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타이틀에 가려진 5G 시대의 불편한 진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2 11:00
  • 호수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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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용화 두 달 성적표, 아직 ‘나쁨’…4G 초창기의 데자뷔

지난 4월, 새 휴대폰을 구매하기 위해 서울 노원구 한 대리점을 찾은 박성의씨(30)는 직원의 추천으로 5G 휴대폰을 구매했다. 직원은 5G 속도와 롱텀에볼루션(LTE) 속도는 차원이 다르다며 새로 나온 갤럭시 S10 5G 모델을 추천했다. 그러나 휴대폰을 개통하고 나서 직원은 “휴대폰 설정에서 5G모드를 LTE모드로 바꾸라”고 조언했다. 아직 5G 연결망이 상용화되지 않아 통신이 끊길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직원은 “통신망이 깔려 있지 않은 곳에서는 휴대폰이 먹통이 될 수도 있으니 LTE모드를 유지하라”며 “뉴스에서 5G가 상용화됐다는 얘기가 나오면 5G모드로 바꿔라. 최소 1개월 안에 서울 주요 도심은 5G가 상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4월3일 국내 이통사가 세계 최초로 5세대 이동통신 5G 서비스를 상용화한 지 두 달이 지났다. 그러나 5G의 상용화는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가입자 증가세보다 5G 커버리지 구축 속도가 더뎌, 이용자들이 서비스 이용에 불편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5G로 연결할 경우 지속적인 통신 수신이 불가능하거나, 기존 LTE로 전환되면서 나타나는 데이터 끊김 현상, 배터리 소모량 증가 등으로 이용자들은 아직도 불편을 겪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5G 가입자 수는 70만 명을 넘어섰고, 현재 추세대로라면 6월 중순경 1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통사별 구체적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SK텔레콤이 40~45%로 가장 많은 5G 가입자를 유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KT와 LG유플러스의 점유율은 각각 30%, 20%대로 알려졌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을 구축해 5G를 상용화한 것을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 분야 핵심 성과로 꼽았고, 5G는 ‘꿈의 통신’이라고 불리며 사람들의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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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통신’ 상용화는 먼 얘기

그러나 5G 서비스 초기부터 이용자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5G 요금제에 가입했다가 개통을 철회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국회 과방위 소속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기부를 통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4월 한 달간 5G 단말기를 구매했다가 기기를 반납하고 개통을 철회한 사람 수는 전체의 0.5%인 1316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주원인은 통신 장애에 대한 불만이다. 시민단체인 소비자시민모임이 4월5일부터 4월26일까지 소비자상담센터에 5G 관련으로 접수된 소비자 상담 131건을 분석한 결과 89%가 ‘5G 서비스 품질 불만’을 제기했다. 통신이 자주 끊기고, 5G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이 중 67%의 소비자가 개통 취소, 20%의 소비자가 요금 감면을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자시민모임 관계자에 따르면 5월 통계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다. 소비자시민모임은 “이통사는 '개통 시 전파 세기가 약하거나 일부 지역에서는 LTE로 서비스가 전환된다는 사실을 알렸고 이에 소비자들이 동의했으므로 피해 보상이 어렵고, 향후 품질 개선을 하겠다'고만 답변하면서 서비스 품질 불량에 대한 피해 보상을 외면하고 있다”며 “정부와 이통사는 5G 세계 최초 상용화 타이틀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5G 개통 초기 품질 불량에 따른 적극적인 피해보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초기 네트워크 불만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5G는 주파수 특성상 직진성이 강해 장애물을 만나면 강한 간섭 현상이 생긴다. 전파의 도달거리가 짧고 장애물을 피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LTE보다 기지국을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과기부에 따르면 지난 5월8일 기준 이통3사의 전국 5G 기지국 수는 5만7266개뿐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LTE 기지국은 총 87만 개였다. 지금 속도로 기지국이 설치될 경우, 5G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시기는 2023년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5G 서비스가 사실상 제공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통사는 5G 서비스가 제공되는 범위를 보여주기 위해 ‘5G 커버리지맵’을 공개하고 있다. 과기부가 4월23일 ‘5G 서비스 점검 민관합동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통신사가 약관에 커버리지 정보 제공 의무를 명시하도록 의무화한 데 따른 것이다. 이통사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커버리지맵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5G 기지국이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집중돼 있다. 유일하게 기지국 수를 공개하고 있는 KT의 경우 전체 3만1895개의 개통 기지국 중 절반 이상인 2만1285개(6월6일 기준)가 서울과 수도권에 설치돼 있다.

