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다시 펼친 숙제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27 09:00
  • 호수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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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5월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꼭 10년째 되는 날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던 그를 추모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김해 봉하마을을 찾았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생전의 그를 그리워하고 그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인간 노무현’은 지금도 큰 존재감으로 살아 있는 듯하다. 그런 사람들이 노무현을 기억하는 경로는 여러 갈래다. 예를 들어 그를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애쓴 휴머니스트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치 경력의 대부분을 치열한 투쟁과 도전으로 점철했던 승부사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3일 오후 경상남도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 후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이낙연 국무총리가 23일 오후 경상남도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 후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후자의 기억을 따라가 보면, 그가 정면으로 대결했던 권력의 현재가 더욱 도드라져 나타난다. 그는 먼저 여러 권력집단 중에서 검찰을 정조준했다. ‘검사와의 대화’에 나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정공법은 급소를 찌르지 못한 채 빗나갔다. 대화 자리에 나온 검사들은 취임한 지 한 달도 채 안 된 대통령 앞에서 거친 표현을 쏟아냈다. 한 검사는 “검사들을 토론을 통하여 제압하시겠다면 이 토론은 좀 무의미하지 않습니까?”라는 말로 대통령의 대화 제의에 담긴 저의를 공격했다. 또 다른 검사는 고졸인 대통령에게 대학 학번을 묻기도 했다. 충분히 의도적인 공격이라고 느낄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한 검사가 ‘검찰에 대한 청탁 전화’ 발언을 하자 그 유명한 말이 나왔다.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죠.”

기득권·특권을 거부했던 노 전 대통령이 권력 집중을 막아보겠다며 시도한 검찰 개혁은 끝내 무산됐다. 며칠 전 처음 공개된 노 전 대통령의 친밀 메모에 “힘들었다” “너무한다”라는 표현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검찰 개혁에 애면글면했는지 알 수 있을 듯하다. 일부에서는 지금도 “공권력과 척을 지면서 공권력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내내 고전해야 했던 진짜 이유”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노 전 대통령이 또 하나 별러서 맞선 대상은 메이저 보수언론이었다. 앞서 말한 친필 메모에도 “언론과의 숙명적인 대척”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을 정도다. 그는 ‘언론 통제’ 같은 반칙적이고 손쉬운 방법을 제쳐놓고, 어찌 보면 ‘달걀로 바위 치기’라 할 수 있는 정면 승부의 길을 택했다. 하지만 그가 공격할수록 상대 언론들의 반격은 더 거세졌고, 결국 아무런 성과도 없이 싸움은 흐지부지됐다. 일부 화장실에 시민단체들이 붙여놓은 ‘◯◯일보 사지도 보지도 맙시다’라는 스티커만 유물처럼 남았을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이 떠난 지 10년, 그가 바꿔보고자 했던 검찰과 메이저 보수언론의 모습은 어떤가. 검찰은 수사권 조정 문제와 관련해 자신들의 권한을 일부 내어놓는 것에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메이저 보수언론들은 진영논리를 더욱 강고히 하며 정부·여당에 대한 공격의 고삐를 더욱 당기고 있다. 10년이 지났는데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모습이다.

대통령 노무현이 꿈꾸었던 ‘반칙 없는 사회’ ‘사람 사는 세상’을 제대로 보기까지는 대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그를 좋아하는 쪽이나 좋아하지 않는 쪽이나 반칙이 판치는 세상, 사람 살기 좋지 않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 그의 서거 10주기를 맞은 오늘, 우리 사회에 남겨진 숙제의 무게가 참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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