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삼킨 현대중공업 한국 경제에는 ‘약 아닌 독’
  • 이장수 전 산업은행 여신팀장·경제학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06 14:00
  • 호수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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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계 ‘3강’ 체제에서 ‘1강1중’으로…시장 독점 탓에 해외 경쟁업체들 견제 커질 듯

조선업은 그동안 자동차 및 전자와 함께 우리나라 주력산업이자 기간산업으로 제조업을 이끌어 왔다. 특히 자동차와 전자업은 세계 시장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조선업처럼 확고하게 세계 1위 또는 2위를 기록한 적이 없었던 터여서 최근의 실적 악화가 뼈아프게 다가온다.

국내 조선업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에 기반이 완성됐다.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당시 세계 1위인 일본을 제치고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 조선 강국이 됐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정부의 직간접적 지원이 축소됐고, 유가 하락으로 수주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 배경으로 정부의 정책 실패와 함께 조선 산업의 이해 부족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은 국내 조선업계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2006년부터 중국에 1위 자리를 넘겨주게 됐다.

대우조선해양이 세계 최초로 성공한 원타임 세팅공법 모습 ⓒ 대우조선해양 제공
대우조선해양이 세계 최초로 성공한 원타임 세팅공법 모습 ⓒ 대우조선해양 제공

국내 조선업 쇠퇴 원인은 정책 실패

수주 감소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외부적인 요인으로 유가 하락으로 인한 해외 선주들의 발주 감소 등이 꼽힌다. 하지만 내부적인 요인도 적지 않다. 우선, 정부의 정책금융 축소로 수주 물량이 감소한 점이 꼽힌다. 1997년까지는 계획조선 자금 등 정책금융이 유지됐으나, 1998년 이 제도가 폐지되면서 발주 감소로 이어진 것이다.

둘째로, 해운회사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200%의 부채 비율을 적용해 해운회사의 신규 조선 수주가 대폭 감소했다는 점이다. 해운회사의 주문 감소는 결국 조선업체의 건조 물량 감소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무관심을 꼽을 수 있다. 조선업에 대한 정부의 전문지식이 많이 부족했다. 오히려 세계 제1위라는 자만심에 취해 홍보에만 열중하다 보니 국내 조선 산업의 체질이 약화된 것이다.

최근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것을 두고 업계 안팎에서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의 M&A(인수·합병)는 국내 조선업의 중대한 사건 중 하나로, 앞으로 한국 조선업의 미래 성패가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업이 기존 3강 체제에서 2강 체제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수주량 기준으로 보면 2017년 현대중공업은 237만CGT, 대우조선해양 142만CGT, 삼성중공업 141만CGT, 현대중공업 계열인 삼호중공업 144만CGT, 현대미포조선 64만CGT를 기록했다. 현대중공업 계열과 대우조선의 합병을 가정하면 두 회사는 약 80% 이상의 수주 비중을 가지게 된다. 건조 능력 기준으로 봐도 현대중공업은 384만CGT, 대우조선해양 309만CGT, 삼성중공업 297만CGT(2017년 기준)를 기록했다. 두 회사의 합병으로 현대중공업의 건조 능력은 업계의 70%가 될 전망이다. 현대중공업 계열인 삼호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의 물량까지 감안하면 그 수치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조선업이 2강 체제가 아니라, 사실상 1강 1중 체제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과도한 시장 독점에 따른 해외 경쟁업체의 견제가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조선업의 정책금융이나 정부 지원에 대한 경쟁국들의 문제 제기가 그동안 적지 않았다. 합병 현대중공업이 탄생하면 이 기조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3강 체제를 유지할 때는 외국의 공격이 분산되는 견제 효과를 봤다. 하지만 2강 체제로 전환되면 국내 시장 점유율이 80%인 현대중공업이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해외 경쟁업체 입장에서는 현대중공업만 공격하면 되기 때문에 그만큼 견제 효과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쟁국인 중국 및 일본 조선업체의 수적 우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3강 체제(분산 효과)가 유리하다.

거대 기업의 탄생은 수주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3강 체제에서는 수주활동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2강 체제로 변화되면 기존 선주들이 이탈하면서 수주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 영업활동과 수주 전략이 조선업체마다 다를 수 있는 만큼, 다양성 및 효율성 면에서도 2강 체제가 불리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원들이 5월7일 현대중공업에 매각하는 데 대한 국민감사를 청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대우조선해양 노조원들이 5월7일 현대중공업에 매각하는 데 대한 국민감사를 청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세계 조선업계에서 위상 하락 우려

방위 산업의 독점화 우려와 건조 비용 상승도 우려된다. 그동안에는 해군의 구축함과 잠수함, 각종 군함 등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번갈아 건조해 나름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1개 회사로 독점화될 경우 군함의 건조 비용 상승과 함께 R&D(연구·개발) 능력 하락, 성능 저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합병으로 인한 노조의 비대화로 회사 경영의 마찰 요소가 종전보다 커질 수 있다. 조선업은 대규모 인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합병으로 인해 노조원 수가 많아지면서 그만큼 노조의 비대화로 경영에 어려움이 클 것이란 지적이다.   

이러한 인수·합병 결정은 어떻게 보면 전략적인 검토보다는 임시방편적인 방법이다. 채권단 입장에서 보면 부실을 떨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해외 수주 등 국제적 역학관계에 대한 검토는 미비한 점이 많다. 정부의 정책 실패, 정책금융 지원 축소 등의 원인으로 그동안 조선업의 경쟁력 하락과 2강 체제 전환이 향후 국내 조선업은 물론이고 한국 경제에도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강 체제에서 조선업의 부실이 발생하면 필연적으로 구조조정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인수 부문을 우선으로 인원 감축이나 건조 능력 축소 등 사업 축소가 이어지고, 결국은 2강 체제가 아니라 1강 체제로 전환하게 돼 그만큼 건조 능력이 축소된다. 결국 세계 조선업계에서 한국의 위상은 대폭 축소돼 국가경제에도 막대한 손실이 예상될 수 있다. 일시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으나 장기적으로 리스크 요인이 증대돼 결국은 조선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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