그마저 공개한 커버리지맵이 맞지 않는다는 불만도 속출한다. 5G 서비스가 제공되는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5G폰을 구매했지만, 실제로는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 스마트폰 커뮤니티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커버리지 지역에 주거하고 있지만 5G 표시가 거의 뜨지 않는다’ ‘커버리지맵 정가운데에서도 5G가 터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금 5G 개막과 동시에 보이는 불편한 현상들은 4G 시대가 개막됐을 때의 잡음과 오버랩된다. 4G 시대는 SK텔레콤이 2011년 9월 국내 최초 LTE 스마트폰 갤럭시 S2 LTE를 출시하면서 열렸다. 기존 3G망보다 50배가 빠른 4G의 속도는 소비자들에게 파격적으로 다가왔으나, 서비스 수준은 한참 모자랐다. 당시에도 기지국 수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서비스를 신청해도 이용할 수 없었다. 4G LTE 서비스에 가입하더라도 서비스 지역을 벗어나면 자동으로 3G 서비스로 전환됐다. 4G 역시 당시 가장 큰 장점으로 빠른 속도를 내세웠지만, 네트워크가 구축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가입하더라도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되자 ‘초기에 가입하면 손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했다. 전국적인 네트워크 구축은 2013년에야 이뤄졌다.


‘불완전 판매’ 이통사들은 가입자 유치에만 혈안

‘세계 최초’의 타이틀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이용자들에게 합당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996년 세계 최초 CDMA 상용화는 한국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게 만들면서 수출 동력을 높였고, 1998년 세계 최초 초고속인터넷 상용화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단순히 5G 서비스를 먼저 시작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보다 5G 커버리지 확장 속도가 훨씬 빠른 곳들도 많기 때문이다.

인터넷 연결 성능평가 서비스 우클라(Ookla)가 공개한 5G 맵에 따르면, 6월6일 기준 5G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시가 가장 많은 곳은 스위스다. 스위스는 수도 베른을 비롯한 225개 도시에서 5G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우클라가 표시한 우리나라의 5G 서비스 가능 도시는 서울과 제주를 포함해 18곳이다. 우리나라와 2시간 차이로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다퉜던 미국은 총 27개 도시에서 5G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무늬만 ‘5G’ 서비스에 불만을 품으면서도 소비자들이 가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통3사가 5G 스마트폰에 역대 최고 수준의 지원금을 제공하면서 최신 5G폰이 기존 LTE폰보다 저렴해지는 가격 역전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앞서 이통3사는 초기 가입자 확보를 위해 파격적인 지원금을 제공하면서 출혈 경쟁을 벌였고, 대리점이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제공한 불법보조금도 논란이 됐다. 이 때문에 최신 5G 스마트폰인 삼성전자 ’갤럭시 S10 5G’의 가격이 지난해 출시된 ‘갤럭시 S9’보다 저렴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현상도 발생했다. ‘5G폰을 사서 5G 서비스를 이용한다’기보다 ‘최신 폰을 싸게 산다’는 의미로 5G 가입자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안진걸 민생연구소장은 “이통3사는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불완전 판매’를 한 셈이다. 대부분 8만원 이상의 고가 요금제로 개통하면서도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며 “이통사는 이에 대한 사과나 요금 할인도 없이 이 순간에도 불법 보조금까지 동원하면서 가입자를 유치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정부는 그야말로 ‘오지게’ 안 터지는 서비스에 대한 과징금을 부과하고, 5G 서비스가 조속하게 정상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통신사는 ‘불완전 판매’에 대해 사과하고, 그동안 5G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던 이용자들에게 요금을 할인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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