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달 연대기》의 야망,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1 11:00
  • 호수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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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억원 투입한 상고시대라는 도전, 그 기대와 우려

tvN의 새 토일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만만찮은 야망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회당 30억원으로 총 540억원을 쏟아 부은 것으로 추정되는 제작비.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로 사극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김영현·박상연 작가.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로 일련의 성공작을 만들었던 김원석 감독. 그리고 송중기, 장동건을 위시해 김지원, 김옥빈, 김의성, 조성하, 박해준 등 쟁쟁한 캐스팅까지 야심이 엿보이지 않는 대목이 없다.

이렇게 화려한 라인업이 가능했던 것은 이 드라마가 꾸는 꿈 자체가 원대하기 때문이다. 《아스달 연대기》는 지금껏 우리 드라마가 가 보지 않은 상고시대로의 원정을 떠났다. 역사 이전의 신화로 존재하던 시절. 드라마는 신화가 가진 원시적이지만 판타지가 존재하는 세계를 가져와 그 신화의 시대가 역사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가 시작됐던 태동의 지점을 어떻게 상상력으로 채워 넣을 것인가. 《아스달 연대기》가 가져온 건 문화인류학이다. 《총, 균, 쇠》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어째서 어떤 종족은 더 많은 부를 갖게 됐고 어떤 종족은 그렇지 못했는가’라고 던진 질문은 이 드라마에서 ‘국가의 탄생’에 대한 질문으로 바뀐다. 어째서 어떤 부족은 국가가 됐고 어떤 부족은 그냥 소수 부족으로 남게 됐을까.

《아스달 연대기》의 세계관은 그래서 양가적이다. 고조선이라는 국가의 탄생은 우리 역사의 시원으로서 추앙받지만 그 과정은 피와 눈물로 얼룩진 잔인한 정복 전쟁과 인간의 욕망, 탐욕으로 채워졌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은섬(송중기)은 인간족과 사라져버린 뇌안탈족의 혼혈로서 양가적 성격을 모두 가진 존재다. 우여곡절 끝에 이아르크 와한족과 함께 살게 된 그는 지금껏 누구도 하지 않았던 도토리를 땅에 묻고 말을 길들일 생각을 한다. 하지만 씨족의 어머니 초설(김호정)이 씨앗의 지혜를 배우되 기르지 말고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되 길들이지 말라는 경고를 하는 것은 이 은섬의 행동들이 바로 향후 인간이 국가로 나아가게 되는 욕망의 시작점이라는 걸 보여준다. ‘꿈을 꾸는 존재’로서의 은섬은 아직 그 꿈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 드라마가 꾸는 꿈도 마찬가지다. 그건 새로운 세계를 향한 진보일까 아니면 보다 큰 욕망이 만들어낸 무리한 야심일까.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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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향한 첫걸음, 그리고 남은 우려들

부족이 국가가 되려는 야망의 지점을 《아스달 연대기》가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이 드라마가 지금의 우리 드라마가 서 있는 위치를 정확히 짚고 있다는 걸 말해 준다. 즉 540억원이라는 제작비와 화려한 라인업이 투입되고 상고사라는 미지의 영역 속으로 뛰어든 이 작품이 마치 드라마 속 아스달족이 국가를 만들기 위해 세상을 향해 나가는 그 과정을 닮았다.

현재 우리 콘텐츠는 ‘부족’으로 남을 것인가, 좀 더 넓은 세계로 나갈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방탄소년단이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함으로써 ‘21세기 비틀스’라는 호칭을 받는 상황이다. 드라마도 글로벌의 세계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 안에 주저앉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넷플릭스는 양가적이다. 이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를 통해 해외의 무수한 콘텐츠들이 이제 국내 대중들과 바로 만나고 드라마 《비밀의 숲》 《킹덤》 《미스터 션샤인》, 영화 《옥자》 같은 작품들이 전 세계 동시 방영된다. 이렇게 새로운 콘텐츠 정복전쟁들이 벌어지는 환경 속에서 우리 드라마들은 어떤 길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인가.

《아스달 연대기》는 이런 변화들을 하나의 기회요소로 인식하며 그 소재로서 어쩌면 국가 탄생 이후 생겨난 경계(언어·문화)가 상대적으로 적어 좀 더 글로벌한 보편성을 갖는 상고시대의 이야기를 끌어온다. 그 의도와 전략 그리고 과감한 도전은 지금의 콘텐츠들이 처한 환경을 염두에 두고 보면 시의적절했다고 보인다. 문제는 이 새로운 도전이 낯섦을 동반하는 일이고, 그 낯섦을 채우기 위한 여러 타 작품들의 레퍼런스들이 자칫 짜깁기의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스달 연대기》가 기대만큼 큰 우려를 안고 시작한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의 등장인물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의 등장인물 ⓒ tvN

《아스달 연대기》, 난관들을 넘어설 수 있을까

《아스달 연대기》의 의미는 충분하지만 결국 드라마는 드라마다. 대중들이 판단하는 것은 드라마 자체가 가진 재미 그 자체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첫 시작과 함께 《아스달 연대기》에 무수히 많은 우려 섞인 비판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이 드라마가 걸어갈 길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거라는 걸 예감하게 만든다.

가장 큰 문제는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과의 비교다. 사실 애초부터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아스달 연대기》를 쓴 박상연 작가가 이미 얘기한 바 있다. 회당 약 68억원에서 마지막 시즌에는 무려 회당 170억원을 쏟아 부은 《왕좌의 게임》은 전 세계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화제작이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아스달 연대기》에서 《왕좌의 게임》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드라마 시작 전부터 두 드라마의 인물들을 나란히 세워두고 비교하는 글들이 인터넷에 회자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스달 연대기》에서 떠오르는 건 《왕좌의 게임》만이 아니다. 이제 겨우 2회가 방영됐지만 멜 깁슨이 만든 《아포칼립토》가 떠오르고 《브레이브 하트》나 《아바타》 같은 작품들이 떠오른다. 역사가 없어 상상력으로 채워진 세계에 고유한 우리의 색채와 이야기들이 아닌 이미 만들어진 서구 작품들의 잔영이 떠오른다는 건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부정적인 시선이 생겨나기 시작하면 540억원이라는 제작 규모는 거꾸로 비판의 소지로 바뀌게 된다. 실제로 540억원을 어디다 썼는지 모르겠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게다가 촬영 스케줄을 일주일에 151시간씩 운용하며 스태프를 혹사시켰다는 의혹은 호감이어도 넘기 어려운 낯섦을 가로막는 정서적 장벽까지 만들어낸다.

물론 드라마는 역시 드라마라는 이야기는 《아스달 연대기》가 향후 이야기 전개를 통해 돌아선 대중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과연 《아스달 연대기》는 이런 난관들을 넘고 애초 품었던 그 꿈에 다가갈 수 있을까. 정복전쟁에 비견되는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이 가녀린 부족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하나의 국가를 열어 보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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