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공개] 이재용의 국정농단 사건 검찰·특검 진술조서 7건
  • 특별취재팀: 구민주·김종일·김지영·오종탁·유지만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6.04 08:00
  • 호수 15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회장님께서 결재 라인에 끼워주신 적 없다”
검찰 “이건희 후계자 맞나”…이재용 “이야기하기 힘들다”

시사저널은 지난 5월17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박근혜-최순실-정호성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비(非)공직자’ 최순실씨가 취임사는 물론 취임 이후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과 글을 주무르며 국정에 쉴 새 없이 관여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진 순간이었다. 국정농단의 실체를 온 국민이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국정농단의 실체적 진실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 국정농단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대법원이 심리를 마무리하고 조만간 최종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의혹들은 아직 여전하다.

꼭 밝혀져야 할 국정농단의 실체적 진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삼성 관련’ 의혹이다. 최대 쟁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에게 ‘묵시적 청탁’을 했는지 여부다. 박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이 부회장과 모두 세 차례 독대했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회계사기)와 증거인멸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의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핵심 고리이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이재용 부회장 등 핵심 당사자들의 검찰과 특검 진술조서를 단독 입수해 공개한다. 국정농단 당시 진행됐던 수사 관련 자료들인데 이 부회장 승계 과정의 ‘뿌리’를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 아울러 향후 있을 수 있는 이 부회장의 검찰 수사를 미리 예측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초이기도 하다. 시사저널은 이 부회장의 2016년 11월 검찰 진술조서 2건과 2017년 1월과 2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특검)’ 진술조서 5건 등 모두 7건을 정밀분석했다. 이와 함께 삼성 관계자들의 검찰과 특검 진술도 꼼꼼히 들여다봤다. 이 부회장 등의 진술조서를 모두 합치면 A4용지로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 시사저널 고성준
ⓒ 시사저널 고성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재용 승계 핵심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삼성바이오 ‘가치 부풀리기’는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삼성그룹 사업이 본격 재편됐던 2014~15년(회계연도 기준)에 이뤄졌다. 삼성물산과의 합병에서 제일모직(삼성바이오의 모회사) 가치는 고평가됐다. 그 수혜는 제일모직 최대주주였던 이 부회장에게 돌아갔다.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물산 등 그룹 3대 축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도 강화됐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당시 검찰과 특검 조사에서 합병 과정에 대해 보고를 받아 상황은 알고 있었지만, 합병은 자신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합병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에 대한 책임도 자신과 무관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 부회장이 2016년 11월13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진술한 내용에는 이런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

검찰(이하 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경과에 대해서는 진술인에게 지속적으로 보고가 되고, 진술인의 승인을 받아 진행된 것이 맞는가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하 이): 네, 단계별로 보고를 받았고, 질문도 했고, 토론도 했고 그랬습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추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사장님들이 결정을 하셨고, 믿으실지 모르시겠지만 그때 제가 합병을 (왜) 반대를 안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합병을 반대를 안 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두 회사 사장이 합병에 따른 시너지를 열심히 설명을 하여 합병을 한 것인데, 이렇게 반대를 하는 주주들이 많을 줄을 몰랐습니다. 지금은 지배력 강화를 위해 한 것처럼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듣기 싫은 면도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닌데.

이 부회장은 검찰과 특검 조사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경영권 승계와 무관하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는 2017년 2월25일 특검 조사에서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양사의 경영진들과 이사회가 서로의 시너지 창출과 미래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추진한 것이지, 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 추진한 것은 절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 과정에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했다.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 그룹 계열사의 지주회사 전환과 관련하여, 피의자가 직접 관여한 부분이 있나요.

일부 보고받은 적도 있고, 제 의견을 이야기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 김종중 사장(당시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주도하에 추진되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잘 모릅니다.

이 부회장은 자신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지자 합병 중단을 제안했다는 주장도 했다. 그는 “저는 처음에 합병에 찬성하였다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이 등장해 합병에 반대하자 합병 추진 중단을 제안했다. 하지만 양사 경영진과 최지성 (미래전략실) 실장과 김종중 사장의 강한 합병 추진 의지로 인해 두 분의 의견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2015년 추진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 작업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합병 전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최대 주주였지만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 4.06%를 보유한 삼성물산의 주식은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반면 정부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국민연금관리공단(연금공단)은 삼성물산 주식 11.21%를 보유하고 있었다. 주식 합병 비율이 제일모직에 유리할수록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에 유리할수록 연금공단이 이익을 얻는 상황이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최종적으로 0.35대 1의 비율로 합병을 선언했다.

