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은 현대제철에 없었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9.05.29 08:00
  • 호수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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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사망 사고 난 당진제철소 졸속 작업 재개 논란…비정규직 노동자들 서명 강요 의혹도

지난 2월20일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작업 중이던 50대 외주 노동자 이재복씨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김용균씨 사망 사고로 작업장 안전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직후였다. 국회에서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일명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당진공장에서 사망한 이씨의 경우 철광석을 이송하는 컨베이어벨트 부품을 교체하다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김용균씨 사건과 여러모로 닮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례적으로 불교와 천주교, 개신교 등 3대 종교까지 나서 재발 방지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을 정도다.

경찰은 즉각 사고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고용노동부도 사고가 난 현장에 대해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다. 당시 현대제철 측은 “관계기관 조사에 적극 협조해 정확한 사고 원인 파악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론에 밝혔다.

국내 3대 종교 관계자들이 3월6일 서울 서초구 현대제철 본사 앞에서 고(故) 이재복씨 사망 사고의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 3대 종교 관계자들이 3월6일 서울 서초구 현대제철 본사 앞에서 고(故) 이재복씨 사망 사고의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대제철 외주 노동자 사망 사고 그후…

이씨가 사망한 지 두 달여 후인 지난 4월26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는 사고가 난 컨베이어벨트를 재가동했다. 중대 재해 발생에 따른 안전조치를 현대제철이 완료한 만큼 작업중지를 해제한다는 것이 고용노동부 측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뒷말이 여전하다. 고용부의 지시로 현대제철이 안전작업계획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외주 노동자의 서명을 강요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의 한 관계자는 “안전작업계획서에 현장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협력업체 대표나 간부들이 근로자들에게 서명을 강요했다”며 “현장 근로자들은 무슨 내용인지 모른 채 서류에 서명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노조가 항의하자 뒤늦게 안전작업계획서상 현장 의견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현대제철 측은 “서명 강요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회사 관계자는 “안전작업계획서에 대한 설명은 이미 사전에 협력업체에도 공지됐다. 안전작업계획서를 미리 배포해 내용도 파악하도록 했다”며 “서명 강요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 서명 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있다고 해도 본사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외주 노동자들의 의견은 달랐다. 복수의 외주 노동자들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서명을 받는 자리 자체가 원청(현대제철)에서 주최한 설명회 자리였다. 이곳에서 안전작업계획서라는 설명 없이 무조건 서명을 하게 했다”며 “서명 강요가 본사와 무관하다는 해명은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현장 근로자들이 당진제철소의 졸속 작업 재개를 주장하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금속노조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최근까지 약 3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진제철소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럴 때마다 현대제철은 물론이고, 정부는 재발 방지를 외쳤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최근 국회는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했고, 고용부는 법의 보호 대상 확대를 추진 중이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현장에서 나왔다. 하지만 작업 재개 과정에서 외주 노동자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됐다는 것이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의 설명이다.

실제로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은 4월26일 작업중지 해제를 위한 심의위원회를 개최했다. 현장 근로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하는 자리로 알고 참석한 비정규직지회 관계자는 깜짝 놀랐다. 현장에 있던 노동청 간부가 “의견을 듣는 것이지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현대제철 측도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심의의결은 산업안전보건법상 현대제철 노조가 협의의 대상이다. 비정규직 노조는 협상 대상 자체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결국 심의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30여 분 만에 전면 작업중지 해제 결정이 내려졌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고용부의 ‘작업중지 명령서’와 ‘안전계획 수립 명령서’ ‘시정명령서’ ‘작업중지 해제 통보서’ 등의 내용은 달랐다. 공문에는 한결같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참여시킬 것을 지시하고 있다. 한 문건에는 ‘개선계획 수립 시 노동자, 특히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 노사협의기구 운영을 내실화하기 바람’이라고 명시돼 있었다.

그럼에도 외주 노동자를 작업 재개를 위한 들러리로 전락시켰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기자가 만난 한 현장 관계자는 “최근 종영된 MBC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서 권력과 싸우는 조장풍의 활약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최소한 작업이 재개됐다면 어떤 부분이 개선됐는지 알려는 줘야 될 것 아니냐”며 “작업중지가 해제되고 설비가 가동되면 그 자리에서 다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졸속 작업 재개로 이들이 다시 위험에 내몰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충남 당진에 위치한 현대제철 당진공장 ⓒ 연합뉴스
충남 당진에 위치한 현대제철 당진공장 ⓒ 연합뉴스

현대제철 측 “외부 안전자문단 조만간 출범”

이와 관련해 현대제철 측은 “사고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만간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안전자문단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 3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안전자문단 설립을 골자로 한 종합안전대책을 수립했고, 조만간 이 자문단을 출범시킬 예정”이라며 “이들은 산업안전 관련 분야의 전문가로 안전 전반에 관한 조언을 회사에 하게 된다. 아울러 관할 사업장 내에 근무하는 모든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바탕으로 잠재적 위험요소를 발굴·개선하는 작업을 병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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