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 악재에 발목 잡힌 ‘개혁 전도사’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3 10:00
  • 호수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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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철 부회장, LG화학 창사 이래 첫 외부 CEO
재무구조 악화·소송·신뢰도 하락 삼중고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정통 LG맨이 아니다. 그는 지난 3월15일 글로벌 혁신 기업인 3M에서 LG화학으로 옮겨왔다. 1974년 LG화학이 창립한 이래 외부인이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것은 처음이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신 부회장은 구광모 LG그룹 회장 취임 이후 처음 영입된 외부 인사이기도 하다. 구 회장은 지난해 5월 타계한 구본무 전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총수 자리에 올랐다. 이후 1년 동안 그룹의 변화와 개혁을 진두지휘해 오고 있다. 구 회장 스스로 ‘회장’이라는 호칭보다 ‘대표이사’로 불러 달라고 임원들에게 요청할 정도였다. LG그룹 창립 이후 가장 파격적인 인사로 평가받는 신학철 부회장의 영입 역시 구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 창사 이래 첫 외부 CEO인 신학철 부회장이 최근 잇따른 악재로 고심하고 있다. ⓒ LG화학 제공
LG화학 창사 이래 첫 외부 CEO인 신학철 부회장이 최근 잇따른 악재로 고심하고 있다. ⓒ LG화학 제공

‘구광모식 개혁’ 위해 투입

LG그룹 안팎에서는 신 부회장이 ‘구광모식 개혁’의 선두에 설 것으로 내다봤는데,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신 부회장은 3월 취임하자마자 조직을 과감히 뜯어고쳤다. 제품 위주의 기존 조직을 자동차와 IT, 산업소재 등 3개 사업부로 재편했다. 전 세계 화학기업 최초로 그린본드도 발행했다. 그린본드는 신재생 에너지나 전기차 등 친환경 분야에만 투자가 가능한 채권이다. 신 부회장은 그린본드 발행을 통해 확보한 15억6000만 달러(약 1조7800억원)를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투자할 예정이었다. 일련의 조치들을 통해 올해 매출 32조원을 달성한다는 게 신 부회장의 1년 차 청사진이다.€

하지만 개혁 전문가의 처녀 항해는 순탄치 않았다. 당장 실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연결 기준으로 지난해 LG화학의 매출은 28조1830억원으로 전년 대비 9.7%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조2461억원으로 1년 새 23.3%나 감소했다. 올해 1분기 상황도 녹록지 않았다. 1분기 LG화학의 매출은 6조6391억원, 영업이익은 275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소폭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58%나 급감했다. 최근 3개월간 LG화학 주가는 40만원에서 33만1500원(6월5일 기준)으로 17.1%나 감소했다.

전지부문의 적자가 실적 악화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398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석유화학부문과 달리 전지부문은 147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LG화학은 2025년까지 최대 58조원으로 평가되는 폭스바겐 전기차 배터리 수주전에서 경쟁사인 SK이노베이션에 패배했다. 글로벌 톱5 화학업체 진입을 노리는 업계 ‘맏형’의 자존심이 크게 구겨졌다.

LG화학 대산공장 ⓒ  LG화학 제공
LG화학 대산공장 ⓒ LG화학 제공

LG화학이 최근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과 국제무역위원회(USITC)에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 때문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LG화학 측은 “영업비밀이 경쟁사에 넘어갔는지 여부를 가리는 게 이번 소송의 핵심”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석유화학업계의 업황이 안 좋아 실적이 나빠진 것은 사실이다. 특정 회사가 아니라 업계 전체의 문제”라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SK이노베이션을 제소한 이유는€회사 인력을 빼가는 과정에서 핵심 기술이 유출됐는지를 가리자는 취지”라면서 “그동안 여러 차례 공문을 보냈지만 시정이 안 돼 소송으로 가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재계 일각의 시각은 달랐다. 더 이상 내부 인력 유출을 방치했다가는 SK이노베이션에 시장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무엇보다 LG화학은 최근 대기오염물질 조작 사태로 홍역을 치렀다. 미세먼지 원인물질인 먼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과 벤젠 등 대기오염물질 측정값을 조작했다가 정부 조사에서 뒤늦게 들통이 났기 때문이다. 신 부회장은 “참담한 심정으로 막중한 책임을 통감하며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관련 생산시설을 폐쇄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진화에 나섰지만 싸늘한 시선은 가라앉지 않았다. 여론의 반전을 꾀하기 위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강경 대응에 나섰을 수 있다는 것이다.€

LG그룹 내부의 반응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직장인 익명 게시판인 ‘블라인드’에는 현재 사측을 성토하는 글들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직원들에 대한 처우나 기업문화 등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경쟁사에 책임을 전가한 것에 대해 실망하는 글들이 많았다. 한 직원은 “오창공장 엔지니어 100(명) 중 70~80(명)은 SK 이직을 생각한다. 회사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일들이 오피셜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직원은 “오죽하면 직원들이 소속 회사를 까내리고 SK이노베이션 손을 들어주겠냐”며 “위에서는 그걸 모른다. 소송할 비용으로 직원들 성과급을 주라”고 꼬집었다.

 

블라인드에도 회사 성토 글 잇달아

실제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평균 연봉은 큰 차이를 보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LG화학의 전지부문 평균 연봉(남자 기준)은 8300만원이다. 가장 연봉이 높은 기초소재부문도 1억900만원이었다. 1인당 평균 1억4200만원(미등기 임원 포함)을 받는 SK이노베이션과 차이를 보였다. 성과급까지 포함하면 두 회사의 연봉 차는 더욱 벌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 출신으로 추정되는 한 직원은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LG화학 퇴직자들에 대한 잘못된 처신에 대해 호소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현재 600명 이상이 이 청원에 동의한 상태다. 이 청원인은 “퇴직 의사를 밝힌 직원에 대해서는 최소 한 달에서 서너 달까지 정보보안팀에서 조사를 한다. 심할 경우 집 안의 개인 PC까지 조사한다”며 “소송 내용은 마치 SK이노베이션과 이직자가 사전 공모해 조직적으로 정보를 빼돌렸다는 것으로 들린다. 모욕감을 넘어 수치심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여론 반전을 위해 SK이노베이션에 소송을 건 LG화학의€극약 처방이 오히려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모양새가 됐다. 일련의 악재들을 구원투수로 등판한 신 부회장이 어떻게 헤쳐 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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