이 부회장의 검찰 진술조서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손을 들어줘 논란이 된 연금공단에 대한 속내도 담겨 있다. 이 부회장은 합병이 연금공단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국민연금공단의 합병 찬성 결정은 잘 내린 결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진술인은 국민연금공단의 합병 찬성의 의결이 잘된 결정이라고 진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합병 이후 삼성물산은 큰 금액의 손해가 발생하였고, 제일모직은 계속하여 이익이 났기 때문에 국민연금공단에서 합병에 찬성한 것이 결과적으로 올바른 의사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2016년 11월13일 검찰 진술조서 중)

이재용 검찰조서

이재용 “당시 최순실·정유라 전혀 몰랐다”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경영권 승계 등에 대한 청탁이 있었다는 의혹을 인정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을 통해 삼성물산 합병 건에 대해 연금공단의 찬성표를 이끌어내는 대가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에게 승마 훈련 등 재정 지원을 한 것 아니냐는 검찰의 지적에 “터무니없는 억측” “전혀 근거 없는 억측” 등의 표현으로 강하게 부인했다. 이 부회장은 “당시에는 최순실이나 정유라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엘리엇의 합병 반대 등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전혀 언급된 적이 없다고도 했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려 봐야겠지만, 박 전 대통령 항소심 재판부는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삼성의 구체적 청탁이 존재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단독 면담 전 이미 합병 결정이 이뤄진 탓에 합병에 대한 청탁은 없었던 것으로 봤지만, ‘합병 이후’를 겨냥한 청탁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의 단독면담 이틀 뒤인 2015년 7월27일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합병 과정에서 문제가 되었던 엘리엇 사태 관련 대책을 마련해 보라”고 지시한 사실도 인정했다. 당시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했던 엘리엇은 합병에 반대하며 주주총회 부결을 시도해 삼성의 골칫거리였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과정에서 자신이 적극적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진술과 함께 자신이 삼성그룹 내 주요한 의사결정에서 배제돼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피의자는 삼성그룹 계열사의 합병을 추진하는 경우에도 전혀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나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은 김신 삼성물산 사장, 윤주화 제일모직 사장, 최지성 실장, 미래전략실 김종중 사장이 제 의견을 물어보았고, 최종 의사결정은 삼성물산 사장과 제일모직 사장이 하였습니다.

왜 피의자에게 합병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는 것인가요.

제가 대주주이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2017년 1월12일 특검 진술조서 중)

심지어 이 부회장은 자신이 삼성그룹 내에서 결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주장도 내놨다.

 

검 박상진 사장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으로 발령을 내고 대한승마협회 차기 회장으로 내정을 한 것은 피의자가 결재를 한 것이지요.

아닙니다. 저는 지금까지 결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피의자는 삼성전자 부회장인데 결재를 지금까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말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회장님께서 결재 라인에 끼워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책임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결재만 안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닌가요.

아닙니다.(2017년 1월12일 특검 진술조서 중)


“연금공단 합병 찬성, 올바른 의사결정”

이 부회장은 자신이 실질적으로 삼성그룹을 지배하고 있지 않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기도 했다.

피의자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후계자가 맞나요.

제 입장에서 이야기하기가 힘든 질문입니다.

피의자가 삼성그룹 경영권을 원활히 승계하기 위해서는 삼성그룹 계열사 간 합병을 통해 지배구조를 변경하고,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피의자의 직간접적인 지분 비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삼성그룹 계열사 전체에 대한 경영권을 확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각 회사가 잘 운영되고 제가 임직원들한테 신뢰를 받고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게 기업인으로서 자리를 잡는 거지, 삼성같이 큰 기업에 지배권이라는 게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피의자는 순환 출자 방식으로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피의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으로 인해 삼성물산 지분 17.2%를 보유하게 되어 결국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한 것 아닌가요.

지배력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습니다.(2017년 1월12일 특검 진술조서 중)

이 부회장은 이어지는 특검 조사에서도 “지배권의 정의에 대해 잘 모르겠다. 각 계열사의 최종 의사는 회사 CEO가 이사회나 주주총회를 통해 결정을 하고 있고, 저는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제가 그룹의 모든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며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검찰과 특검의 거듭된 추궁에 “제가 질 책임이 있으면 지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피의자가 아무런 형사책임을 지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법적인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제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피의자 주장은 ‘대통령에게 요구받은 책임만 있고, 돈을 준 책임은 없다’는 상식에 반하는 것입니다. 피의자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 최지성 실장, 장충기 사장, 박상진 사장에게 책임을 지우겠다는 입장인가요.

다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시다가 결과적으로 일이 이렇게 된 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책임을 미룰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삼성그룹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걸맞은 책임지는 자세를 보일 용의는 없지요.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겠습니다.(2017년 1월12일 특검 진술조서 중) 

ⓒ 시사저널 양선영 디자이너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