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최순실 검찰·특검 피의자 신문조서 21건 공개
  • 특별취재팀: 구민주·김종일·김지영·오종탁·유지만 기자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5.24 10:30
  • 호수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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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심정 담기도록 간단한 의견만 제시했다”
“당선 후 정호성 만난 적 없어” 등 거짓 진술도

시사저널이 5월17일 공개한 정호성 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 녹음파일에서 최순실씨는 자신의 뜻대로 대통령 취임사를 고치고 국정 철학과 운영방식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 당선인’이 된 듯한 최씨 태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따라가기 바빴다. 90여 분 대화 내내 둘의   관계를 가늠케 하는 대목들이 이어졌다.

시사저널은 정호성 녹음파일과 함께, 최순실씨의 2016년 10월31일부터의 검찰 및 특검 신문조서를 단독 입수했다.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는 17건, 특검의 신문조서는 4건이다. 모두 21건이다. A4용지로 검찰 조서는 388쪽, 특검 조서는 90쪽으로 모두 478쪽에 달하는 분량이다. 신문조서에 따르면 최씨는 대통령 취임사 작성 등에 개입한 의혹에 대해 녹음파일 내용과 상반된 진술로 일관했다. 박 전 대통령, 정 전 비서관과의 관계에 대한 주장 역시 녹음된 대화와 큰 차이를 보였다.

최순실씨의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는 17건, 특검의 신문조서는 4건이다. 모두 21건이다. A4용지로 검찰 조서는 388쪽, 특검 조서는 90쪽으로 모두 478쪽에 달하는 분량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최순실씨의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는 17건, 특검의 신문조서는 4건이다. 모두 21건이다. A4용지로 검찰 조서는 388쪽, 특검 조서는 90쪽으로 모두 478쪽에 달하는 분량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제가 철학자도,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에…”

녹음 속 최순실씨는 취임사 관련 회의를 사실상 주도했다. 대통령직 참모들이 사전에 작성한 취임사 초안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 최씨의 지시는 취임식에서 박 전 대통령이 읽어내린 취임사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그러나 최씨는 과거 검찰 및 특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줄곧 자신은 직접 연설문 내용을 수정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글에 대통령의 심정이 잘 담기도록 간단한 의견만 제시했다고 진술했다. 자신의 의견이 최종적으로 반영됐는지도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2016년 11월11일 작성된 검찰의 피의자(최순실) 신문조서를 들여다보자.

문) 피의자가 ‘대통령의 연설문 수정을 도와주게 된’ 경위는 어떻게 되나요.

답) 제가 오랫동안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왔는데,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있던 이춘상 보좌관이 저에게 대통령의 말씀자료에 대통령의 마음이나 심정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좋은 의견을 주면 좋겠다는 취지로 제안을 하여 그 무렵부터 대통령 연설문 작성과 관련한 도움을 드리기 위해 간혹 의견을 준 적은 있으나, 구체적으로 제 의견이 반영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문) 피의자는 2012년 대선 무렵부터 대통령 말씀자료 등 연설문 작성을 도와주었다고 하였는데, 대통령께서 2012.12.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대통령 연설문 작성에 도움을 드렸던 것인가요.

답) 대통령께서 당선된 이후에도 몇 번 도움을 드린 것 같은데, 그렇게 많지는 않고 제가 직접 연설문 내용을 수정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말씀하실 연설문에 대통령의 마음이나 심정이 담길 수 있도록 간단한 의견을 드렸던 것입니다.

검찰 조사에서 최씨는 자신이 전문가가 아닌 민간인임을 강조했다. 연설문 수정에 있어 자신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철학을 살리기 위해 의견을 보탠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2016년 11월11일자 신문조서에는 이런 문구도 나온다.

문) (정호성 전 비서관을 통해) 연설문과 말씀자료의 초안을 받아보고 의견을 주었던 것인가요.

답) 연설문과 말씀자료 초안 전부가 아니라 그중 본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부분 위주로 하여 이메일로 받아보고서 제가 수정해서 메일로 보내주었습니다. (중략) 제가 철학자도 아니고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전체 말씀자료를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만들어진 자료를 보고 문맥을 고쳐주거나 제가 평소 대통령의 철학에 대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의견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녹음파일 속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의 생각과 철학을 듣기보다, 자신의 철학대로 국정 기조를 좌지우지했다. 그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역할은 최씨의 발언에 동조하는 데 그쳤다. 

또한 최씨는 검찰 조사에서 녹음파일 속 박 전 대통령, 정 전 비서관과의 만남 사실과 정확히 대치되는 진술을 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중간고리 역할을 해 온 이춘상 보좌관이 2012년 대선 기간 사망한 후로 메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정 전 비서관과도 박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엔 만난 적이 없다고 못 박기도 했다.

문) 이춘상 보좌관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2012.12.2.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이춘상 보좌관이 사망한 이후에는 어떻게 의견을 전달했던 것인가요.

답) 그 이후로는 메일로 주고받았던 것 같습니다.

문) 피의자는 대선 캠프와 이후 대통령 비서실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호성 비서관을 알고는 있나요.

답) 대선 캠프 때는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2012.12.19.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만난 적이 한 차례도 없습니다.

(2016년 11월1일자 피의자 신문조서 중)


“정호성, 수시로 자료 보내 힘들었다”

최씨는 검찰에서 박 전 대통령과 정 전 비서관이 자신을 지나치게 필요로 하는 데 대한 고통을 토로하기도 했다. 최씨는 정 전 비서관에 대해 ‘대통령을 잘 모시려 애쓰는 충직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그가 자신에게 대통령 관련 자료를 수시로 보내 힘들었다고 주장했다.

문) 피의자는 금일 조사에 앞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요.

답) (중략) 솔직히 2, 3년 전부터는 독일로 아예 이주를 하기 위해 준비도 하였는데, 대통령님이 계속 저를 필요로 하시는 것 같아 무작정 떠나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대통령님 옆에 있는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중략) 정호성 비서관은 대통령님을 조금이라도 잘 모시려는 충직한 사람이었고, 대통령님은 오랫동안 옆을 지켜주었던 저를 통해서 민심을 듣기를 원했기 때문에 정호성 비서관은 중간에서 저를 통해 민심을 최대한 대통령님께 잘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솔직히 제 입장에선 수시로 연설문과 말씀자료를 보내오는 것이 부담스럽고 힘들기도 했습니다. 저도 제 개인적인 일정이 있는데 정호성 비서관이 수시로 자료를 보내오면 그것을 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2016년 11월16일자 피의자 신문조서 중)

그러나 녹음파일을 들어보면, 최씨가 이런 부담을 감내하면서 억지로 이들을 도왔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녹음 속 최씨는 되레 의욕적으로 둘을 이끌며 논의를 이어갔다. 자신의 말을 받아 적지 않는 정 전 비서관을 질책하고 박 전 대통령의 말을 끊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검찰에 출석해 녹음 속 모습과 상반된 진술을 한 인물은 비단 최씨뿐만이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지난 검찰 조사에서 최씨의 연설문 수정 건에 대해 “최순실이 연설문을 다듬는 재능이 있다”며 “문투를 수정하거나 일부 의견을 주는 정도였다”고 선을 그었다. 2017년 3월2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진행된 피의자 신문에서 박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최순실은 오랫동안 유치원을 운영한 경험은 있지만, 국가 정책이나 외교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며 “대통령인 제가 그와 같은 최순실과 상의해 결정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정호성 녹음파일을 들어보면 박 전 대통령은 검찰에서 거짓 진술을 한 셈이다. 최씨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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