다. 마약 중독자들은 필연적으로 불안 증세를 겪는다. 이후에는 우울증으로 이어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중독 기간 등에 따라 증세는 달라질 수 있고 처방법도 갈리기에, 중독자의 심리상태를 먼저 검사하는 게 마약을 끊는 첫 번째 단계다. 전문적인 심리상담은 1회당 약 10만원의 비용이 들지만, 마퇴본부에서 최대 10회에 이르는 상담비용을 지원한다. 심리상담 후 일정 부분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으면 의료기관을 소개해 준다. 심리상담을 마친 K는 매주 화요일 서울 강남을지병원에 들러 약물치료와 뇌파치료 등을 받고 있다.

 

■2. NA 통한 재사회화…가족들도 ‘치료 대상’

K는 상담과 별개로 약물 중독자들이 익명으로 각자 경험을 얘기하며 마약을 끊는 결의를 다지는 자조 모임(NA·Narcotics Anonymous)에도 참여하고 있다. 모임은 마퇴본부 인근 중독재활센터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7시에 시작한다. 적게는 12명에서 많을 때는 약 20명의 마약 중독자들이 모여 서로의 일상과 단약 과정 등을 나눈다. 일종의 ‘재사회화’ 과정인데, 이를 통해 투약자들은 다시금 소통의 방법을 배우고, 약을 끊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는다. 

K와 별개로 K의 가족 역시 ‘치료 대상’이 됐다. K는 10대 시절 말수는 적었어도 가족에게 살가웠다. 그런 K가 마약 중독자가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가족들에게도 큰 고통이자 시련이었다. K가 구치소에서 집으로 돌아온 날, K의 어머니는 “같이 죽자”며 울부짖기도 했다. 그러나 달라지고 싶다는 딸의 ‘몸부림’에 어머니 역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K의 어머니는 한 달에 2번 마퇴본부에서 열리는 마약 중독자 가족 모임에 참석한다. 모임에 온 가족들은 자신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고, 때로는 같이 울면서 조금씩 회복한다. 그 과정에서 마약에 중독된 가족을 위해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간다. 

 

■3. ‘성별 분리’도 중요…지역사회 관심도

마퇴본부에서는 K를 위한 또 다른 치료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바로 ‘여성 마약 중독자’만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다. 상당수의 여성들이 마약을 투약하는 과정에서 성폭행을 당하거나 남성 투약자들로부터 폭력을 동반한 학대를 당하기도 한다. 마약을 투약했을 때는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다. 때론 쾌락이라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약을 끊고 나면 이 같은 일이 비로소 상처로 다가온다는 게 마약 중독자들의 증언이다. 이 경험을 남성에게는 털어놓기 힘든 탓에 NA 모임 등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여성 투약자들이 적지 않다. 이에 마퇴본부 차원에서 여성을 위한 별도의 모임을 꾸려, 또 다른 치유의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K는 지역사회에서도 도움을 받았다. K가 거주하는 지역의 구청에서는 K의 자립을 돕기 위해 미용학원비를 지원해 주기로 했다. K의 사정을 알고 있는 이웃 주민은, K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마트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선뜻 제의하기도 했다. 이런 도움을 받으면서 K는 이제 과거처럼 이불을 덮고 떨지도, 주변인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스무 살, 잠시 꿨던 ‘악몽’을 잊기 위해 K는 오늘도 용기를 내 거리로 나선다.

본인이 25년간 마약에 빠져 지내다, 이제는 재활에 성공해 마약 중독자들을 돕고 있는 박영덕 마퇴본부 중독재활지도실장은 “마약 중독자들 스스로 회생할 수 있는 방법이나 기회를 찾는 것이 매우 힘들다. 그래서 (마퇴본부를) 찾아온 이들에게는 특히 많은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고, 경제적·심리적으로 자립을 할 수 있게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둔 상태”라며 “무엇보다 마약 중독자들에게는 24시간 관심이 필요하다. 마약을 끊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항상 전화로 이들의 안부를 묻고, 혹시 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없을지 늘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 ‘30년 마약 중독자의 고백’ 연관기사

“재벌가 자제들이 마약상들 옥살이 도와준다”

숫자로 보는 대한민국의 ‘마약 현주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