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안전 담보로 한 ‘가드레일 두께 오차 허용’
  • 서진석 부산경남취재본부 기자 (sisa526@sisajournal.com)
  • 승인 2019.05.26 15:00
  • 호수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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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청, 도로 가드레일 두께에 ±10% 오차 허용
“전국 가드레일 대부분 기준치 이하”

도로에서 추락 사고를 막는 최후의 보루인 가드레일의 두께에 마이너스 오차를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다. 가드레일은 두께가 굵을수록 충돌 저항이 강해지고 얇아지면 그 반대이므로 철 구조물 가드레일에서 두께가 몇 mm인가 하는 것은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조달청도 차량방호울타리(가드레일)표준규격서에서 2W형(두 줄) 가드레일 판의 철판 두께는 4mm, 가드레일 지주는 4.5mm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조달청은 표준규격서 말미에 ‘과학적 근거 제시’를 전제로 가드레일 기둥, 즉 지주의 두께에 ±10%의 오차를 허용해 4.5mm 이하 지주들이 도로를 점령하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가드레일 판에는 오차를 두지 않았다.

시사저널 측정결과 4.0mm로 나온 경남의 한 지역도로 ⓒ 부산경남취재본부 서진석
시사저널 측정결과 4.0mm로 나온 경남의 한 지역도로 ⓒ 부산경남취재본부 서진석

“가격 경쟁 탓에 두께 줄이는 편법 동원”

조달청에서 제품에 ±오차를 허용하는 빌미를 제공하면서, 납품업자들이 원가 절감 등의 이유로 너도나도 철판 두께를 줄이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규정보다 두껍게 제작된 가드레일은 도로에서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마이너스 10%에 턱걸이하는 수준으로 나타나 조달청이 오차를 허용한 취지가 궁금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시사저널이 초음파측정기를 동원해 국내 도로에 설치된 가드레일 100여 곳을 측정해 본 결과, 대부분의 가드레일 지주는 표준 규격 4.5mm에 못 미치는 4.2mm로 나타났다. 제품 표면을 도금 처리해야 하므로 이 두께 약 1mm를 빼면 실 두께는 4.1mm이고, 이는 허용 오차 마지노선인 4.05mm를 겨우 충족한 수치다. 특히 일부 구간에서는 오차 허용치를 벗어나는 4.0mm 지주도 간혹 보였다. 가드레일 판의 경우 오차를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지주보다 강도가 약한 압연강관 재질이어서 많은 표본을 추출하지는 않았지만 이 역시 기준인 4.0mm에 미달하는 3.8mm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누가, 왜 안전시설에 마이너스 오차를 도입했을까? 일단 조달청은 “도로교통연구원의 ‘고속도로 건설재료 표준규격’과 관련 사업자, 전문가 등의 공청회를 거쳐 최종 확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도로교통연구원 관계자는 “가드레일 지주의 고유번호는 ‘KSD3566’번인데, 이는 표준규격을 정할 때 KS규격에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10% 오차를 허용한다고 나와 있다”고 말했다.

공은 다시 국가기술표준원으로 넘어갔다. 결론은 KSD3566번이 1968년에 번호가 부여됐고, 이때 오차를 둔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당시 같은 오차를 허용한 일본의 국가표준인 JIS를 참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당시 국내 기술로는 탄소강을 0.1mm 오차로 가공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며 가드레일 지주가 탄소강관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조달청은 오차를 허용하면서 ‘줄자 및 버니어캘리퍼스 등 치수측정기를 사용해 검사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소수점 이하 단위를 다투면서 ‘줄자’를 동원해도 무방하다는 말에 비추어 50년 전 금속 가공 기술과 함께 계측 기술의 낙후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장면이다.   


가드레일 지주 한 개 두께 0.3mm 줄이면 약 2500원 절감

하지만 현재 기술력으로도 0.1mm 오차를 해결하지 못할까? 레일 제작업자 A씨는 “중국산도 넘쳐나는데 우리나라 기술력이 0.1mm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실제 철강회사에 도금 1mm까지 감안해 4.5mm가 아닌 4.1mm 지주를 주문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기술력이 아닌 업자의 영리 추구 때문이라는 말이다.

정부가 시대에 뒤처지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또 다른 기업체 대표 B씨는 “규정을 지키며 4.5mm를 납품하려면 가격 경쟁에서 밀린다. 어쩔 수 없이 두께를 줄이는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결국 50년 전 제정된 KS규격이 납품업체들의 철판 두께를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면서 도로에 4.2mm 지주가 등장했고, 가드레일 지주 4.5mm 제품은 조달청 나라장터 쇼핑몰에만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얇아진 국민 안전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가드레일 지주 한 개의 두께를 0.3mm 줄이면 약 2500원이 절감된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지주는 사고 위험도가 높은 곡각지에는 2m에 1개, 최대 4m당 한 개씩 가설된다. 30km 도로에 평균 3m 간격으로 지주를 설치한다면 1만 개가 되고 왕복으로 설치되므로 2만 개가 된다. 여기에 2500원을 곱하면 5000만원이다. 우리나라 도로연장은 2018년 12월 기준 11만7000km다.

한편, KS규격을 바꾸는 절차는 신청, 접수, 전문위원회 심의, 검토, 의결, 60일간 예고 고시, 기술위원회 재검토, 의결, 최종 고시 순이다. 위원 소집 기간 등을 고려할 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약 4개월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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